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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모차르트: 젊은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論
나와 모차르트: 젊은 피아니스트의 모차르트論
  • 김주영 피아니스트
  • 승인 2006.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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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것을 싱겁게 해석하는 길

단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철이 없었던 대학 시절, 같은 음악대학 후배 하나가 맘에 들어 잠시 ‘작업’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별 무리 없이 진행되던 연애 작업이 커다란 벽에 부딪힌 사건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에서 비롯됐다. “오빠, 난 모차르트같이 단순하고 싱거운 음악에는 흥미가 없어요. 도대체 ‘도오 미 솔 시 도레도…’ 이게 뭐람?” 막연한 경외심으로 제목붙일 수 있는 철저한 조기 교육의 영향으로 음악도들의 한없는 존경의 대상인 위대한 모차르트의 음악을 ‘싱겁다’ 니! 게다가 그녀가 읊조린 멜로디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차르트 음악 중 가장 연주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오던 피아노 소나타 K545가 아닌가. 음대생들에게 있어 모차르트 코드의 불일치는 심각한 의견 차이인 바, 섣부른 연애는 그야말로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단순함…. 모차르트를 해석하면서 꼭 떠올려야만 하는 덕목임에 틀림없다. 작품을 연주할 때마다 나는 그의 작품이 가장 쉽고 단순하게 들리도록 해석의 방향을 잡으려 노력한다. 개인의 취향 차이도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차르트라는 미로에서 물음표를 등에 가득 짊어진 채 표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암시랄까.

추상.

결코 잡을 수 없이 날아가 버리는 음악 예술의 추상성은 타 장르의 속성과 분명 그 출생부터가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그 색깔의 애매모호함에 있어 모차르트를 따라갈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다. 이제는 추억의 명화가 돼버린 ‘아마데우스’ 는 감독 밀로스 포먼의 강렬한 영상도 인상적이었지만 총천연색의 모차르트 음악이 장편의 영화 시종을 수놓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품위없고 경박한 천재, 이 천재성을 시기하는 살리에리와의 관계 등, 피터 셰퍼의 원작이 실제 사실에 근거한 판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 ‘착각’ 속으로 기꺼이 빠져들게 되는데, 고전파의 황금 시기를 관통한 절대성과 추상성의 상징이랄 수 있는 모차르트의 걸작들이 이 환상성에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교향곡 25번, 오페라 ‘돈 조반니’ 2중창…. 영화에 등장했던 작품들을 듣고 있자면, 장면장면이 떠오르기보다는 묘하게도 모차르트라는 인물의 신비스러움만이 자연스레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곤 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왔다가 35년만에 훌쩍 사라져 버린 이 천재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판타지가 아닐까.

모순.

조울증의 기질도 보였던 모차르트가 몹시도 우울한 상태에서 썼을 법한 작품들이 몇 곡 있는데, 모두 보석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중 2악장, 피아노 협주곡 23번 중 2악장, 바이올린 소나타 K304, 환상곡 K397 등…. 그의 마이너(단조) 작품들의 매력은 귀족적인 우수와 달콤한 감상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안에서 묘한 느낌으로 배어나오는 ‘밝음’ 이 마치 마법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른바 ‘달콤한 슬픔’ 에 빠져들고 싶은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건드린다고나 할까. 한없이 어두운 심연에서 어느덧 만나게 되는 희미한 기쁨은 금방이라고 비를 퍼부을 듯 찌푸린 구름 사이로 비춰 내려오는 햇살의 기적에 다름 아니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고전파 작곡가들이 완성시킨 소나타 형식은 상반된 요소들의 대조와 결합을 그 생명으로 하고 있는데, 모차르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인간의 감정, 즉 희노애락을 한 데 버무리려는 시도를 한 작품 안에서 꾀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찌보면 모순된 이 작업들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의 숙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주.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작품’의 대표주자는 역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이다.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하는 설득력있는 달변가의 말처럼 간결하게 쓰인 음표들, 그 안에서 작곡가의 의도를 찾아내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모차르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나이가 먹을수록 어려운 일이다. 그의 작품해석에서 필수적인 ‘어린이 같은 순수함’ 이라는 덕목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언뜻 성기게 느껴지는 음들 사이에 연주자 자신의 웅변을 보인다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치명상을 입는다. 대신 때로는 수다스럽게, 때로는 선문답처럼 늘어놓은 음들 사이의 숨겨진 규칙과 의미를 깨eke고 그 우주적인 스케일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모차르트는 자신의 작품속으로 나아가는 첫째 관문의 열쇠를 건네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끝없이 순수함을 추구하는 내 안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것.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 엄청난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선물.

얼마 전 한 TV 인터뷰에서 담당 PD가 내게 음악가가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모차르트란 어떤 존재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라고 운을 떼려고 했으나, 이미 내 입에서는 이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모차르트는 저같이 미미한 음악가가 감히 정의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그저 우리에게 신이 보내준 고마운 선물이자 ‘감사’ 이지요” 올해는 우리 인류 최대의 선물인 모차르트가 그의 선율과 함께 찾아온 지 2백50년이 되는 해이다. 자신의 모차르트관이 세운 높은 목표에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만이 우리 음악가들이 그 선물에 대해 보답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기념해이고 하니, 이번 일 년 동안은 그 고마운 빚을 한꺼번에 갚을 길은 없을까. 요즘 모차르트 악보를 앞에 놓고 내가 하는 최대의 고민이다.

김주영 / 추계예술대·피아니스트

필자는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서 연주박사과정을 마쳤다.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예술기념 국제 콩쿠르 등에서 수상했으며, ‘슈베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 페스티발 독주회’ 등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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