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9:30 (목)
소수민족, 국경으로 분리되다…경계에 놓인 사람들
소수민족, 국경으로 분리되다…경계에 놓인 사람들
  • 장정아
  • 승인 2022.07.28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하다_『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 중국 윈난성 접경지역 촌락의 민족지』 장정아·안치영·왕위에핑·녜빈 지음 | 인터북스 | 294쪽

국경선 86%인 1.9만 킬로미터에 소수민족 거주
접경지역이 지닌 정치적 자율성의 낭만화는 지양

“마을 땅을 팔아넘기는 문제에 대해 마을 지도자들은, 당원이 결정하면 되고 농민은 결정권이 없다고 하더라. 그건 군중을 배신하는 거다.”

“문화대혁명 때 훼손된 사찰을 재건하려고 관원을 만났을 때 그가 사찰이나 초등학교나 마찬가지라고 (굳이 재건할 필요 없다고) 하기에 나는 그에게 말하길, 당신이 말하는 유심주의(唯心主義)든 유물주의(唯物主義)든 상관없이 나는 이 절을 꼭 지어야겠다고 했다.”

“내가 라오스 가서 집을 지을 때 이 며느리를 보고는 아들에게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작은 길로 2시간이면 라오스에 가니까 아들이 가서 보고는 첫눈에 반해서 3주일만에 데리고 와서 결혼했다. 결혼식 3일 낮밤 동안 라오스에서 3만 위안 이상 썼다.”
 
- 현지조사 과정에서 만난 중국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의 말

중국은 2.2만 킬로미터의 긴 국경선 중 86%가 넘는 1.9만 킬로미터가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접경지역이다. 근대 이후 그어진 국경은, 이 소수민족이 생활하던 공간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고, 이들의 생활공간과 국경 간의 괴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간의 행위 범위를 제한하는 가장 강력한 규제력을 가지게 된 국경은, 이들의 생활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제약하지만은 않았다. 

 

국경으로서의 경계선과 변경・접경지대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는 지적, 그리고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으로서 접경지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계속 이뤄져 왔다. 그러나 중국에서 접경지역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국경의 괴리는 국경 결정 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주변적인 위치에 있었다. 우리 필진들은, 중국의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 즉 변민(邊民)들은 국경에 의해 생활공간이 나뉘었지만 여전히 전통적 생활공간에 기반한 활동과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연구했다. 우리 책에서는 바로 이러한 중국 윈난(雲南)의 라오스 접경지역 다이족 촌락에서 이런 변민들의 초국가적 교류를 조사연구하며 국경과 국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우리는 또한 이 마을의 통치체제와 토지관리에서 전통적 관행이 어떻게 연속되며 변화해 왔는지, 마을의 정치적 권위와 합법성을 둘러싼 경합이 어떻게 벌어지고 정치와 종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연구하였다.

현대 중국-베트남, 중국-라오스 국경조약 체결 과정에서 소수민족은 소외되었지만, 1957년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来)는 국경이 아직 획정되지 않은 지역에서 이후 국경을 획정할 때 소수민족 공간이 국경에 의해 분리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국경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 비록 국경의 획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민족이 국경 경계선에 의해 분리된다는 문제점은 중국정부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원래 살던 공간에 국경선이 사후에 그어짐으로써 분리된 이들은 ‘경계에 걸쳐있는 민족’, 즉 ‘과계민족(跨界民族)’이 되었다. 과계민족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국경 지역에 대해, 민족과 문화와 경제생활이 단절되고 이질적인 것이 접합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민족・문화・생활 공동체가 인위적으로 나뉜 공간이라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국교 단절돼도 혼인·경제교류 이어져

필진들은 현지조사 과정에서, 중국 윈난 접경지역의 소수민족들이 중국과 라오스 국교가 단절되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여전히 국경을 넘나드는 혼인과 경제교류를 해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국경 관리가 규범화된 최근까지도, 정해진 통상구를 통한 왕래가 아니라 오솔길을 통한 관행적 왕래도 계속 이어져 왔다. 변민들의 교류는 한편으로는 기존 생활공간에서 이루어져 온 전통적 활동의 연속이지만, 다른 한편 국가의 범위를 넘는 초국가적인 교류로서 전통과 관례에 따른 자율성을 지니는 동시에 국가의 특수한 관리와 묵인 하에 이루어져 왔다. ‘변민증’이라는 특수한 신분증의 발급 그리고 관례적 왕래에 대한 불간섭은, 변강이 국경선에 의해 단절되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를 뛰어넘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지역이 되게 해주었다.

중국은 14개 국가와 육지 국경을 접하고 있고, 그 중 13개 국가와 중국 사이에는 국경에 걸쳐 거주하는 30여 개의 민족이 있으며, 중국 윈난 지역에만 16개의 과계민족이 있다. 우리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약 2년간 현지조사를 수행한 마을은 조사 당시 110가구 500여 명으로 이뤄진 다이족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라오스의 다이족 마을과 친척지간으로 왕래가 빈번했는데, 이들에게는 변민증이 발급되지만 우리가 2016년 인터뷰한 마을 주민은 변민증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신경도 안 쓴다고 하면서, 3-4개월에 한 번씩 뒷길로 그냥 라오스로 놀러다닌다고 했다. 즉 변경지역 주민들에게만 독특하게 발급되는 편리한 통행증조차 없이 국경을 출입해도 변방수비대의 간섭조차 받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변경에 대한 관리에는 국경선에 대한 관리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변경의 역사와 전통을 인정하며 변경지역 자체를 특수하게 관리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변경의 민족 지역은 ‘낙후된 전통’과 역사의 공간이지만, 역사와 전통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강은 과거의 유산이지만 과거의 유산이 미래와 접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접합은, 선으로 그어진 근대 국가 중국이 변경지역에서 선을 가로질러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공간과 활동에 대해 제도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인정하고 묵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필진들은 공동으로 현지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토론을 하였다. 접경지역 소수민족이 거의 아무런 제한 없이 산속 오솔길로 국경을 넘나드는 걸 직접 관찰하면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특히 주된 주제였는데 우리는 접경지역의 정치적 자율성을 지나치게 낭만화해선 안 된다는 데 합의하게 되었다. 중국이나 동남아 접경지대에서 중앙집권적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화하며 자율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학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연구진은, 이러한 오리엔탈리즘과 낭만화를 극복하면서 아시아적 시각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실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통해 충실한 자료를 기반으로 이론화해나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조사를 수행했다. 

 

중국-라오스 경계비. 사진=장정아

우리가 현지조사에서 발견한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 마을에서 1980년대부터 호별영농제를 실시하며 토지분배를 할 때 마을사람들이 여러 차례 토론하며 다른 마을과 다른 분배 방식을 택했다는 사실인데, 이들은 마을 토지 전체를 평균 분배하지 않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 면적에 따라 분배했다. 즉 각 가정이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땅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른아침 소수민족 농민들이 논밭에 바치는 의례를 관찰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하에서 허용되고 있는 민간 신앙은 토지와 사용자 간의 연결을 강화해주며, 의례에 대한 국가의 묵인은 촌민들이 토지를 더 열심히 관리하도록 독려하는 작용을 한다. 근대 국민국가는 눈에 보이는 경계선을 통해 영토를 확정하고 영역화를 실현하는 한편, 문화적 통치나 법률 또는 행정적 명령을 통해 국경선을 관리하며 접경지역 국민들에게 국가 관념을 고정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우리는 전통 문화를 무시하는 마을 촌장에 대한 촌민들의 반발도 볼 수 있었다. 마을 집단이주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촌민들은, 신과 영혼에 대한 자기 민족의 관념을 지켜야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으며 거세게 저항했고, 통치의 합법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촌민들은, 지역 관료에 대해서는 불신하면서도 국가에 대해서는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을을 잘 ‘보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을사람들 내부에서 특히 연령에 따라 점점 격렬해질 관점 차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토론과 수렴을 해나갈 수 있을까, 점점 통제가 강화되는 국경은 접경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국경을 상당히 자유롭게 드나들며 살아온 변민들에게 있어서 ‘전통’은 결코 고정된 의미일 수 없을 터인데, 이런 역동성 속에서 ‘전통’의 의미는 어떻게 계속 경합되며 재구성될 것인가, 이런 변민들에게 국가와 국경은 어떤 의미이며, 또 이들은 국가와 국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안고 앞으로도 계속 연구해 나갈 것이다.

필자 중 장정아와 안치영은 중국 저장대(浙江大) 류자오후이 교수와 2014년부터 약 2년간 공동 조사연구를 통해 중국 촌락에서의 향촌재건운동에 대해 살펴보고 전통성과 향토성의 변화하는 의미를 고찰하여 『경독(耕讀): 중국 촌락의 쇠퇴와 재건』이라는 책으로 엮어낸 바 있다. 『경독』은 현지 정부 및 촌민과 지속적 토론을 통해 연구와 실천을 결합시킨 참여식 촌락 민족지(ethnography)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번에 나온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는 우리가 중국 연구자들과 함께 중국 촌락에서 수행한 공동 조사・연구의 두 번째 성과물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국경지역 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외국인 연구자의 조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향후에는 현지조사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계속 연구를 확장해나가면서, 접경지역에서 국경을 가로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국가 권력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함으로써, 변경의 관점으로부터 국가에 대한, 나아가 국가들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가 이 책에서 주목한 과계민족이 접경지역을 어떻게 역동적 공간으로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정아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중어중국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