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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텔레비전 문화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
  • 최승우
  • 승인 2022.07.18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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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엘리스 지음 | 하종원 외 1명 옮김 | 컬처룩 | 364쪽

“다양성이 힘이며, 차이를 통해 배운다” - 해나 개즈비

최근 종영한 tvN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과 농인 연기자가 배역을 맡아 출연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간 국내외를 막론하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 역할의 경우 대부분 비장애인 연기자가 맡았으며 장애인 연기자가 등장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더라도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그리거나 혹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 실제와 괴리가 있다. 그들은 비극적인 상실감과 나약함을 갖거나 삶에 무책임한 모습으로까지 비추어지기도 한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이러한 장애인의 모습에서 장애인 스스로가 공감할 존재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비장애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왜곡되어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디지털 시대 텔레비전 문화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장애인이 텔레비전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으며,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분석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책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 디지털 시대의 재현, 접근, 수용]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장애 재현의 문제를 살펴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장애인이 텔레비전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장애인 공동체가 견지하고 있는 통찰력을 보여 줌으로써 이론과 현실의 접점을 시도한다. 또한 오늘날 확장되는 미디어 시대에 텔레비전의 공유성을 재점화하는 사례로 넷플릭스나 TED 토론, 웹 시리즈 등도 분석하고 있다. 디지털 수용자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집단 지성의 온라인 포럼까지 확대되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텔레비전 양식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곳곳에 나오는 장애인과의 인터뷰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도 여전히 척박한 디지털 텔레비전 환경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은 장애인을 위한 방송 접근 서비스 등과 관련해 호주의 사례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전 지구적인 상황에서 포괄적으로 살펴본다. 장애와 관련된 기술 개발이나 법률 제정은 국내적 차원을 넘어 국가 간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며, 각 나라의 문화적, 산업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은 그리 다르지 않게 하향 ‘표준화’되어 있다. 그런 견지에서 이 책의 논의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담보한다.

디지털 환경은 장애인의 접근성을 확장하는가
인터넷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함한 미디어 산업의 성장과 기기 보급은 인류의 삶에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다. 웹의 아버지로 불리는 팀 버너스리는 월드 와이드 웹을 구상할 때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가능한 접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막과 화면 해설이 제공되지 않으면 많은 장애인 공동체와 장애인은 오늘날의 다양한 미디어를 즐기고 참여할 수 없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자막이나 화면 해설 서비스를 전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운용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게다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서 제공되는 자막이나 화면 해설 기능은 도리어 비장애인이 콘텐츠를 즐기는 편의 수단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방송 접근 서비스는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으며,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텔레비전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나라가 국가 정책 차원에서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도 2011년 12월 ‘장애인 방송 접근권’ 고시를 제정하였으며, 2021년 10월 ‘소외 계층을 위한 미디어 포용 종합 계획’을 발표하여 5년간 추진할 계획으로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로 간주하는 시혜적 정책 방향, 접근 서비스의 제공을 부수적인 비용이 드는 부차적인 업무라고 여기는 방송사업자의 상업적 시각 그리고 정상적인 우리와는 다른 비정상적인 존재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디어 격차 없는 행복한 포용 국가의 실현’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의 재현과 접근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믿기지 않는 듯 복도를 서성였어요. 마치 누군가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 것 같았어요. 그 세계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을 내 귀로 볼 수 있었어요.” (Cronin & King, 1998)
-- 텔레비전의 화면 해설을 처음 접한 한 시각 장애인의 소감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말하자면 그저 우리를 연결해 달라는 것이에요. 우리에게 기회를 주세요. 침묵 속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매일매일은 아무것도 없는 나날이에요” (Newell, 1982).
-- 텔레비전에 자막을 요구하는 중증 청각 장애인의 호소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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