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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낯선 여행을 떠나다
‘가지 않은 길’ 낯선 여행을 떠나다
  • 유무수
  • 승인 2022.07.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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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 김인순 옮김 | 알키 | 280쪽

14세 소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중년
결국 주인공 아셴바흐는 콜레라로 사망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익숙한 환경에서 의식되지 않았던 자아의 한 측면이 여행을 통해 떠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래 전 아내와 사별하고 50대에 접어든 아셴바흐는 엄격하게 자신을 규율하며 금욕적이고 고독한 작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배낭을 멘 여행객을 보는 순간 젊은 시절처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갈망이 솟구쳤다. “그 욕구는 발작처럼 엄습해서는 점차 열정적인 것으로, 그야말로 환각을 야기할 정도로 고조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곳을 향한 동경이었고, 규율과 일상의 작업장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리하여 베네치아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베네치아 호텔에서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폴란드 미소년 타지오를 보는 순간 아셴바흐는 14세 소년의 아름다운 외모에 감탄했고 매혹됐다. 그 이후 아셴바흐는 마치 여행의 목적이 타지오와 가까워지려는 것처럼 변한다. 아셴바흐는 호텔 이발소에 들락거리며 좀 더 젊게 보이는 화장까지 하며 외모를 가꾼다. 소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모든 관심과 열정은 오직 타지오를 향한다. 베네치아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휴가객들이 베네치아를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타지오 가까이에 머무르려 애쓴다. 콜레라에 걸려 죽을 가능성보다 타지오와 조금이라도 친밀해질 가능성이 더 중요했다. 결국 아셴바흐는 콜레라에 걸려 허무하게 죽는다.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는 단풍이 든 숲속의 두 갈래 길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되돌아보며 그때 멀리 끝까지 바라보기만 했던 다른 한쪽 길을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리움과 회한 같은 것이 반영된 시였다. 김인순 옮긴이는 “아셴바흐는 이루지 못한 꿈을 갈망하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동경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설했다. 소설에서는 멀리 있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그 모습이 뚜렷이 부각됐다. 아셴바흐가 젊은 시절부터 에로스의 열정만을 쫓아 욕망과 쾌락에 탐닉하기를 선택했더라면 이번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작가의 삶을 절제 있게 살았더라면…’ 하는 동경이 발작처럼 솟구치지 않았을까.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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