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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하여튼
글쎄, 하여튼
  • 박구용
  • 승인 2022.07.2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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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글쎄. 남이 나에게 뭔가를 묻거나 바라거나 구하는 상황에서 대답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고 싶을 때 혹은 반대로 자신의 뜻을 강조하거나 고집할 때 쓰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할 말, 곧 말 같지 않은 말이다. 

말문을 열 준비가 부족하거나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울 때는 ‘글쎄’로 얼버무릴 수 있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거래나 유혹, 혹은 외교 상황에서 적지 않게 쓰는 이유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나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낱말이다. 

도어스테핑(doorstepping). 수시로 문간을 넘어서서 잠입 취재를 하려는 기자들을 붙잡고 짧은 시간 진실과 진심을 전하려는 회견이란다. 문간에서 이루어지는 회견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진솔하게 말할 수 있다. 선별이나 신중을 기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할 수 있다. 거리낌과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 프랑스 철학자 푸코(M. Foucault)가 띠운 개념인 파레시아스트(parresiastes)에게 도어스테핑은 즐거운 만큼 위험하다. 

진실은 대부분 잔인하고 쓰다. 진실은 그동안 진리와 정의로 인정하고 합의한 것들을 뒤흔들며 불안과 동요를 몰고 온다. 겁에 질린 노예나 무조건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웅변가의 수사학은 진위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말한다. 반대로 파레시아스트는 대중이 듣기 좋아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참말을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가차 없이 진실을 말한 대가로 독배를 마셨다.    

도어스테핑 브랜드를 가진 현 대통령은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을까? 여기서 능력은 두 가지, 인식론적 능력과 윤리적 능력을 포함한다. 인식론적 능력이란 진실을 말하기에 앞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 능력을 갖추려면 진리를 향한 열망으로 사유하고 소통하며 공부하는 힘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윤리적 능력이란 내가 알게 된 진실이 비록 누군가에게 불편하거나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가감 없이 말하는 힘이다. 이 능력은 고통을 감내하는 열정만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가져올 작용과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결단이 가져 올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한다. 특히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이 가져올 현실의 변화와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의 경우 진실을 말함으로써 생겨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모든 정보와 전문 지식이 한 사람인 그에게 집결, 집중된다. 이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소화하고 결단을 내렸다면, 그에 따라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야 한다. 

신선하다. 소탈하다. 가깝다. 당당하다. 달변이다. 정곡을 찌른다. 자심감이 넘친다. 국민선물이다. 도어스테핑을 시작했을 때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찬사다. 대통령의 능력과 브랜드라며 의미를 과잉 부여한 언론들은 한동안 최고 권력자와 은밀한 동거를 즐겼다. 서로를 칭찬하며 진실의 문턱에서 매순간 진리의 문을 함께 닫아온 것이다. 그런 언론중 하나인 <동아일보>가 모처럼 하나의 진실을 밝혔다. 도어스테핑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쓴 단어 중에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은 ‘글쎄’(52회)와 ‘하여튼(10회)이라고 한다.  

말뜻으로만 보면 현 대통령은 책임 회피와 상황 회피를 위해 꾀를 부리는 듯하다. 그 와중에 고집까지 부린다.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는 교육부장관을 두고 ‘하여튼’,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도 되묻는 대통령은 무능(무지와 무책임)한 것일까, 뻔뻔한 것일까? 글쎄요!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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