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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94년의 총파업
기원전 494년의 총파업
  • 박혜영
  • 승인 2022.08.08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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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박혜영 논설위원 /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박혜영 논설위원

민주주의는 데모스가 지배하는 체제라고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데모스는 지배를 받는 처지에 놓여있다. 데모스가 주인처럼 갈채를 받는 것은 5년에 한 번뿐이다.

하지만 선거조차도 사실상 데모스의 통치와는 거리가 먼 대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요식행위처럼 된 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데모스는 선거철만 지나면 개·돼지로 수직낙하 한다. 좌건 우건 도대체 오늘날 어떤 정치가가 데모스를 두렵게 생각하랴! 데모스는 민중에서 우중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제대로 대접받던 시기도 있었다. 기원전 494년의 일이다.      

고대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지만 실제 통치계급은 신분이 높은 귀족들과 큰 재산을 축적한 소수의 부르주아 가문들이었다. 농민, 장인, 소상인, 해방노예와 같은 평민(commoners)들은 참정권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었다. 수시로 전쟁터로 끌려갈 뿐 아니라 살아와도 전쟁으로 농사를 짓지 못한 탓에 밀린 세금이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빚으로 생활하게 되고, 쌓인 부채를 갚지 못할 경우 노예시장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지배자들은 이들을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노동력으로 보거나 아니면 전쟁터로 내보낼 병력으로만 취급하였다.

결국 평민들은 부채 탕감, 토지 재분배, 참정권을 요구하며 지배층을 향한 투쟁을 시작했지만 지배층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기원전 494년에 총파업을 선언하고, 로마로부터 5㎞ 떨어진 몬스 사케르(Mons Sacre, 거룩한 산)로 올라가 자기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들은 언덕에 요새를 짓고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할 평민 호민관(tribuni plebis)을 두며 스스로를 위한 체제를 도모하였다.   

그때서야 로마 원로원은 평민들 없이는 로마가 전쟁에서 이길 수도,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로원은 아그리파를 보내 이들을 설득했지만 평민들은 하산을 완강히 거부했다. 원로원이 이들과 합의에 이르는 방법은 전폭적인 양보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원로원은 채무노예의 해방, 부채 탕감 외에도 평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2명의 호민관을 두기로 합의하게 된다. 로마의 유명한 호민관제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기원전 494년의 총파업은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는 비폭력, 비협조, 불복종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하였다. 

올해 우리는 선거를 통해 다시 지배받는 길을 선택했다. 선거가 희망고문이 되지 않으려면, 데모스의 지배가 실질적인 민주주의 통치가 되려면 데모스에게 권력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데모스가 선거에서 위임할 권력조차도 로마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손발이 되지 않겠다는 총파업 없이는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그냥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0.81명의 합계출산률은 이점을 눈치 챈 젊은 세대들의 총파업인지도 모른다. 작년 출생아 수는 26만 명이다. 덕분에 20년 뒤 대학의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렵다.

박혜영 논설위원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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