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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대학가 전공 수업 흐름을 읽는다
2006 대학가 전공 수업 흐름을 읽는다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6.0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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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의사소통’…법학, ‘로스쿨’…유럽어문, ‘실용’

시대 변화의 진동폭이 크기 때문일까. 대학가 전공 수업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교양강좌가 교양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나 일찌감치 취업 준비와 학생의 관심사를 ‘적극’ 반영하며 주요 일간지의 가십거리가 되는 동안에도 전공 강좌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지만, 전공 강좌도 이제 변화의 바람을 따라가고 있다. 단순히 학생들을 유혹하는 말랑말랑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각 전공영역에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교과목을 속속 개설하고 있다.

□이공계, 커뮤니케이션·영어 강조=이공계열 신설과목에서 눈에 띄는 동향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강조다. 이공계 졸업생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그간 누차 지적돼 온 사실. 충남대 식물자원학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학기에 ‘과학적 토론 및 발표’라는 수업을 개설했다. 지방대학역량혁신강화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식물자원학부 내에 개설됐으며, 수강대상은 4학년 학생이다.

교과목명대로 이 수업은 토론과 발표 등 이공계 학생들의 말하기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기 전반부에는 토론에 집중할 계획. 교수자는 식품, 생명공학기술 등에서 논쟁적인 과학적 테마를 제시해 학생들의 찬반을 이끌어 내고,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개진하는 연습을 시킬 예정이다. 학기 후반부에는 수강생 모두, 다수의 청중 앞에서 약정된 주제에 대해 프리젠테이션할 기회를 줄 계획이다.

연세대 학부대학의 ‘과학 글쓰기’는 비록 전공영역 내에 개설된 교과목은 아니지만 이공계 학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고취를 위한 수업이라는 점에서, 충남대 식물자원학부의 ‘과학적 토론 및 발표’와 궤를 같이 한다. ‘과학 글쓰기’는 연세대가 3년 전부터 이공계생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위해 준비한 학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강의계획, 교재, 교수자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과학 글쓰기’는 이공계 대학 졸업자들이 경험하게 될 모든 글쓰기 형태를 구분하고 훈련을 시도하는 특징을 보인다. 학생들은 한 학기동안 제안서 작성과 구성, 매뉴얼 작성, 개념·도구 및 원리를 설명하는 글쓰기, 보고서 작성, 성찰적인 과학 글쓰기 등을 연습하게 된다. 이공계 글쓰기가 일반적인 글쓰기 방식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는 까닭에 과학사 전공자가 교수자로 나서며, 주 교재는 『과학 글쓰기』(신형기 외, 사이언스북스 刊, 2006)를 사용한다.

커뮤니케이션 이외에도 전공 영어에 대한 강조 역시 또 다른 추세다. 충북대 생명과학부의 ‘생명과학영어’ 수업이 대표적인 사례. 전공의 특성상 영어 원서와 논문을 봐야 하고, 대외경쟁력 차원에서도 영어의 습득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원서 기피 현상이 심각해 장고 끝에 개설한 수업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명과학영어’는 무학점 강의였다. 정년퇴임 1년을 남겨둔 김치경 충북대 교수가 생명과학부 학생을 대상으로 전공영어를 강의하는 무학점 강좌를 만들었고, 일주일에 3시간씩 원서를 강독하며 숙어설명, 과학용어 및 전문용어 해설을 했다. 하지만 애초 두 학급이 만들어질 만큼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음에도 학기 중반 이후 학생들이 예습 및 복습을 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절반 이상이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과 교수들이 생각해낸 것이 정규 교과목화.

현재 ‘생명과학영어’는 전공선택과목으로서 50명 정원을 이미 채운 상태이며, 생명과학의 기본 개념을 다룬 내용을 원서를 발췌해 제작한 교재를 사용할 계획이다.

▲ © 일러스트: 이재열

□법학계, 로스쿨 대비 강좌 신설=최근 법학계의 최대 관심사가 로스쿨이듯 2006년 법학 분야의 신설과목 동향 역시 로스쿨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학기 총 16개의 전공과목을 신설한 경상대 법학과는 이번 교과목 신설이 로스쿨 대비 차원이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김병두 경상대 교수(법학)는 “그동안 교과목 변경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타 대학에 비해 교과목의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로스쿨 유치 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과목을 만들었다”라며 전공교과 신설배경을 설명했다.

경상대 법학과는 전공 교과를 크게 기반-심화로 구분해 기반과목을 60%, 심화과목을 40% 비율로 구성하고, 학생 개인이 관심 있어 하는 테마와 관련된 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환경에 관심 있다면 행정법 기초부터 환경법까지 모두 배울 수 있도록 한 것. 이번 학기 경상대 법학과는 법사상사·재산법특강·영미법·정치법제·사회보장법·저작권법·토지공법·헌법사례연구·행정구제법·경제형법·지방자치법·국제경제법·도산법·계약법세미나·금융법·환경법 등을 신설했다.

연세대 법학과의 경우 8개 신설 과목 중 6개 강좌를 미국 관련 법학전공 교과목으로 채웠다. 미국헌법 및 민사소송법·미국계약법·미국형법 및 형사소송법·미국증거법·미국재산법·미국불법행위법 등이 그것인데, 이 또한 로스쿨 대비 차원에서 개설된 것이다. 전광석 연세대 교수(법학)는 “회사법, 국제통상 등에서 미국법이 세계의 표준적 기능을 하고 있어 미국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뿐 아니라, 로스쿨 교육과정에 대한 사전 검토 차원에서도 이 같은 법학 전공과목 신설이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유럽어문계열, 실용·문화 강조=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유럽어문계열 전공의 뒷걸음질이 학부제의 학과제로의 전환 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 가운데, 이들 전공의 ‘생존 모색’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전통적인 강좌였던 문학 영역을 축소시키는 한편 외국어로서의 어학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관심이 큰 ‘문화’를 전공 영역에 접목시키고 있었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는 ‘현대러시아대중문화’를, 부산대 독어독문학과는 ‘독일문화의 이해’를 이번 학기에 신설해 이 같은 최근 추세를 반영했다.

특히 충북대 독어독문학과는 최근 유럽어문계열의 경향에 정확히 조응하며, 독일문학산책·독일동화읽기·독일어듣기연습·독일어작문·독일의 대중문화·독일어와 한국어 비교·독일문학 번역 실습·독일지역학 세미나 등 총 8개 강좌를 만들었다. 이정희 충북대 교수(독문학)의 설명에 따르면, 어학 분야는 지방대의 경우 대학원 운영이 거의 되지 않아 학부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회화 및 작문, 독일어 어휘를 강조했다고 한다. 또 문학 파트는 세기별·문학사조·장르별로 세분화됐던 교과목을 하나로 통합했다. 예를 들어 근대 드라마, 현대 드라마로 나뉘던 것을 ‘독일 드라마’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 이와 동시에 독일 문화를 강조하며 ‘독일 문화의 이해’, ‘독일 영화’ 등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럽어문계열의 노력에 씁쓸함이 배어 있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인성기 부산대 교수(독문학)는 “유럽어문계열의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이 전통적인 수업에 관심이 없고, 문학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며,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정체성과 기억에 대한 재검토=하나의 흐름으로 분류할 수 없지만 미술과 역사 분야에서의 몇몇 과목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서울대 서양화과의 ‘미술과 교육’이 대표적 경우. 이 과목은 얼핏 교직 과목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실상은 ‘순수’ 미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다.

‘미술과 교육’ 강좌의 핵심 목표는 ‘정체성’의 재검토이다. 즉, 미대생들이 직업 예술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교육기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해, 미술을 개인 창작행위가 아닌 사회적 활동으로 바라보고 미술가 역시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상대화시켜 본다는 것이다. 김선아 서울대 강사(서양화)는 “나 자신도 졸업할 때까지 작업만 하다가 사회에 나가보니,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상호주관적 의미를 한 번은 생각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이 수업이 3, 4학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사학과의 ‘역사영화와 기억문화’는 그 동안 교양 역사수업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는 ‘문’의 역할을 해왔던 영화 매체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전쟁과 학살을 기억하는 영화들을 비교하는 수업이다. 예컨대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한국전쟁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투 동막골’을 통해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이 어떠한 미묘한 기억의 차이를 가져오는 지 살펴본다는 것. 최용찬 연세대 강사(서양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억문화가 단일하지 않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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