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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羽化登仙)의 한국 젊은 디자인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한국 젊은 디자인
  • 조현신
  • 승인 2022.07.1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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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㉔_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이번 호로 '디자인 파노라마'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와 수고해 주신 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국 텔레비전 교육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 등장한 한국계 미국인 ‘지영’. 사진=AP·연합뉴스
미국 텔레비전 교육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 등장한 한국계 미국인 ‘지영’. 사진=AP·연합뉴스

한류 열풍이 부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미국의 장수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 한국계 미국인인 7살의 지영이 등장했다. 지영이는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는 보통 똑똑하거나 현명하다는 뜻이고, ‘영’은 용감하거나 힘이 세다는 뜻이죠.” 그야말로 한국 어린이 그대로다. 1969년 첫 방영 후 53년 만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등장한 지영은 전자기타와 스케이트보드가 취미이며 앞으로 록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 반대 홍보 역할을 한다. 한류 콘텐츠 업계는 이를 두고 2020년 이후의 한류가 이전까지의 한류와 달리, ‘한국적 삶의 패턴’이 세계화되는 과정임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호주 국립대에서 부총장으로 재직하다가, 오래전 한국에 온 후 계속 체류를 연장, 이제는 돌아갈 마음이 아예 없다. 한국어가 완벽한 그는 “호주는 ‘재미없는 천국’이지만,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하면서 다양하며 재미있고, 역동적이며 극한적으로 바쁘지만 정이 많은 게 한국문화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런 단어가 그대로 ‘한국적 삶의 패턴’으로 한류의 각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이제 거의 정설이다. 그럼 삶의 패턴으로서 한국 디자인은 어떠한가?

 

전통 미감, 개항 150년과 서구문화 

한국 전통 예술 혹은 공예품의 미감과 취향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가 그 특성을 개념화해 제시했다. 조선 후기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가 규정한 단순미와 소박미를 비롯하여 구수한 큰 맛, 비애미, 담백하고 청아한 맛, 비균제성과 자연 순응성, 자연의 미 등을 지나 자유분방함, 호방함, 흥 등의 개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는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개념들이다. 즉 즉물적 기표를 통한 정보의 인식이 아닌 직접 그 대상을 음미해야 하는 것이다.

한 예로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려 귀족 문화의 정교하고 화려한 미감을 단박에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등에 앉아보면 바람과 물소리의 스테레오 사운드까지 누각에 그대로 담은 디자인을 느끼며 “아, 이런 것이 혹시 무위의 디자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상류층의 고유한 미감은 조선 말기를 기점으로 더 다듬어지거나 시대에 맞게 변형되지 못하고 맥이 끊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문화를 탄생시킨 제도와 자본은 지배국으로 이전되었고, 게다가 나라를 망친 그들의 문화를 누가 달갑게 전수받겠는가. 그렇기에 서구에서 들어 온 신기술과 미적 감각, 취향은 조선의 대중문화와 더 빨리 결합하여 전개되었고, 상업성과 얽히면서 독특한 변화상을 보여 왔다. 그렇게 개항 이후 150년이 흐르는 동안 삼성과 엘지의 휴대폰, 가전제품이 세계를 휩쓸 때까지 한국의 디자인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대 지금은 좀 다르다.

 

브랜드 ‘민주킴’의 바리 시리즈. 사진=민주킴.
브랜드 ‘민주킴’의 바리 시리즈. 사진=민주킴.

세계 경합에서 우승하는 젊은 디자인

세계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연속으로 수상하고,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음원이 세계 차트에서 정상을 달리던 2020년도에 넷플릭스가 주최하는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Next In Fashion」에 한국인 민주킴(MINJUKIM, 본명 김민주)이 첫 시즌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3억 원의 상금이 걸린 전 세계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초절정 패션 경합에서 우승한 것이다. 브랜드 ‘민주킴’은 다양한 색깔과 대담하고 독특한 커팅과 실루엣, 자신감 있는 여성 이야기의 있는 옷을 만들어 서구와 한국 셀럽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까지 13개의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프리다 칼로, 샤를 보들레르의 시, 은하철도 999 등 스토리텔링에 패션을 결합해 매번 궁금증을 유발한다. 2022년 콘셉트는 바리데기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바리공주인데 화사하면서도 버블리한 공주풍 옷을 입은 모델은 당혜에 버선을 신고 있다. 이 브랜드는 소녀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의상과 BTS 월드 투어복을 디자인하면서, 자연스럽게 한류 문화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브랜드 ‘하플리’의 ‘조선 타이거’ 시리즈. 사진=하플리.
브랜드 ‘하플리’의 ‘조선 타이거’ 시리즈. 사진=하플리.

또 하나의 힙한 브랜드로 한복 디자인 회사 ‘하플리’를 들 수 있다. 펀딩 전문회사 와디즈가 ‘K-메이커’ 프로젝트로 실시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초반에 공모액을 훌쩍 넘어선 브랜드로 출발했다. ‘조선 타이거’라는 라인업을 통해 한국 호랑이를 재미있고 당당하게 사용해 명품 구찌의 호랑이 패턴 라인업 못지않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한복의 볼륨감을 살린 일상복을 기반으로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까지 제시하고 있어 젊은이들에게 팬심까지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 국제 제품 디자인 공모전에서 최고의 어워드는 매번 쏟아지고 있다.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 사진=디자인실버피쉬.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 사진=디자인실버피쉬.

한국의 신비로운 디자인 이야기

디지털미디어 디자인그룹 ‘디자인실버피쉬’는 삼성과 엘지 등 대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미디어로 전시 작업을 주로 하는 회사다. 이 회사가 현재 한국을 테마로 인사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에서는 전통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천상열차분야지도, 쌍영총의 사신도, 단청 패턴 등이 현란한 미디어 기술을 통해 보인다.

이 중 간판으로 뒤덮인 서울 거리는 ‘서울의 낮과 밤’이라는 테마로 전시된다. 외국회사의 젊은 주재원들이 그토록 사랑하여 장기 출장을 번번이 신청한다는 서울의 밤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유혹하는 모습이다. 필자가 20년 전 런던 유학을 마치고 들어왔을 때, IMF 여파 속 도심 간판은 그야말로 갈 바를 잃게 하는 밀림 같았다. 이익단체인 간판업주들의 협회에서 직접 만든 시행령에 의해 간판들이 무더기로, 맥시멈으로 설치되는 간판 문화에 대해 “더 크게, 더 많게, 더 튀게”라는 비평의 슬로건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많은 전시와 행정적 계도 등이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네온과 파나 플렉스 등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고, 한글 타이포그래피들이 본격적으로 쓰이면서, 간판은 세련된 모습으로 오히려 더 많이 설치되었고, 결국 한국의 신비로운 이야기 속으로 편입되어 일상에 완전히 자리 잡은 듯하다.

이렇게 많고, 다양하며, 반짝이며, 소란스럽고 재미있는 지옥, 그 ‘한국적 삶의 패턴’ 속에서 한국적 감각을 품은 디자인들이 그래픽 디자인,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 각 분야에서 부상하고 있다. 개항 이후 한국적이라는 명칭으로 줄기차게 시도된 전통 패턴과 색채, 상징의 차용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이들은 한류와 더불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이들이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특성인 살벌한 각자도생 속에서 외롭게 비상하는 것이 아닌, 아직도 문화사대주의와 감식안 없이 고가 브랜드 쏠림에 길들어 있는 기성세대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며 성년의 디자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연재 끝>

 

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디자인물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근대기 시각디자인문화사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문화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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