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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인문교육 정수 '코어'...'소크라테스 구하기' 출간 화제
컬럼비아대 인문교육 정수 '코어'...'소크라테스 구하기' 출간 화제
  • 김재호
  • 승인 2022.07.26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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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소크라테스 구하기』 | 로오세벨트 몬타스 지음 |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288쪽

아우구스티누스, 소크라테스, 프로이트, 간디...
미국 대학생들에게 다시 부는 고전 읽기 바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쓰인 3000년쯤 전의 목소리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걸 읽고 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한들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거기에 대해 얘기한다고 한들 무슨 가치가 있을까? 틀림없이 아주 유명하고 박식한 분일 우리 교수님은 이 이상한 시에 관해 과연 어떤 통찰을 전달하려는 걸까?”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집어든 《일리아드》에서 저자가 받은 첫인상이다. 로오세벨트 몬타스, 도미니카공화국의 산골 마을에서 열두 살에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건너왔다. 저소득층 이민자 학생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비리그 대학 컬럼비아에 입학해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교에서 20년간 인문학을 가르치다가 학부 교양 교육의 최고 관리자가 되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그에게도 고전과의 첫 만남은 낯설고 어려웠다.

 

저자뿐 아니라 1937년 이후 컬럼비아 칼리지 학부생은 누구나 코어 커리큘럼, 이른바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Great Books Program)’을 거쳤다. 흔히 ‘코어’라 일컫는 이것은 《일리아드》를 시작으로 고대부터 현재까지 문학과 철학, 윤리학과 정치학, 미술, 음악, 과학을 망라해 지정된 도서를 연대순으로 읽고 토론하는 필수 공통 학습 과정이다. 학습량이 엄청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코어를 경험한 이 학교의 많은 동문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을 바꾼 강좌로 손꼽으며 홍보 대사를 자처한다. 이미 미국의 많은 대학이 이런 프로그램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한 상태다. 그 와중에 컬럼비아의 ‘코어’가 최장수 고전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아 다시금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는 이유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고전은 시대착오적이고 인문학은 사치다? 코어 커리큘럼이 입증하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코어’의 핵심은 명교수의 명강의가 아니다. 다양한 전공과 이력을 가진 교수들은 대화의 조력자일 뿐 수업의 주축은 바로 20명 정도로 이뤄진 구성원 각자의 활발하고 집중적인 참여다. 신입생의 경우에는, 매주 4시간씩 같은 진도로 읽는 책들을 놓고 동급생들과 대화하도록 떠밀리는 상황이 처음에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오한 질문 세례도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자극이 되고, 동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지던 고대의 저자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는 사이 학생은 서서히 스며들듯 스스로 중심을 잡고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방식을 구축해 나간다. 이것이 1년간 이어지면서 지식은 주입식이 아닌 탐구와 성찰의 공유 과정을 통해 축적되고, 공통의 지적 경험은 서로 다른 배경 출신인 학생들이 상호 차이를 초월해 대화할 공통의 어휘를 찾게 된다.

로오세벨트 몬타스는 컬럼비아 강의실에서, 또 취약 계층 고등학생을 위한 여름 캠프에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성찰하는 철학자의 삶을 살라”는 소크라테스 대화편 문구가 21세기 미국을 살아가는 발랄한 청소년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것을 목격한다. 가정 학대를 받다가 위탁 가정에 맡겨진 한 소녀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만나면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고, 급기야 대학 졸업식에서 여러 상을 거머쥐며 미래를 꿈꾸는 현장을 지켜본다. 악랄한 경쟁과 명성의 사다리에서 최상위에 오른 컬럼비아 신입생들이 이런 성취에도 결코 삶의 의미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고심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새로운 세대 역시 저자 자신이 그맘때 그랬듯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리고 무의미함의 위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뿐 아니라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도 관심이 많다. 또한 그들은 삶에 영향을 미칠 내면의 힘을 함양하는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컬럼비아대 인문교육 '코어'의 웹페이지 캡처. 출처=https://www.college.columbia.edu/core/core

대학 신입생, 대학 관계자, 아니 한때 청년이었던 당신이 읽어야 할 올해 가장 뜨거운 자서전!

코어 커리큘럼 같은 이른바 ‘교양 교육’을 통해 인생의 궤적이 바뀌고 풍요로워진 청년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로오세벨트 몬타스다. 종잡을 수 없던,  낯선 세상에서 발 디딜 곳이라도 찾으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이 남미 소년은 요약본을 읽거나 주워들은 지식이 없었기에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위대한 저자들을 대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아우구스티누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프로이트와 간디는 저 먼 세계의 위인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이해하려 애썼고, 물질적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성의 끈을 집요하게 붙잡으려 했으며, 세상의 편견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극기를 몸소 실천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몬타스의 대화 상대이자 스승이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어떤 텍스트와의 조우, 어떤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저자는 대학이 학사 학위 과정에 모두를 위한 공통 교육을 집어넣어 커리큘럼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간호사, 컴퓨터 과학자, 회계사, 사업가, 변호사 등 모든 유형의 전문가들이 교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양 교육을 장차 자유 시민이 될 이들에게 적합한 교육으로서, 단지 성공과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쓸모 있는 교육’과는 엄연히 구분했다. 교양 교육은 생계 요건을 넘어 인간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교육, 즉 “어떻게 먹고 사는가” 대신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묻는 교육이다. 그것은 질문하지 않는 교육, 복종과 순종의 교육, 노예 교육과 대척점에 있다. 그는 오늘날 미국 대학의 고등 교육, 나아가서 시민 문화가 당면한 위험은 바로 교양 교육이 사회적 엘리트의 독점 영역이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양 교육이 오로지 기득권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협한 생각은 이 끔찍한 시대를 되살리고 지속시키는 태도다. 교양 교육은 엘리트들의 무의미한 탐닉이 아니라 사회적 특권의 위계 서열을 전복시킬,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도구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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