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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 최승우
  • 승인 2022.07.01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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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지음 |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456쪽

우리는 피렌체를 흔히 예술의 도시, 천재의 도시로 알고 있다. 피렌체는 중세의 암흑을 걷어낸 르네상스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한 우피치 미술관이 있는 도시이며,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의 작품으로 장식된 도시다. 《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와 《군주론》을 쓴 정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예술 작품으로 가득하고, 거대한 브루넬레스키의 돔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도시, 피렌체!
그러나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는 우리에게 “피렌체는 결코 아름답기만 한 도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피렌체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고색창연한 건물들 사이 허름한 뒷골목에 걸어 들어가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피렌체 여행을 안내해줄 가이드를 고용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에서 전성기를 맞았고 피렌체에서 죽은, 심지어 《피렌체사》를 집필하기도 한 마키아벨리다. 500년도 더 전의 인물이지만, 마키아벨리보다 피렌체의 진면목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를 들고 독자와 함께 걸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피렌체 사람들의 일상이다. 한 조각 빵을 얻기 위해 부자들의 밥상 밑에 앉아 있었던 가난한 사람들,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고 온갖 꼼수를 부렸던 귀족들, 죽어도 귀족들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고 절규했던 평민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서서 피렌체를 좌지우지했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중세 도시들과 비교할 때, 피렌체의 역사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귀족들보다 평민들이 더 큰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에서 귀족들이 공고한 세습적 권력을 유지하던 13세기, 피렌체의 전통 귀족들은 서로 피를 부르는 복수극을 펼치다가 함께 괴멸했다. 그렇게 귀족들이 힘을 잃은 이후 ‘유력한 평민들’로 불린 직능 조합 출신 평민들이 등장했고, 이들로 구성된 행정기관이 피렌체를 통치했다. 메디치 가문이 15세기 중엽부터 권력을 독점하긴 했지만, 메디치 역시 평민 출신이다. 그래서 피렌체는 ‘자유’, 특히 평민들이 귀족이나 권력자의 지배를 받지 않을 자유를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귀족과 평민 사이뿐만 아니라 평민들 사이에도, 평민과 하층민 사이에도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향한 권력 투쟁이 이어졌고 마키아벨리는 이 이야기를 《피렌체사》에 상세히 기록했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사》를 통해 보여주는 피렌체 격동의 역사를 함께 걸으며, 우리는 거울을 보듯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가 들려주는 권력, 분노, 배신, 아첨, 보복의 역사는 결국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 권력을 둘러싼 무자비한 경쟁은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덮고 피렌체를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는 먹고 마시는 여행이 아니라 생각하고 성찰하는 여행을 목적으로 한다. 마키아벨리 그리고 저자 김상근 교수는 책의 마지막에 피렌체를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줄 무언가, 피렌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자유롭고 위대하게 만들어줄 것인지, 함께 성찰해보자.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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