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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니그로의 땀이 아니라 ‘눈물’
커피, 니그로의 땀이 아니라 ‘눈물’
  • 유무수
  • 승인 2022.07.0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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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329쪽

이슬람 수피교도와 수도사들, 커피로 잠깨며 기도
식민지 국가는 커피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종속

커피는 누가 언제부터 마셨을까? 가장 대표적인 커피의 기원설은 9세기 무렵 에티오피아의 산양치기 칼디(Kaldi)로부터 비롯된다. 새 목초지에서 풀을 뜯어먹은 양들이 밤늦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칼디는 가까운 수도원의 스키아들리 수도원장을 찾아가 문의했다. 관찰력이 뛰어났던 스키아들리는 산양들이 먹은 작은 나무의 열매에 주목했고 물에 넣고 끓여서 직접 마셔보았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에 정기적으로 드리는 수도원 예배에서 병든 닭처럼 졸던 수도사들이 그 음료를 마신 후에는 예배시간 내내 또렷한 정신으로 깨어 있었고 수도원장은 크게 기뻐했다. 그 이후 저녁예배 때마다 수도사들은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커피가 맨 처음 퍼져나간 집단은 이슬람의 수피교도와 수도사들이었다. 커피를 마시면 밤을 지새우며 기도할 수 있었고 식욕이 줄었기에 허례허식을 절제하는 수피즘의 정신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맨의 수피교도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한 때는 16세기 초 무렵이었다. 커피하우스가 성지나 모스크로 가는 길에 담소의 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554년 오스만 제국 수도 이스탄불에 처음 등장한 ‘커피하우스’는 셀림 2세(1566∼1574 재위) 시대에 600여 곳으로 늘어났다.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는 ‘카흐베하네’로 불렸으며 이는 카라반을 위한 여관이나 선술집이라는 의미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아라비아, 페르시아, 터키 등 이슬람 세계를 뛰어넘어 남아시아 지역으로도 퍼져나갔고, 1652년에 런던, 1666년에 암스테르담, 1671년에 파리, 1683년에 빈, 1687년에 함부르크, 1694년에 라이프치히 등 유럽 각 도시에 최초의 카페가 생겨났다. 당시 커피 원료의 유일한 공급국가였던 예맨은 커피 시장을 독점하면서 풍요를 구가했다. 아라비아에서 커피가 출하되는 항구는 ‘모카’였고 이 항구에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선박이 커피를 매입했다. 상업자본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커피 욕구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상당한 재력을 가진 상인은 호화로운 커피하우스를 만들어 커피 욕구를 북돋았다. 커피는 사람을 깨어 있게 했고, 커피하우스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정세, 정치동향, 거래성사, 문예활동 등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장소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갔다. 프랑스에서는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는 속설로 인해 커피와 우유를 섞어 마시는 ‘카페오레’ 문화가 발달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인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역사상 최초로 커피 플랜테이션을 구축했고 ‘자바 커피’가 탄생했다. 네덜란드는 아라비아 상인에게 커피를 구매하지 않고 커피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자바 커피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프랑스가 서인도 제도에 구축한 커피 플랜테이션은 프랑스 경제적 기반을 튼튼하게 해주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백인 정복자의 학대로 원주민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아프리카 흑인은 커피생산을 위한 노예로 일하며 비참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끌고 올 때 배에 탄 흑인의 3분의 1은 열악한 조건의 배 안에서 사망했다. 유럽의 강대국은 자국의 식민지이자 커피 생산지인 나라에 극단적 모노컬쳐(mono culture, 몇 개의 1차 상품 특화)를 강요했고, 이들 식민지 나라는 커피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1979년 우간다의 수출에서 커피의 비중은 98%였다. 부자연스러운 생산시스템은 해당국가의 생태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흑인노예의 고된 노동으로 만든 커피는 ‘니그로의 땀’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니그로의 눈물’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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