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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유마저 가로막는 알고리즘···비판적 거리두기가 답
인간의 사유마저 가로막는 알고리즘···비판적 거리두기가 답
  • 최승우
  • 승인 2022.08.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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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⑮ 손화철 한동대 교수(기술철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16일 손화철 한동대 교수(기술철학)가 「기술 발달과 인간의 자유」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16강은 도승연 광운대 교수(정치/사회철학)의 「자유와 근대 감시 체제」, 제17강은 송지우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의 「자유주의에서의 평등」, 제18강은 김현주 원광대 교수(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의 「근대 동양에서의 자유: 민권과 국권」, 제19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의 「자연과학과 자유: 열역학적 자유」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현대 기술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파악한 근대 사상의 또 다른 적자이다. 그런데 그 기술 발전을 성취하는 이성적 인간은 기술의 산물에 의해 다시 영향을 받는다.” 

기술과 자유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둘은 각각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관련된 논의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둘을 묶어 철학적 탐구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유의 이념은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하거나 추구하는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요컨대, 기술과 자유는 근대 사상의 이란성 쌍둥이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동하는 개념이지만 그 뿌리와 상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기술과 자유의 관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한다면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자유를 성취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실패했는가? 여기서는 보르그만의 해결책을 자세하게 논하는 대신, 기술의 약속이 성취되지 못한 것에 대한 다른 진단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기술이 자유의 증진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가장 직관적인 경우는 기술의 오용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의 도구인 기술이 다른 사람에게는 억압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손화철 한동대 교수(기술철학)는 "첨단 기술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뉴욕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감시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여러 기업과 주고받은 입찰 및 조달문서 10만여 건을 분석해 중국이 어떻게 자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는지를 보도했다. 기술을 통한 통제의 욕망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자기 영향력의 강화를 위해 사용할 것이란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사실 기술철학의 여러 이론은 기술의 선용과 악용의 구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기술과 자유에 대한 가장 비관적인 진단은 기술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는 입장일 것이다. 첨단 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대상화하는지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를(디지털 트윈과 하이퍼리드)를 제시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갈 때 내비게이션은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추천할 것인데, 사람은 조금 돌아가지만 경치가 좋은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현대 기술 사회는 후자의 선택을 가로막거나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비치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 효율성의 법칙이 단순히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영역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임의적인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든다. 처음에는 기술이 인간의 선택을 돕지만, 얼마 후에는 기술의 선택에 별다른 이의 없이 따르게 된다.

데이터 환원주의를 잘 보여주는 예로 최근 자주 언급되는 ‘디지털 트윈’을 들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기계나 건물, 자연 현상 등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각종 센서와 사물인터넷을 이용하여 어떤 기계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모든’ 구성 요소로부터 정보를 받아 디지털화하면, 그 기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 기계의 디지털 트윈은 이미 여러 영역에 적용되어 그 유용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이제 스마트 시티에도 적용되고 있다. 스마트 시티의 디지털 트윈에서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고 더 나은 대안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시행할 때에는 사람이 일정한 활동과 행동 패턴을 따르리라는 (혹은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게 된다. 이 패턴은 다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어질 것인데, 여기서 인간의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 반영되기는 힘들다. 이곳에서는 모든 문제가 미리 제시되고 해결되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또 모든 것이 정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사용자 편리성을 극대화하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연적 사건이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 나아가 스마트 시티가 추구하는 효율성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독립적인 욕구는 무시된다. 세넷은 이것을 “시민을 바보로 만드는” 시스템이라 비판한다. 

디지털 트윈이 사물의 물리적 변화나 사람의 외면적인 활동의 분석에 관련되는 경우라면, 알고리즘을 이용한 추천 시스템은 사람의 판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이다. 사용자의 과거 인터넷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사용자가 선택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능은 이미 여러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검색 엔진이다. 이를 조금 풀어서 생각해보면,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과거 데이터에 기반하여 그의 미래 선택을 제안하고, 그 제안에 근거하여 선택을 하면 그것은 다시 사용자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과거 데이터가 된 다. 하이퍼리드는 묘하게도 문자를 사용하지 않던 과거 구술 시대의 정보 지식 전달 체계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사용자의 과거가 미래의 추천을 결정하면서 결과적으로 각자의 판단과 선택을 대신하는 이와 같은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은 점점 무력해진다. 

스마트 시티와 하이퍼리드의 사례가 모든 현대 기술을 대표한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오늘날 기술이 인간의 생활과 사고에 연결되어 들어올 때 취하는 존재론적 전제를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어떤 면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술이 의도하지 않게 자유를 침해하고, 거기에 인간 자유의 요소를 삽입하려 하면 기술의 완결성은 떨어지게 된다. 이는 기술의 악용 가능성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기술의 문제와 함께 기술과 자유가 어긋나는 상황을 심화시킨다. 엘륄은 현대 기술이 자율적으로 되어 인간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없어졌다고 주장하면서 그 자유를 회복할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기술 비관론자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꿋꿋하게 기술 사회의 암울함을 지적하는 데 그치고 만다.

첨단 기술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비판할 수 있어야 우리의 자유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최소한의 자유다. 그것을 거머쥐려는 최소한의 용기라도 있다면 말이다. 현대 기술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파악한 근대 사상의 또 다른 적자이다. 그런데 그 기술 발전을 성취하는 이성적 인간은 기술의 산물에 의해 다시 영향을 받는다. 어떤 자유이건 그것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증거는 부자유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자유를 묻는 능력과 의지이다. 그 물음이 그치는 순간 자유도 함께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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