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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99] 토끼를 닮기도 달팽이를 닮기도, 군소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99] 토끼를 닮기도 달팽이를 닮기도, 군소
  • 권오길
  • 승인 2022.07.0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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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
군소는 '바다 민달팽이' 또는 '바다 산토끼'라고 불린다. 사진=위키미디어

KBS의 <6시 내 고향>에서, 동해안 울진 근방의 한 갯마을 아낙네가 소쿠리에 삶은 군소를 한가득 담아 팔고 있었다. 거기 취재하는 리포터도 군소가 어떤 동물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암튼 바다 채집을 다니면서도 시장에서 요리로 파는 군소를 사서 먹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원통하고 무척 후회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래서 무슨 일이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볼 일이다. 

군소(Aplysia kurodai)는 바다에서 나는, 필자가 전공하는 연체동물의 복족류(腹足類)에 속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얕은 바다에서 사는 동물이다. 군소는 육지에 사는 껍질 없는 민달팽이와 비슷해서 ‘바다 민달팽이(sea slug)’라고도 한다. 또 군소의 머리에는 각각 한 쌍씩의 구강(口腔) 돌기와 큰 촉각(더듬이)이 있는데, 촉각이 산토끼의 귀를 닮아 'sea hare(바다 산토끼)'라 부른다.

군소는 연체동물이지만 몸을 보호하는 단단한 껍데기(shell)가 없다. 몸이 물렁물렁하고, 몸 양쪽에는 넓적한 날개 모양의 근육인 측지(側肢, parapodia)가 있으며, 일부 종은 등에 있는 돌기가 지느러미처럼 크고 넓게 발달하여 그것으로 헤엄친다. 그리고 바위나 암초(暗礁) 지역을 천천히 기어 다니며 주로 해초류를 뜯어먹으면서 산다. 그런데 물속에서 군소를 잡으면 물컹한 느낌에 어지간히 비위가 센 사람도 저절로 손을 놓고 만다. 

지방에 따라 군소를 '군수'라고도 하고, 몸 빛깔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의 군소는 대부분 진한 흑갈색에 흰 점이 다닥다닥(다다귀다다귀) 나 있다. 다 자라면 몸길이는 20~30cm에 이르며, 산란 직전 몸무게는 약 500g 정도이다. 암수한몸인데도 6~7월경에 가장 왕성하게 짝짓기하고, 여러 마리가 함께 교미도 하니 이러한 교미 형태를 "연쇄 교미(連鎖交尾, mating chains)"라고 한다. 해조류가 부착된 바위 아래나 틈에 노란색이나 주황색의 국수 면발같이 생긴 알을 낳는다. 

군소의 산란기는 봄에서 여름에 이르며, 군소 한 마리가 한 달에 낳는 알은 1억 개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이 알들이 모두 성장해서 재생산에 나선다면 단 1년 만에 지구 표면은 2m 두께의 군소로 덮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바다 동물들이 다 그렇듯이, 대부분의 군소알은 바닷물고기나 불가사리, 해삼 등의 먹이로 먹히고 만다. 

군소 먹이는 녹조류, 홍조류, 갈조류 등이며, 특히 녹조류인 파래류를 좋아한다. 알고 보면 군소는 어민들에게 얄미운 존재인데, 군소의 주식이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海藻類)로 군소가 많이 번식하는 해에는 해조류 씨를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남해안 바닷가 사람들이 군소를 즐겨 먹는데, 향이 독특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자극했을 때 분비샘에서 보라색 색소를 내뿜는 군소는 식용하지만, 묽은 흰 색소를 내뿜는 것은 못 먹는다고 하며, 몸의 점 색깔이 황금색에 가까울수록 더욱 맛있다고 한다. 배를 갈라 내장과 색소를 빼내고, 삶아 소금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으며,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린다고 한다. 요리하기 전에 약 20~30cm 길이이던 것이 요리하면 4cm 내외로 쪼그라든다. 맛은 쫄깃쫄깃하나 잘 안 씹히고, 끝맛은 쌉싸름하며, 바다 특유의 비린내가 좀 난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잘못 요리하면 타이어 씹는 맛이 나는 수가 있다 한다. 요리 전에 식초를 뿌려주면 어느 정도 수월하게 맛을 낼 수 있다 한다. 서양에서는 군소 보라색 색소로 옷을 염색하기 위해 염료로 썼다 하고, 중국에서는 상처나 염증 치료제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Eric R. Kendel
컬럼비아대 에릭 캔덜 교수 사진=위키미디

군소의 내장과 알에는 아플리시아닌(aplysianin)이란 독성성분이 들어있어서, 빼버리지 않고 먹으면 구토와 설사를 하는데, 이들 독성분은 가열해도 남으므로 요리하기 전에 반드시 내장과 알은 빼야 한다. 그리고 내장과 알을 제거하더라도 알레르기 체질이면 드물게 급성 알레르기 반응과 혈관성부종(血管性浮腫)이 나타날 수 있다 한다.  신경세포(뉴런, neuron)가 크기로는 역시 연체동물인 두족류를 알아주는데, 군소 또한 신경망이 단순하고, 신경세포가 매우 커서 신경 회로 연구에 많이 쓰인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에릭 캔덜(Eric R. Kendel) 교수는 군소를 이용하여 ‘학습과 기억의 작용원리’를 밝혀서 지난 2000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복잡한 뇌 과학 연구에 돌파구를 마련한 이들의 연구는 뇌 과학의 기초를 닦아, 파킨슨병 등 신경계 질병의 신약 개발로 이어졌다 한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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