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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선구자의 목소리  
여행 선구자의 목소리  
  • 김병희
  • 승인 2022.07.22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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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③ 김찬삼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자 사람들은 다시 해외여행의 꿈을 꾸고 있다. 1989년에 내국인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해외여행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해외를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1987)나 한비야 작가의 여행기가 인기를 끌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온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든 김찬삼(1926~2003) 선생이 있었다.

1958년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한 그는 세 차례의 세계 일주여행을 비롯해 20여 번의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160여개 나라의 1천여개 도시를 찾은 우리나라의 1세대 여행가다. 이를 거리와 시간으로 환산하면 지구를 32바퀴 돌며 14년 동안 해외여행을 한 셈이다. 

김찬삼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世界一周無錢旅行記)』(어문각, 1962. 1. 10. 출간)는 저자가 1958년부터 1961년까지 2년 10개월 동안 북미, 중미, 남미, 아프리카, 유럽, 중동 등 59개국을 여행하면서 겪은 세계의 풍물(風物)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다음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지리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각국의 해괴한 풍속과 인정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보여주었다. 인천고등학교에서 5년간 지리교사로 근무하다 사표를 쓰고 세계여행을 떠난 그는 여행의 목적이 “소박한 인간 공부를 하는데 있다”고 말했다(동아일보, 1963. 1. 11.). 이 여행기는 사람들에게 드넓은 세상을 향한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첫 번째 세계일주 여행을 마쳤을 때 그는 겨우 35살이었다.  

어문각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 광고(조선일보, 1962. 1. 11.)

어문각의 광고 『세계일주무전여행기』를 보자(조선일보, 1962. 1. 11.). 광고 지면을 세 등분해 중앙에 책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왼쪽에는 저자가 페루의 안데스 고원에서 만난 현지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4×6판 그라비어, 360쪽, 300여장의 사진, 고급 인쇄, 미려 양장, 책값 1,200환 같은 정보를 상세히 소개했다. 대한지리학회가 주최하는 ‘여행 보고 강연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세 등분한 광고 지면의 오른쪽 부분에 배치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강연회 개최 일시와 개최 장소(국민회당)를 알리고, 당시에는 드물었을 “현지 촬영 슬라이드 동시 상영” 정보와 “입장 무료” 안내도 별도로 강조했다. 대한지리학회의 주최로 강연회를 한다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출간 직후에 이런 행사를 했으니, 책 판매를 위한 공동 마케팅의 성격이 짙었다. 어문각의 후원을 바탕으로 강연회를 열었으리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강연회까지 열었다니, 지금 시점에서 보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다. 

세계일주무전여행기 어문각 초판 1962

저자는 초판본 머리말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십여 년 동안 담배와 술을 금하고 푼푼이 저금한 돈 60여 만환을 마련해 (…) 한국인으로서 세계여행 역사에 신기록을 세워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59개국을 두루 다니는데 2년 10개월이 걸렸는데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지구를 세 바퀴 반 돈 셈이죠.” 이 책은 발간 15일 만에 3쇄를, 그해 10월 15일에 8쇄를 찍었고, 저자는 저명인사로 떠올랐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언감생심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던 시기의 핫 뉴스였다. 마치 막혀있는 벽을 허물고 새로 창문을 내듯, 이 책은 한국인의 막힌 가슴에 ‘세계를 향한 열망의 창문’을 달아주며 언젠가 세계 곳곳을 마음껏 누비고 싶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김찬삼은 1963년 1월부터 1964년 8월까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일대로 제2차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를 횡단하던 그는 1963년 11월에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박사가 활동하던 가봉공화국의 람바레네 밀림 병원을 방문해, 당시 91세이던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15일 동안 생활했다고 한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1972년에 삼중당에서 『김찬삼의 세계여행』 3권을 출간해 1981년에 10권으로 완간했고, 1986년에 한국출판공사에서 재출간했다. 당시의 학교 도서관이나 가정의 거실에는 10권짜리 전집 한 질이 전시돼있는 경우도 많았다. 100만부 이상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우리나라 여행기의 기념비적 저서로 자리 잡았다.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갔다. 청소년들은 특히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비견할만한 ‘서방견문록(西方見聞錄)’ 성격의 이 책은 지금의 배낭 여행자, 여행 작가, 여행 유튜버에게 선구자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한 곳만 가본 사람은 책의 한 페이지를 읽은 것이라 말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에 비춰보면, 김찬삼 선생은 1천여 쪽 이상의 책을 읽으며 두툼한 한 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에서 광고학 박사를 했다.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과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디지털 시대의 광고 마케팅 기상도』(학지사, 2021),「광고의 새로운 정의와 범위: 혼합연구방법의 적용」(2013) 등이 있다. 한국갤럽학술상 대상(2011), 제1회 제일기획학술상 저술 부문 대상(2012),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의 우수 연구자 50인(2017) 등을 수상했고, 정부의 정책 소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19)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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