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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빈곤…“저게 모차르트야?”가 아쉽다
오페라의 빈곤…“저게 모차르트야?”가 아쉽다
  • 정이창 음악평론가
  • 승인 2006.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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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비평_모차르트 2백50주년 기념방식에 대하여

모차르트 탄생 2백50주년을 맞아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열기는 뜨겁다.

클래식 전문 라디오 방송국은 나흘 동안 모차르트의 음악만을 내보냈으며, 여러 기획 단체들이 본격적인 모차르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방식이 과연 모차르트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혹은 모차르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평론가 정이창이 올해 준비되고 있는 관련 공연에 대한 검토함으로써 이 문제를 짚어봤다.

/ 편집자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올해가 월드컵의 해이겠지만 고전음악 애호가들은 2006년을 모차르트 탄생 2백50주년으로 기억한다. 물론 금년은 슈만 서거 1백50주년이자 쇼스타코비치의 탄생 1백주년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마이너 작곡가들이 금년과 관련된 해에 태어나거나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적인 무게는 단연 압도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 글에서 나는 국내에서 기획되고 있는 모차르트의 공연들을 살펴보고 비판과 제안을 곁들이고자 한다.

미술전시회를 기획한다고 할 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작품을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여기에는 전시회 공간을 구획하고 작품들의 순서를 정하고 액자를 걸고 조명을 결정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이것은 음악 연주회 기획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무엇’의 문제는 레파토리 선정의 문제이고, ‘어떻게’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다.

먼저 레퍼토리 선정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알다시피 모차르트는 당대의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6백곡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르는 역시 오페라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시대에 오페라는 가장 큰 문화적 행사로 꼽혔고,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모차르트는 무엇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해 그가 염원하던 ‘독립 작곡가’의 길을 다지려 했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는 그의 재능과 풍부한 악상, 참신한 기교와 사상적 지향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돈 조반니 ©
그런데 올해 연주 스케줄을 보면(공개되지 않은 기획들도 많겠지만) 모차르트의 오페라 공연이 의외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공연은 4월에 있을 ‘돈 조반니’인데, 이것은 2002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됐던 프란체스카 잠벨로의 연출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또 2월 23~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질 ‘돈 조반니’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4월에 예정됐던 조수미 주연의 ‘마술 피리’ 공연은 성남시의회와 재단의 갈등 때문에 일치감치 취소된 상태이다. 대신 성남아트센터는 3월부터 두달 동안 모차르트의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곡들을 묶어 모차르트 페스티발을 올릴 예정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만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드는 일이어서 과감한 투자와 시장성 없이는 기획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22곡 모두를 무대에 올리는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기획은 우리로서는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오페라를 반드시 원본 그대로 무대에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페라를 콘서트 형식으로 꾸밀 수도 있고, 미니 오페라로 각색하거나 해설을 곁들이는 색다른 시도들도 해볼 만하다. 12월에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마술 피리’를 콘서트 형식으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하는데, 오페라와 콘서트의 경계를 허무는 이런 기획들은 앞으로도 계속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오페라를 제외하면 모차르트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양식은 바로 협주곡이다. 모차르트는 본질적으로 무대 음악 체질이었고 이런 특징은 기악곡에도 잘 나타나는데, 그는 특히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경합을 벌이면서 화합을 이끌어내는 협주곡 양식에 많은 애정을 보였다. 그는 26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해 총 45곡의 협주곡을 남겼다. 이런 모차르트의 협주곡 전곡을 무대에 올리는 의미 있는 행사가 지난해부터 열리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주최로 총 15차례 기획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회 2005~2006’이 그것이다.

▲Salzburger Schlosskonzerte ©
그밖에도 실내악 연주가 눈에 띄는데 아무래도 무대에 올리기가 용이한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금호아트홀에서 잘츠부르거 솔리스텐과 국내 연주자들이 함께 만드는 ‘제1회 잘츠부르크 음악주간’이 마련돼 있고, 호암아트홀과 모차르트홀도 비슷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 중 주목할 것으로는 허승연과 손열음이 도전하는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프로그램이 있고, 내한공연으로는 안네 조피 무터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무대를 꾸민다고 한다. 물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기획공연으로 자리잡은 예술의 전당의 ‘교향악 축제’도 빠지지 않는다. 20여 개의 국내 교향악단이 돌아가며 모차르트의 곡을 차례로 들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늘 듣던 레파토리…미사곡 ‘20편’ 조명할 기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몇십 년 만에 찾아오는 이런 기회가 그동안 자주 듣지 못한 레파토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분야는 그의 미사곡들이다.

모차르트는 스무 편 정도의 미사곡을 남겼는데 거의 대부분이 잘츠부르크 시절에 쓴 곡이다. 궁정 음악가로서 복무하면서 완성한 곡들로, 여기에는 모차르트의 의무감과 자유로운 표현 사이의 갈등, 바로크 스타일의 양식과 고전주의 형식의 충돌이 흥미롭게 드러나 있다. 오늘날 모차르트의 종교 음악이 거의 ‘레퀴엠’으로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올해는 이런 주변적이지만 흥미로운 곡들이 조명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제 앞서 말한 두 가지 문제 중 해석의 문제로 넘어가자. 이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곡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오페라의 경우, 최근에는 음악적 해석 못지않게 연출자의 역량이 강조되는 추세인데, 이런 점에서 볼 때 모차르트의 음악에 담긴 사상적 근대성(혹은 전근대성)에 어떻게 현대적인 옷을 입힐 것인가 하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악 음악의 경우에는 원전 연주를 먼저 들 수 있는데, 올해 모차르트와 관련된 원전 연주로는 국내 고음악 연주 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한양’의 가을 공연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내심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피아노와 포르테피아노를 번갈아 가며 비교 연주하는 프로그램 정도는 기대했는데, 이런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기획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악기편성의 과감한 재편으로 ‘그’를 기억해볼까

실내악곡의 경우 악기 편성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싶다. 가령 바이올린 소나타를 첼로 소나타로 편곡한다거나 현악 5중주를 목관악기 앙상블로 편곡하거나 실내악곡의 피아노 반주를 하프시코드로 바꿔보는 등의 시도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것은 그저 색다른 시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 당시 꽤 일반화된 관행이기도 했다. 악기 편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함을 보였던 시절에 만들어진 곡들을 이렇게 연주함으로써 우리는 미처 보지 못했던 곡의 매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차르트를 단순히 옛날 음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음악으로 체험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모차르트를 제대로 축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모차르트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면 성공한 공연이라고 믿고 싶다. 공연이 끝났을 때 “저게 바로 모차르트야!” 하는 말 대신 “저것도 모차르트일까?” 하는 말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이는 모차르트가 규정하기 힘든 모순된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왕정이 시민사회로 교체되던 때에, 후원자가 귀족에서 중산층으로 바뀌던 시대에 살았다. 모차르트는 계몽주의자이면서도 귀족을 멸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천재성을 모르는 사회를 원망하면서 관습과 내적 표현을 부단히 저울질한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투쟁인 동시에 타협이고 오락인 동시에 예술이었다. 모차르트를 오늘날 사랑 받는 작곡가로 만든 것은 그의 순진무구한 천재성이 아니라 바로 이 같은 인간적인 모순이었다.

정이창 / 문화비평가

대학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했고, 음악과 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케임브리지 대중 음악의 이해’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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