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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할 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할 때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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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과기총 연구윤리 규범에 대한 토론회 개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 여파가 새로운 제도생산을 위한 광범위한 의견수렴에 이르고 있다. 지난 19일 과학기술부(부총리 오명)가 개최한 ‘연구윤리·진실성 검증시스템 추진방안 회의’가 연구결과물인 논문을 대상으로 한다면, 25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채영복)가 주관한 ‘연구윤리 규범에 대한 토론회’는 연구윤리에 대한 교육부터 연구자의 정신적인 면, 연구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포괄한 논의의 자리였다.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연구윤리 규범에 대한 토론회’는 대학, 산업, 기관 등 7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연구도덕성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민철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연구윤리의 쟁점과 과제’를 통해, 최근의 황 교수 사건은 연구과정, 연구결과, 실험실 운영, 특정분야의 윤리,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 등 연구윤리의 모든 범주와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국내의 연구윤리문제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민 부위원장은 “연구윤리위원회를 국가차원에서 설치해 연구행위에 대한 지침마련 및 관리·감독을 강화해서 후속조치를 엄정하게 집행하고, 분야별 연구윤리교육 강좌를 신설·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방재욱 충남대 산학협력단장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논의만 할 것이 아니라 달아야할 시기까지 왔다”며 “중앙관리의 노력보다는 연구실 내부의 경직된 문화가 원인으로, 연구자 마인드의 성숙이 우선이며, 무엇보다 연구자를 보호·배려할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형성돼야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로 서상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장은 ‘연구책임자의 역할과 연구수행관리상의 도덕성’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연구자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했다. 서 단장은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사례로 ▲이미 수행한 (미발표)연구를 연구과제로 제출한 경우 ▲성공한 예비실험 결과를 제시해 연구과제에 공모하는 경우 ▲적절치 못한 연구비 설정한 경우 ▲연구목적 외 연구비 집행 경우 ▲논문작성시 결과를 예상해서 작성하거나 날조, 변조, 표절하는 경우 ▲ 논문수 부풀리기의 경우 ▲연구 비참여자에게 공저자로 올리는 경우 ▲연구결과에 대한 효과를 과장하는 경우 등을 지적했다. 서 단장은 “우리나라는 과학문화가 익숙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특히 실험노트는 해외 특허분쟁에 있어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는데, 데이트 기록과 보존에 철저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윤리위원장을 맡으면서 생명과학연구자 윤리헌장을 제정했던 임인경 아주대 교수는 “윤리에 대한 기존 인식이 연구자와 무관하고 종교·철학·법학 등 인문사회학 분야에 국한돼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연구자의 내면문제, 연구자와 연구대상간의 관계, 연구자와 연구자간의 관계 등 대원칙을 설정한 후 세부 지침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시작된 토론에서는 주로 과학윤리 교육문제, 민주절차 문제, 연구실 내부문제 등이 논의됐다.

과학윤리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참석자 모두가 연구자의 ‘무지’를 인식하면서도 그 원인과 해법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고인석 이화여대 교수는 “과학과 윤리를 괴리시켜 보는 인식이 문제며, 용어에 있어 진실성과 충실성은 출발을 포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건실성이 옳은 것 같다”고 말하고, “현재 대학생이 알고 있는 과학윤리 개념이 너무 피상적이라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정신차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 정민걸 공주대 교수는 “과학윤리는 과학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교육부가 ‘탐구’능력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수행평가가 모양만 예쁘게 하고, 남의 자료를 재가공하는 것만 익숙하게 학습하도록 만든다”며 교육부의 초등교육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반면 구인회 가톨릭대 교수는 “학생교육보다 중견연구자들에 대한 교육이 시급한 문제다”라며 선도연구자의 윤리의식이 문제임을 지적했다. 최용경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정책부장 역시 연구자의 교육지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 부장은 “연구윤리에 대한 국제규범을 모르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임인경 교수의 “실험단위부터 정책 방향의 결정까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의사가 결정돼야한다”는 발제내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민걸 교수(생태유전)는 “민주적 절차는 여론의 선동과 국가정책 방향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과 증거를 다루는 과학은 각자 분야에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구인회 교수는 “전문가들이 특정분야 연구의 문제와 실상, 위험성 등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윤리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방식과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과기부나 교육부 등 최근 정부의 과학윤리문제 접근방식이 너무 산발적이라고 비판한 김현구 성균관대 교수는 “범국가적 윤리헌장을 채택한 후 분야별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하며, 학회 스스로 윤리규정을 만들어 자정할 수 있도록 학술지 평가 등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국가 프로젝트에서 기술개발분야는 이미 시장에서 정화기능이 형성됐기 때문에, 기초학문 쪽에 중심을 맞춰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은동 한국전기연구원은 “선택과 집중의 정책에 있어서도 분야별 균형을 견지할 수 있어야한다”라고 주장하며, “현 시점에서 대두된 과학윤리 문제에 대해 과학자의 90%이상이 남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무엇보다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소 신형원자로개발단장은 “결국 사람문제지만 권한과 책임을 질 수 있는 형식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단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학제를 넘는 과제연구가 많지만 실상은 장벽이 높기 때문에, 이제는 제도적인 벽을 허물고 연구경쟁을 통한 윤리를 제고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황승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산업체가 주관하는 사업은 비공개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도생산에 있어 각 부처별로 통일성과 일관성을 견지해 나갈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황해웅 대전시 과학기술자문관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과제를 제한한 기관이나 사람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만 연구자를 몰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황 자문관은 “실용화할 수 있는 기회나 예산, 시간도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서 성급하게 연구성과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성숙되지 못한 과학문화 정착을 아쉬워했다.

송상용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은 “서양은 나치의 생명실험에 대한 뼈아픈 반성의 결과 윤리규정이 마련됐지만, 일제치하의 같은 역사를 가졌던 동양은 없다”며 반성을 촉구하며, “뒤이어 가는 사람으로써 앞서 나간 자의 실수를 반복지 않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은 “다양한 층위를 지닌 연구윤리 문제를 어떻게 표준화할 수 있느냐에 대해 고민이다”라면서 “이번 만큼은 어물쩡 넘어가기 보다는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고 책임을 확실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포럼은 황우석 사태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연구윤리 문제를 고민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뚜렷한 주제를 설정·집중하기 보다는 각종 윤리문제부터 국가제도의 비일관성, 국가연구비 배분의 공정성 등 중구난방형 토론에 그쳤다. 이번 ‘연구규범토론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견해로, 최병인 삼성서울병원 임상시험센터 책임연구원은 “이번 포럼이 생명윤리, 연구자윤리 등 여러 주제가 혼재된 가운데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라고 지적한 뒤, 최 연구원은 “교육해야한다는 말은 있지만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에 대한 말은 없으며, 국내 과학계의 윤리교육전문가는 5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일침을 가했다.

신정민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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