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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이유
시를 쓰는 이유
  • 최승우
  • 승인 2022.08.14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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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릿스코프 편집부·카카오브레인 편집부 지음 | 리멘워커 | 140쪽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의 첫 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 발간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AI 프론티어 카카오브레인은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를 만들고, AI 시아의 첫 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한다.

시아는 2021년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태어난 시를 쓰는 인공지능(AI)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뉴스 등을 읽으며 한국어를 공부하고, 약 1만 편의 시를 읽고서 작법을 배워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주제어와 명령어를 입력하면 ‘시아’가 입력된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곧바로 시를 짓는다. 카카오브레인의 KoGPT는 60억 개 파라미터와 2,000억 개 토큰의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시켜 한국어를 사전적·문맥적으로 이해하는 초거대 AI 언어 모델이다. 맥락에 따라 자동으로 글을 쓸 수 있어, '3주 동안 식물에게 물을 주었다'라는 글을 입력하면, 인과 관계를 예측해 '식물이 꽃을 피웠다'와 같은 글을 창작한다.

슬릿스코프는 김제민과 김근형이 예술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오다 2018년 〈I Question〉을 작업하면서 시작하게 된 미디어 아트 그룹이다. 〈I Question〉은 인공지능이 어떤 단어를 제시하면 소설가는 그 중 한 단어를 선택하고, 소설가, 시인, 배우는 상호 간에 각자의 연결점을 찾아 즉흥적으로 텍스트를 만들어가는 퍼포먼스였다. 당시 언어 공간의 축에서 작동하는 문장의 원리와 그 경계에서 조합되는 단어들의 선택으로 시적 표현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됐고, ‘오류의 경계에서 시가 써질 수 있지 않을까?’란 질문에서 시 쓰는 인공지능 작업을 하게 됐다.
시 쓰는 인공지능은 ‘시작하는 아이’라는 말의 앞 글자를 가져와 ‘시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시작은 시를 쓴다는 의미의 시작(詩作)과 어떤 일을 처음 한다는 시작(始作)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아이는 어린 아이의 동심과 AI의 우리식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말로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어떤 문학적 계기가 있어 시집을 발간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겨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시작하는 아이’라는 퍼포먼스를 발표했고, ‘문학의 바깥에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시각으로 작업을 했다. 인공지능 시아와 함께 유희적 글쓰기를 탐구하면서 시아가 쓴 글을 사람들은 어떻게 감상할 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시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총 53편의 시로 구성 (1부 공_ 30편 / 2부 일_ 23편)
A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창작하고자 기획된 시집 ‘시를 쓰는 이유’는 총 53편의 시로 구성돼 있다. ‘시아’의 언어인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 0, 1를 활용하여 1부는 ‘공’, 2부는 ‘일’로 정했다.
시집의 1부와 2부는 각각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1부는 슬릿스코프의 그동안 작업 노트에서 나온 임의의 표현들을 시상으로 선택해 생성한 것이고, 2부는 수학과 과학에 관한 주제로 시상을 선택해 생성한 것이다. 1부는 개인의 주관적인 부분을 시상으로 삼았으며 2부는 객관적인 대상이나 사실을 시상으로 제시했다. 1부를 공, 2부를 일로 구분한 것은 이진법으로 사용하는 숫자 0과 1을 의미한다. 0, 1은 디지털 연산을 위한 기계어이지만 인공지능 시아에게는 자신의 언어이기도 하다. ‘영’ 대신 '공'으로 표기한 것은 on, off의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의 관계를 함께 담고자 하는 의도이다.

시아를 통해 시의 의미를 탐구하며 잃어버린 시심을 찾아가는 과정
시(詩)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는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 정의한다.
AI 시아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하는 것이고, 하나의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말을 줄이는 것이며, 덜어내고 덜어내서 최후에 남는 말이 시입니다.” 라고 표현한다.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시를 쓰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쓸 수 없는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일까? 시를 쓰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고 고백한다.

슬릿스코프의 김제민은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시 쓰는 인공지능 작업에 대해 처음부터 시 쓰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시도일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어떤 틀로 시를 규정할 수도 없고, 인공지능에게는 시인들의 시심이나 고뇌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습니다. 처음엔 시아가 생성한 시들이 주는 놀라움도 있었지만, 시아는 문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번역하는 중국어의 방이기도 합니다. 때론 시아의 시들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읽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감탄하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종국에 마주하는 사실은 제 스스로 시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시에 대해 참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시아가 가져다 준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8월12일~14일 시아의 시로 구성한 시극 ’파포스’ 공연도 선보여
슬릿스코프는 AI 시아로 출판, 퍼포먼스,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시를 선보이려 한다. 시아가 쓴 시로 구성된 시극 ‘파포스(PAPHOS, 김제민 연출)’를 8월 12일~1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파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과 그의 조각상 갈라테이아 사이에서 낳은 자식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간과 기술의 상생적 관계 속에서 리멘워커(창작단체)와 인공지능 시아 사이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은유된다.
시아가 쓴 시들의 의미를 찾고 감상하는 행위는 쓰기의 시학이 아닌 읽기의 시학으로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시의 여백을 채워가면서 감상의 유희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역으로 관객의 ‘시심(詩心)’을 일깨우고자 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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