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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핑크칼라’에서 ‘퍼플칼라’로
[디자인 파노라마] ‘핑크칼라’에서 ‘퍼플칼라’로
  • 조혜영
  • 승인 2022.07.01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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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㉓ 조혜영 건국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초빙교수·홍익대 대학원 외래교수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에는 여성들이 공공사업진흥국(WPA)의 자금 지원으로 가사(家事) 훈련을 받았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 지역에서 여성들이 가사 훈련을 받는 모습이다. 사진=Clio Visualizing History.

여성의 돌봄노동과 서비스산업

‘핑크칼라’는 저임금 단순기능직의 여성 근로자를 단순노동직의 ‘블루칼라’와 사무직의 ‘화이트칼라’와 구분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등장한 용어다. 20세기 중반까지 여성의 직업 교육에서 가장 일반적인 분야는 가정 내 돌봄 영역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민자 여성들이 주로 담당했지만, 여성들이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종으로 젠더화되었다. 산업사회가 확산되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직업은 ‘조력자’ 역할인 경우가 많았다. 여성 사무직은 타이피스트, 전화 교환수, 비서 등이 핑크칼라를 대표하는 직업군이었다.

한국의 핑크칼라는 1930년대부터 등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근대 여성들이라 볼 수 있는 전문직, 직업부인(기혼 여성 직장인), 연예인, 간호사, 상인 등으로 등장했다. 1930년 [여성지우] 2권 1호에 실린 「직업 전선에서 일진일퇴하는 낭자(娘子)군의 함성」은 도시 직업 여성들을 인터뷰한 기사다. 교환수, 운전수, 간호부, 여배우, 여차장, 은행원, 떡장수, 상인, 가정부, 보모, 행랑어멈, 식모의 직업적 특성과 경험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중 가정 내 ‘돌봄’을 수행하던 보모, 식모(행랑어멈) 등은 전통사회에서부터 존재했지만 여기에서 여성의 직업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직업군은 1930년 조선총독부가 쓴 『조선국세조사보고』의 직업 대분류에서 ‘가사고용인’으로 등장했다. 1940년이 되면 가사고용인의 숫자는 약 170만 명이 된다. 이들은 실제로는 행랑살이, 드난살이, 곁방살이, 안잠자기, 침모, 유모, 식모, 어멈, 계집애, 종, 계집하인, 고용살이, 그리고 ‘오모니’로 불리는 전근대적 종속관계의 노동자들이었다. ‘오모니’는 일본인 가정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성으로 입주형 계약제 직종이었다. 오늘날 ‘도우미’ 혹은 ‘이모님’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가정 내 돌봄 노동자들이 핑크칼라로 등장했던 것이다.

 

왼쪽은 동아일보 창간 50주년에 실린 부라더(현 브라더) 재봉틀 광고, 오른쪽은 1955년 싱어사 재봉틀의 지면 광고. 재봉틀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직접 아이 옷과 자신들의 의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여 경제력과 패션에 대한 니즈를 제공하는 제품으로 홍보했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재봉틀은 혼수의 상징이었다. 주부들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보살피며 기업에는 충실한 소비자였으며 재단과 봉재까지 해내는 산업의 역군이자 아내, 어머니, 며느리였다. 사진=브라더(왼쪽), 싱어(오른쪽).
왼쪽은 동아일보 창간 50주년에 실린 부라더(현 브라더) 재봉틀 광고, 오른쪽은 1955년 싱어사 재봉틀의 지면 광고. 재봉틀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가정에서 직접 아이 옷과 자신들의 의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여 경제력과 패션에 대한 니즈를 제공하는 제품으로 홍보했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재봉틀은 혼수의 상징이었다. 주부들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보살피며 기업에는 충실한 소비자였으며 재단과 봉재까지 해내는 산업의 역군이자 아내, 어머니, 며느리였다. 사진=브라더(왼쪽), 싱어(오른쪽).

가전제품의 소비자와 가정 내 부업 노동자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했던 여성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주부’가 되었고, 무보수로 가족을 돌보면서 성실한 소비자의 역할까지 하게 된다. 여성이 전업 가정주부로서 사회적 역할이 커진 시기는 전쟁 후였다. 전쟁 후 파괴된 산업을 복구하기 위해 여성들은 가정에서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었다. 의류 제작과 수선을 위해 발명된 가정용 재봉틀은 19세기 중반부터 상품화되었고, 전 세계 시장에서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TV, 냉장고와 함께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 여성들의 필수적인 가전이 되었다. 일본과 한국 여성들은 재봉과 바느질로 가정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재봉틀을 구입했다. 사회 진출이 어려웠던 여성들은 재봉틀의 소비자이면서 가정에서 옷 수선과 이불, 커튼 등을 만들어서 아는 사람들에게 판매하여 자녀 양육과 가정 살림을 꾸려 나갔다. 1970년대 한국에서 재봉틀은 혼수의 상징이었던 점을 돌아보면 여성들의 능력은 여전히 가정의 영역에서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의 한 양복점에서 여성이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다. 핑크칼라에게 가정과 일은 선택이 아니라 융합으로 새롭게 창조했던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이었을지 모른다. 사진=한영수문화재단.
1950년대 서울의 한 양복점에서 여성이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다. 핑크칼라에게 가정과 일은 선택이 아니라 융합으로 새롭게 창조했던 그들만의 고유한 영역이었을지 모른다. 사진=한영수문화재단.

핑크칼라의 진화

현재 핑크칼라는 저임금 단순노동의 젠더화를 넘어서 미용과 쇼핑의 영역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핑크칼라는 전문성보다는 섬세함, 유연함, 상상력과 순발력을 갖추며 고정된 상황에서 새로움을 창조해 낼 수 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감성과 감각은 섬세하고 꼼꼼한 면에서 인정받으면서 핑크칼라는 콘텐츠 산업에서도 특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세기에 등장한 핑크칼라는 가정의 돌봄 노동자와 사회에서 조력자로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직업군과 계층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진화하였다.

정보화사회에서 노동의 특성과 구조가 변화하면서 ‘골드칼라’가 등장했다. 컴퓨터 세대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은 디지털 환경과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노동을 생산하는 계층이다. 골드칼라는 화이트칼라와 차별을 두면서 두뇌를 활용해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높은 시장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1985년 카네기멜런대의 로버트 켈리 교수의 『골드칼라 노동자(The Gold Collar Worker)』에서 등장한 용어다. 만화가, 콘텐츠 작가, 그래픽디자이너, 프로게이머, 프로그래머, 회계사, 시스템분석가 등을 비롯하여 정보통신, 금융, 광고, 서비스 등 IT 분야의 개발자들이 골드칼라에 해당된다. 이렇게 기술의 진보로 육체노동이 기계화되면서, 전통적인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었고, 사무직과 생산직의 중간 성격을 지닌 계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그레이칼라’라고 한다. 오토메이션 장치의 감시와 정비, 일반 전자장비 설치와 유지, 농림수산업, 보건, 노인이나 아동 서비스 관련 종사자, 음식업이나 경호업무 종사자들을 의미하는데 젠더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루와 화이트, 핑크에 이어 새로운 세대와 계층을 의미하는 용어는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그린칼라’와 ‘퍼플칼라’가 등장했다. ‘그린칼라’는 친환경을 의미하여 대체 에너지 개발과 오염물질 사용금지·제거 등 친환경산업을 추구하는 계층이다. 이들은 ESG,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면서 기술적 진보를 지구적 생태계와 미래의 가치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퍼플칼라’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근로시간과 장소를 탄력적으로 선택하는 계층으로 젠더 영역의 재구조화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라색은 빨강색(여성·가정)과 파랑색(남성·일)을 혼합한 색으로, 두 영역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자리를 ‘퍼플잡(purple job)’이라고 부른다.
앞으로도 여성들은 핑크칼라를 넘어 새로운 영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젠더리스 개념이 미래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줄게 될지 확실치 않지만,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가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계층의 출현과 가치 생산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개념도 사라질지 모른다.

 

조혜영 건국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초빙교수·홍익대 대학원 외래교수

홍익대 예술학, 캘리포니아주립대 미술사 석사 후 국민대에서 한국디자인사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대중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서 인문학적으로 디자인을 생각한다. 공저로 『이야기와 이야기』, 『신유목민의 디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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