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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정복 대상이 아니라 소통·경험의 ‘매개체’”
“언어는 정복 대상이 아니라 소통·경험의 ‘매개체’”
  • 김재호
  • 승인 2022.07.03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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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76쪽

말랑말랑한 자아로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보기
세계가 불편하다면 성장점으로 간주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해보기

“언어에 ‘대해’ 배우기, 언어‘로’ 무언가를 해보기, 언어‘와’ 함께 만들어가기.” 응용언어학 박사인 김미소 일본 다마가와대학 교수는 언어의 차원을 이같이 나눠봤다. 각 단계는 언어를 학습하는 목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말을, 언어를 왜 공부하는 것일까?

대안학교를 나와 이른 나이에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교수. 그녀는 재혼한 베트남 새어머니와 함께 한국말과 베트남어에 대한 경계를 느끼기도 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일본이라는 이국적인 언어가 있는 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언어에 대한 여러 경험과 고민을 했다. 그 속에서 나온 작은 깨달음들이 『언어가 삶이 될 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언어는 본디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정복하거나 완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라는 제언은 언어 학습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하도록 해준다. 

 

언어로 다양한 세계관을 포용하기

『언어가 삶이 될 때』이 더욱 귀한 이유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유학생으로서 전 세계에서 모인 외국인 학생들을 영어로 가르치면서 부딪혔던 문화적 차이, 일본에서 일본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느낀 경계와 벽 그리고 온정, 스스로 다시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이 되어서 시각을 달리해본 경험 등. 현재 김미소 교수는 광둥어를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베트남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이 한국사회에서 느낄 문화적 소외감을 느낄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동생은 베트남 국제학교를 다니며, 한-베트남 통역인으로서 더욱 주목받을 가능성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신의 편견이 무너지던 순간이다. 

학습 교재에서도 편견은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한국문화를 교육할 때, 한국의 풍경은 좋은 모습만 많이 담겨 있는 듯했다. 특히 중산층 이상의 수준 높은 문화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초급 한국말을 가르치려고 할 때, ‘시아주버니’ 같은 단어를 익혀야 한다고 한다. 언어의 차별이다. 한국어교재에는 결혼이주여성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으로 가정한 언어교육 내용이 가득하다. 여성가족부 역시 이를 알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가장 필요한 언어가 가정 안에서 이뤄지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는 건 더욱 중요하다. 문화간 벽을 넘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언어에 있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좁게 그어진 ‘우리’의 선 안에서만 살면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다른 이들을 ‘그들’이라는 딱지를 붙여 구분해 놓고 다른 위치에 몰아넣으면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아니, 보인다 해도 불쌍한 사람, 동정을 베풀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동정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생각이 좁아지는 건 나였지 상대가 아니었다. 선을 긋다 보면 좁아지는 건 나의 세계일 뿐이었다.” 

『언어가 삶이 될 때』는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해오고, 지금도 ‘영어 완전정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방법과 가치관을 분명히 제시한다. 그건 앞서도 강조했듯이 언어를 매개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언어는 스파르타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라면서 “내 말랑말랑한 영어 자아는 채찍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스한 양육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영어에 ‘대해’ 공부해왔다면, 이제는 영어‘로’ 경험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영어를 경험하기 위한 여러 좋은 사이트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Meetup (온라인 행사 사이트) △영어 문장이나 단어를 유튜브 동영상에서 찾아주는 youglish.com △유의어 사전 https://www.thesaurus.com △연어(collocation)를  보여주는 https://skell.sketchengine.eu △문법체크 도구 https://quillbot.com/grammar-check 등. 이 사이트들만 제대로 이용해도 영어학습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영어를 왜 배우는 것일까? 김미소 교수의 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경계에 선 자유로 초언어하기

“언어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김 교수는 ‘초언어하기’를 강조한다. 한 언어를 배운다고 그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확장성을 갖고 다른 언어와 의사소통, 문화적 경험 등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한 언어를 완벽히 구사한다거나 한 문화에 완벽히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경계에 선 자유를 누렸으면”이라고 적었다. 

한편, 언어학습에서 의사소통 차원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울증과 불안감이 생긴다. 이 과정을 김 교수는 몸소 체험했다. 미국에서 늦은 밤 버스정류장을 잘 몰라 강도를 당하고 큰 일 날뻔 했던 일, 일본에 교수로 임용돼 설레는 마음을 가득 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6개월 동안 7평짜리 방 안에서 지내야 했던 불안 등. 이런 과정을 통해 김 교수는 “자아가 말랑말랑해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이 고립될 뿐이다”라고 조언한다. 

언어가 잘 안 되면, 울렁증이 생긴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안 나오면 자괴감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성장통은 이미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김 교수는 언어가 삶이 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따스한 말을 적었다.  

“지금 세계가 불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면 성장점이 깨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불편함을 끌어안고 혼자 끙끙대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돌아봤을 때 자신의 세계가 더 탄탄해지고 넓어져 있는 걸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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