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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1] 불완전한 공화국이 계몽된 군주가 있는 국가보다 낫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1] 불완전한 공화국이 계몽된 군주가 있는 국가보다 낫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8.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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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닌의 사회철학 - 자유와 권위
미하일 바쿠닌. 사진=위키미디어
미하일 바쿠닌. 사진=위키미디어

바쿠닌은 자유의 광적인 연인을 자처했다. 그에게 자유는 인간의 지성, 존엄성, 행복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다. 그는 변함없이 절대적 자유를 요구했다. 이러한 의미의 자유는 국가가 규제하는 자유나 국가의 권력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주의자들의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쿠닌은 자유가 자연적, 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제한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자유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쿠닌이 그 이름에 합당하다고 믿는 유일한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잠재된 능력으로 발견되는 모든 물질적·지적·도덕적 능력의 완전한 발전으로 이루어진 자유, 우리 자신의 본성의 법에 의해 추적되는 제한 외에 다른 어떤 제한도 인정하지 않는 자유이다. 

자유란 국가를 비롯한 외부인이 부여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제약 또한 본래부터 인간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런 제약들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근본조건을 이룬다. 

이러한 본성의 법은 우리 옆이나 위에 있는 일부 입법자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이 없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있고 내재적이며 우리 존재의 바로 그 기초를 구성하는 물질적·지적·도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의 한계를 찾는 대신, 그것들을 우리의 자유를 위한 실제 조건이자 효과적인 이유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쿠닌에게 자유란 인간이 부과한 모든 외부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자연법칙에 부합하는 조건이다. 그것은 사물의 도리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자유는 자연적·사회적 필연성의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동시에 자유는 개인을 스스로 움직이는 원자로 보는 슈티르너처럼 개인과 함께 시작하고 끝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유는 자신을 존재하지 않음으로 정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바쿠닌은 그러한 절대적인 독립이란 야생적인 부조리이자 관념주의자와 형이상학자의 두뇌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본다. 

 

‘어떤 권위의 원칙도 거부’한 바쿠닌의 자유 

대신 바쿠닌은 자유의 사회적 맥락을 인식한다. 사회는 자유의 뿌리, 나무이며, 자유는 그 열매이다. 그는 또한 한 사람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자유는 가장 엄격한 평등에 의해서만 인정된다. 바쿠닌에게 평등 없는 자유는 다수의 노예를 의미한다. 자유 없는 평등은 국가의 전제정치와 특권계급의 부당한 지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평등과 자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만인의 자유를 통한 각자의 무한한 자유, 연대에 의한 자유, 평등 속의 자유를 주장하는 바쿠닌은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유사한 경제적 조건을 갖지 않는 한 자유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바쿠닌은 가장 불완전한 공화국이 가장 계몽된 군주보다 항상 더 낫다고 하면서 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노동자의 지지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사진=위키미디어

그의 자유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은 권위이다. 실제로 바쿠닌은 자유를 어떤 권위의 원칙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권위는 이 세상의 주된 악이다. 만약 인류 역사에 악마가 있다면 악마는 명령의 원칙이다. 대중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권력만이 역사의 모든 재앙, 모든 범죄, 모든 치욕의 근원이다. 권위는 자유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신적, 집단적 및 개별적 권위에 대한 개인의 반란을 요구하고 신과 주인, 교회와 국가를 모두 거부한다.

그러나 바쿠닌은 일거에 모든 권력과 권위를 부정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모든 인간은 삶의 기본 법칙인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권력에 대한 타고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욕망은 반드시 폭군이 된다. 바쿠닌이 권력과 권위를 부정하는 이유는 권력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만큼 그것을 행사하는 자들을 부패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불변의 사회의 법을 통해 압제자와 착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바쿠닌은 모든 부과된 권위와 법률의 형태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사회의 권위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사회의 권위는 국가의 권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국가와 교회가 일시적이고 인위적인 제도인 곳에는 항상 사회가 존재한다. 그 결과 사회적 폭정의 작용은 신선하고 음흉하고 더 감지할 수 없지만, 국가의 권위보다 덜 강력하고 만연하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사회보다 국가에 반항하는 것이 더 쉽지만, 바쿠닌은 적응의 흐름에 역행하여 사회의 모든 신, 집단, 개인의 저작에 반기를 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한 사람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바쿠닌은 ‘권위의 사회적 제도화’에 반대하지만 ‘자연’의 권위는 인정한다. 반면 지식의 권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진보를 이끌어낼 과학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에 달해 있던 시기에, 콩트의 실증주의 형태든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든 간에, 바쿠닌은 그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바쿠닌은 단순히 반이성이나 반과학이 아니라 주로 과학 엘리트의 권위주의를 위험하게 봤다. 그는 과학이 소수의 특권층에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 사이에 확산되어 사회의 집단의식을 대변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바쿠닌은 강요된 권위로부터의 자유라는 부정적인 의미와 본성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라는 긍정적인 의미 모두에서 자유를 요구했다. 후자는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며 바쿠닌은 주로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이중성이 변증법적으로 극복되는 전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유를 본 점에서 헤겔주의자로 남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바쿠닌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인으로 인식하고, 한 사람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자유와 번영이 개인의 자유와 번영의 합을 나타내는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연대와 국제적 결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른 어떤 고전적인 아나키스트 사상가보다 바쿠닌은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서로 얽혀 있으며 공동체적 개별성의 형태에만 기초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국가는 거대한 도살장이거나 거대한 묘지

바쿠닌에게 불법적이고 강요된 권위의 최고 형태는 국가이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인위적인 존재인 국가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자발적인 삶을 짓밟기 때문에 억압적이다. 국가는 거대한 도살장이나 거대한 묘지와 같다. 그 추상화의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죽임을 당하고 묻히게 된다. 이에 따라 경제의 집중화와 정치권력의 집중이 도래하여 민중의 자발적인 행동을 필연적으로 파괴한다.

바쿠닌은 현대 국가가 그 본성상 군사 국가이며 모든 군사 국가는 필연적으로 정복하고 침략적인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복하거나 정복해야 한다. 축적된 군사력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 질식할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폭력, 억압, 착취, 불의를 체계화하고 사회 존재의 초석이 된 불의를 의미한다. 국가에는 도덕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그것의 도덕성과 유일한 정의는 자기 보존과 전능한 힘의 지고의 이익, 즉 모든 인류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하는 이익이다. 국가는 인간성의 완전한 부정, 이중의 부정, 즉 인간의 자유와 정의의 반대이며 인류의 보편적 연대에 대한 폭력적인 파괴이다. 

바쿠닌은 국가의 기원을 '국가라고 불리는 대중의 조직'에서 종교를 사용해 글들을 도운 착취자들 사이의 상호 이해로 추적한다. 사진=위키미디어

바쿠닌은 국가의 기원을 '국가라고 불리는 대중의 조직'에서 종교를 사용하여 그들을 도운 착취자들 사이의 상호 이해로 추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만 국가는 교회의 동생이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사회에서 특권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특권계급과 노동계급은 특권을 유지하고 향유하기 위해 항상 국가의 권력을 통제하고, 정치권력과 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국가를 정치적 권리의 보증인이자 수호자로 묘사하는 국가의 자유주의적 방어는 국가가 항상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엘리트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바쿠닌에게 무의미하다. 그는 정치의 언어로 '옳다'는 것은 '힘으로 만들어낸 사실의 신성화'일 뿐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권리의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인권을 향유하는 곳에서는 모든 정치적 권리가 자동으로 소멸된다는 모순을 의미한다.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정치와 법은 권력, 권위, 지배라는 사실상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19세기 스위스에서와 같이 가장 급진적인 정치 민주주의에서도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지배하였다.

 

보통선거는 확립됐지만 정치적 자유는 보장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은 보통선거가 확립되면 정치적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불가피하게 급진 정당의 몰락이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보통선거로 선출된 행정부와 입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허구에 근거한 대의제 전체가 엄청난 사기극이다. 그들의 민주적 감정과 상관없이 모든 통치자는 정부 참여로 인해 부패하고 사회를 자신의 신민에 대한 주권자로 멸시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노동자로만 정부가 구성되더라도 그들은 혁명의지를 빠르게 잃는다고 바쿠니는은 봤다. 사진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치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연행되는 장면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정치권력은 지배를 의미한다. 그리고 지배가 있는 곳에는 통치자의 지배에 종속된 인구의 상당 부분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정부가 보통선거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내일 가장 단호한 귀족, 권위의 원칙을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히 숭배하는 자, 착취자, 압제자가 되고 혁명의지를 빠르게 잃는다. 대의정부는 위선과 영속적인 거짓의 체계다. 그 성공은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대중 정신의 부패에 달려 있다.

바쿠닌은 보통선거가 권력과 부의 분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선거에 반대했다. 마르크스는 보통선거가 공산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지만, 바쿠닌은 보통선거는 반혁명이라는 취지로 프루동의 말을 승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쿠닌은 가장 불완전한 공화국이 가장 계몽된 군주보다 항상 더 낫다고 하면서 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노동자의 지지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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