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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이상이 되는 무서운 현실
상식이 이상이 되는 무서운 현실
  • 손화철
  • 승인 2022.07.2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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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나는 여전히 입학사정관제와 수시전형 위주의 대학입시가 좋은 제도라고 믿는다. 학습 환경이 좀 열악하고 수능 점수가 낮아도 선생님과 학생이 열정을 가지고 다양한 학습 활동을 하면 대학에 합격할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수시전형을 권장할 때는 교사의 창의성이 장려되고 중·고등학교 교실이 약간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수시전형도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여전히 우리의 자녀는 공부하러 대학에 가기보다 대학에 가려고 공부한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봉사도 하고 창의적인 수행학습도 하지만, 결국 다 대학 합격을 위한 수단이다. 아이들도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안다.

애당초 진정한 역량 개발과 지식 축적의 중요성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부작용이 생기면 피상적인 ‘공정’ 타령을 하고,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하는 객관식 선다형으로 회귀한다. 그러니까 시험 위주, 암기 위주, 객관식 문제 풀이 등 창의성을 죽인다는 방법론은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필요하면 미국 대학도 속여 넘기는 극성 부모들 덕에 수시전형의 비중은 줄었는데, 대학에는 뒤늦게 그 아류가 들어와서 프로젝트 수업과 인턴, 공모전, 현장실습, 계약학과 등이 어느새 대세가 되었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만들라는 정부와 기업의 요구 앞에 서면, 대학의 기존 교육방식은 낡고 게으르고 무책임한 것이 된다. 교실 강의 대신 실제 문제해결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아예 현장에서 ‘인턴’ 혹은 저임금 노동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유익하다고 한다. 교육부는 조건부 예산을 흔들고 대학은 그저 납작 엎드릴 뿐이다.

수시전형은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일부 도움이나 되었다지만, 비슷한 모델이 작동하는 대학은 정체성 위기에 빠진다. 학생한테는 엄청난 등록금을 받으면서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제로섬의 취업 경쟁 싸움터에 내몰고, 산업계 인력양성의 공급처를 자처하는 것은 모순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수시전형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듯 프로젝트와 현장실습이 이 모순과 비도덕의 원인은 아니다. 그 방법은 얼마든지 학생의 역량을 높이고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이나 정부뿐 아니라 학생, 교수, 대학조차 그런 활동을 각자의 ‘현실적인’ 목표인 취업이나 대학평가, 산업발전을 위한 수단으로만 본다는 데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 무너지는 궁극의 이유는 부적절한 방법과 내용이 아니라 원칙과 태도의 왜곡이다.

대학에서만이라도 현실 타령을 멈추고 이상(理想)을 앞세울 수는 없을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공부를 잘 하려고 시험을 치는 것이지 시험을 잘 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돈과 대필과 인맥으로 얻은 성공은 실패라고, 사람은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공급하는 ‘인력’ 이상의 무엇이라고, 그놈의 ‘현실’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기가 왜 힘든 것일까. 상식에 속해야 할 그런 말을 ‘이상적’이라 해야 하는 현실이 나를 압도하고, 내 아이와 학생이 그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섭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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