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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세종연구소·美 민주주의재단 공동주최 ‘정치자금과 동아시아 민주주의’
[학술대회] 세종연구소·美 민주주의재단 공동주최 ‘정치자금과 동아시아 민주주의’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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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0:06:59
이제 이념적 갈등의 중심축은 ‘평등과 효율성’이라는 고전적인 가치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좌파와 우파, 정부와 시장부문을 막론하고 투명성 확보는 가장 우선 성취되어야 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자유무역으로 하나가 된 세계를 꿈꾸는 WTO는 그린라운드, 블루라운드와 함께 부패라운드라는 새로운 다자간 협상을 추진 중이다. 부패를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치명적 무역장벽으로 간주하는 까닭이다.

투명성 제고는 4대개혁의 핵심

분위기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투명성의 강화는 모든 개혁의 핵심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외자유치를 촉진한다는 명분아래 기업과 금융기관에는 강도 높은 투명성 지표들이 부과됐다. 최근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비영리기관인 언론 역시 투명경영의 사각지대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 셈이다.

정부가 내세운 4대 부문 개혁 역시 핵심은 전 분야에 걸친 투명성의 확보였다.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만연한 부패와 정실자본주의가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것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문제는 모든 사회적 부문에 걸쳐 투명성의 확대를 요구하는 정치권이 정작 자신은 완강한 관료제와 관치의 장막아래 머물러 있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돈세탁방지법 제정을 전후해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는 밖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내심 자신들의 밥그릇만은 안전하게 보장받으려는 이율배반의 극치를 드러낸 셈이었다.
지난달 27일 국제투명성 기구(TI)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부패지수는 조사대상국 91국 가운데 42위. 지난해의 48위에 비해 6계단이나 상승한 순위지만 여전히 중위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투명성의 강화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자금과 동아시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열린 ‘민주주의 포럼’이 그것. 세종연구소(소장 백종천)와 미국 민주주의 재단이 공동주최한 이번 행사에서는 발표된 논문들 대부분이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정당 그리고 정치자금’을 발표한 콜럼비아의 정치자금 연구가 뽀사다 까르보씨는 “라틴아메리카 제국들처럼 실체적이고 급진적 개념의 민주주의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절차적 문제가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행위를 규제하는 규범들이 정치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되는 것을 견제·감시하는 것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클라이드 윌콕스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주로 미국의 사례를 인용, 정치자금 공개문제를 둘러싼 시민사회의 딜레마를 소개했다. 윌콕스 교수가 보기에 공개에는 항상 반대급부가 뒤따른다. 기부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그들이 지배계층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그들을 노출시키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나 반정부인사들의 정치기금 모금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결국 그는 “모든 국가는 공개가 가져올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가늠해 봐야한다”며 “정치경제적 지배층이 반대세력에 자금을 지원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가할 수 있고, 사회적 분열이 크며, 법치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이익보다 불이익이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정은 일본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정치자금’이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고노 마사루 일본 청산학원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정치자금규제법, 정당보조법, 공직자선거법 등에 의해 정치과정 내에서의 자금흐름을 규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당의 내부와 외부의 자금흐름이 규제되지 않고 있”다. 규제의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견해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그 차이가 워낙 현격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법적용을 둘러싼 이견들

한국 측 사례발표자로 나선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와 모종린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보다 많은 자유화를 위한 더 많은 투명성’이란 발제문을 통해 과거에 추진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의 장벽들이 만만찮게 남아있는 이유를 진단했다. 그는 이것이 개혁의 방법론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 정치적 의지의 결여, 법치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사회현실 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특히 세 번째 항목과 관련하여 느슨하고 차별적인 법집행, 대통령 사면권의 남용, 선물 증여(giving-gift)와 법적 제재(legal sanctions)에 대한 문화적 태도 등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편, 2부로 마련된 워크숍에서는 정치자금 규제방안을 놓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단체 대표가 상반된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기조발제자로 나선 홍순두 선관위 정당국장이 “정치자금을 법률에 따라 엄격히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최선책을 될 수 없다”며 보다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규제책을 제안한 반면, 시민단체 대표로 참석한 김두수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여야의 공평한 분배가 초점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전체의 투명화 추세에 맞추어 정치영역 또한 투명도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맞섰다. 김용한 경실련 정책실장은 “법정 선거비용 항목의 명확화와 선거공영제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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