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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
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
  • 서영식
  • 승인 2022.07.07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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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⑱_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율리우스 카이사르(왼쪽), 옥타비아누스 훗날 그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사진=위키피디아
율리우스 카이사르(왼쪽), 옥타비아누스 훗날 그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사진=위키피디아

흔한 오해와 달리 카이사르(Caesar, BC100-44)는 단순히 군대와 민중을 앞세워 오백년 공화정을 전복하려 했던 실패한 독재자가 아니다. 그는 원로원에 기반한 귀족세력의 과두체제에 다름 아닌 공화정으로는 이미 제국의 길로 접어든 로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갈리아에서 귀환한 직후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낙후된 조국의 정체(政體)와 사회제도를 변혁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혁명가였다.

내란 종식 후 40여 년간 이어진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BC63-AD14)의 집권기 행적은 그가 로마의 미래에 관한 양부 카이사르의 국정 청사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나아가 현실에서도 이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는 카이사르 사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권력투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종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국이 안정되자 로마가 지중해 최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개혁조치를 위해 자신의 좌우명처럼 “천천히 서둘렀기”(festina lente) 때문이다.

강력하고 찬란한 마음을 지녔던 카이사르가 로마의 변혁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질주했고 그 과정에서 보수적인 귀족세력(optimates)과의 대결도 불사했다면, 옥타비아누스는 점진적인 개혁의 발판 마련을 위해 우선 기득권층을 진심으로 포용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 후에도 공화정 폐지와 왕정복고를 노린다는 의심 속에서 죽임을 당한 기피 인물의 양자라는 꼬리표를 쉽게 떼어낼 수 없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애매한 상황을 극복하고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 정공법을 택한다. 즉 그는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기원전 27년 초 원로원에 출석하여 공직 사퇴와 함께 국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원로원에 이양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정가의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킨 것이다. 역사는 이날의 사건을 이른바 ‘공화정 회복’(res publica restituta) 선언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른 한편 옥타비아누스는 과거 카이사르와 대립했던 공화파 인물들의 후손도 실력이 어느 정도 입증되면 주저 없이 고위직에 등용하는 등 인사에서 기대 이상의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예컨대 옥타비아누스는 키케로의 큰아들이 집정관(BC 30) 자리에 오르고 또한 시리아 총독(BC 28)으로 지명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키케로는 살아서는 공화정의 원로이자 실세로서 국정운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2차 삼두정치 초반 옥타비아누스의 묵인 하에 안토니우스에 의해 살해당한 후에는 공화정 수호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영웅으로 은밀하게 숭배되는 인물이었다.

나아가 옥타비아누스는 점진적인 개혁과정에서 원로원 귀족들의 폭넓은 동의와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대사회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예컨대 로마판 용비어천가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는 심지어 ‘신격화된 카이사르’(Divus Julius)의 지나친 권력욕을 책망하는 장면이 수차례 등장하기도 한다.

옥타비아누스는 구성원들에게 그들이 열망하는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변혁적 리더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냉철한 판단력과 불굴의 용기 그리고 현대 경영학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당시로서는 새로운 차원의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시스템 도입을 통해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카이사르의 교훈을 되새기며 매번 자신의 정책을 신중하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소통과 타협을 시도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이 제시하는 비전을 확실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옥타비아누스는 “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앤서니 에버랫)였던 것이다.

 

서영식 충남대 교수·리더십철학
스위스 루체른대에서 서양고전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과 출판문화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동서철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저서로 『공공성과 리더스피릿』(공저, 2022), 『고전의 창으로 본 리더스피릿』(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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