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7:45 (금)
경계에서의 글쓰기
경계에서의 글쓰기
  • 최혜영
  • 승인 2022.07.05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최혜영 제주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최근에 나는 활동가면서 예술가, 사회학과에 다니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한다. 연구와 활동, 전시 기획과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공부 하고 있는 것이 경계에서 목소리를 내는데 있어 재미가 있다. 스스로 정의하는 경계에서의 글쓰기란, 필자가 강정에서 활동가로 있지만 강정마을의 외부 혹은 그 경계에서 바라봄을 뜻하기도 하다. 강정마을과 학교로 오가는 시간은 나의 현장을 거리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시간과 장소가 되었다.

필자는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에 2012년부터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시작하며 강정마을로 주소를 옮겼다. 2018년에 제주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들어왔는데 입학 동기는 분명했다. 강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었다. 2016년에 준공된 해군기지 옆에서 계속 살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아직까지 남아있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에세이, 기고 등이 아닌 왜 학술적 글쓰기로써 강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나의 위치 때문일 것이다.

‘강정지킴이’라고도 불리고 ‘외부세력’이라고도 표현되고 ‘이주민’, ‘평화활동가’ 등으로 불리는 단일하지 않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선행연구를 정리하기 위해 검색해본 강정마을과 해군기지 관련 논문들은 준공 이후의 시점은 다루지 않고 있었고 강정 주민들로 대표되는 몇 사람들만 주로 이야기되었기 때문에 직접 그 활동을 함께 했던 당사자로서 준공 이후의 시간까지 포함하여 연대를 통해 강정에 왔다가 끝내 이주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쓰고자 했다. 

기존에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공식적 기록이 가진 시간 속에서 드러난 폭력성과 삭제되거나 비어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과 또 평화운동 과정에서도 가부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모습에 맞서며 어떻게 활동했는지 정리하고 이론적으로 묶어내는 것이 필요했다. 여러 논문을 읽으며 현장 혹은 질적 연구자의 태도와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이자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며 당사자로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가 아직도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있다.

연구 대상들을 대상화하거나 도구 삼지 않고 당연하고 일반적이라 말해지는 상황을 달리 보고 문제를 제기하며 끊임없이 발화되지 못하거나 못하게 한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대학원 입학 초기엔 현장에서의 언어와 학술적 글쓰기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다급한 현장에서 썼던 말과 구호들이 학교에서는 정리되고 때로는 탈락되며 정제되었다. 하지만 또 현장에서는 그만큼 대중을 설득하고 사람들을 모을 말들이 필요했다. 모순적인 상황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교수님이 자주 이야기하는 “현장에서 연구자처럼 굴지 말고, 학교에서 활동가처럼 굴지 말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종종 제주에 필드워크를 하러 오시는 분들도 자주 뵙게 되는데 그들이 제주에 살지 않아서 또 연구 대상들과 관계가 깊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제주는 특히 제주 출신인지 아닌지 제주에 살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 외국에서 4·3사건을 연구하러 오신 분들의 필드워크 중간보고를 본 뒤에는, 나라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많다. 주민센터에 온종일 앉아 4·3신고를 하러 온 분들을 관찰한다거나 제주4·3 관련 연구센터에 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고 담당자를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나도 낯선 곳에서 만남부터 라포 형성,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까지 그 과정들이 괴롭겠지만 호기심으로 인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에게 오래된 현장이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 쌓은 관계만큼 그만큼 쉬이 거리두기를 하기도 정작 솔직한 이야기를 묻기도 꺼려질 때가 있다.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강정마을을 베이스로 하되 무엇을 더 연구하고 글을 쓸까, 여전히 고민이다.

최혜영 제주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제주대 사회학과에서 「사회운동 참여와 정치의식의 성장: 강정지킴이 체험과 생태, 평화, 여성의 가치」(2021)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석사 학위 동기들을 따라 박사과정에 왔다. 강정을 벗어나고 싶지만 여전히 강정에 대한 글을 쓴다. 제주 바다의 연산호와 춤에 관심이 많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