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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어머니
칼국수와 어머니
  • 김호기, 서평위원 연세대
  • 승인 2001.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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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장마 때가 되면 유독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16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다. 나는 열 한 살까지 경기도 양주 어느 평범한 시골에서 살았는데, 어머니는 건너 마을에 태어나 열아홉 살에 우리 마을로 시집오셨다.

장마 때면 어머니는 꼭 칼국수를 만드셨다. 햇밀가루로 반죽을 빚고 듬성듬성 크게 썰어 끊인 칼국수를 장마 때가 되면 자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칼국수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고추밭을 걱정하시고 젖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셨다. 어느 해 큰 장마에 고추 받침대가 모두 쓰러져 안타까워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 나이 열 한 살 때, 어머니 나이 마흔 네 살 때, 우리는 시골을 떠나 도회지로 나왔다. 어머니는 더 이상 고추밭과 아궁이를 걱정하지 않으셨지만, 장마 때가 되면 칼국수만은 꼭 만들어 주셨다. 맑은 멸치 국물에 햇감자와 애호박을 넣고 끓인 뜨거운 칼국수는 나에게는 소중한 장마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얼마 전 우연히 박석무 선생이 편집한 ‘나의 어머니, 조선의 어머니’(현대실학사 刊, 1998)를 읽게 되었다. 조선 초기 점필재 김종직의 어머니에서 조선말기 영재 이건창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어머니 33인의 일생을 아들이 손수 기록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행장, 묘지문, 유사 등을 편역한 것으로, 율곡 이이, 서포 김만중, 도암 이재, 영재 이건창 등 평소에 좋아하던 분들의 삶의 이면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단순한 흥미만 느끼기엔 이들의 思母曲은 훨씬 진중한 데가 있었다. “선비들이 서울에서 살때란 말이냐”나 “행실이 없고서야 글을 어디에 쓸 것이냐”와 같은 글 속에 나타나는 어머니의 육성은 울림이 깊다.

조선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했던 이 분들의 일생은 한편으로는 한없이 감동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을 억눌렀던 가부장적 권력을 생각하면 우울한 마음 가시지 않는다. 20세기를 살아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 또한 이분들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으셨다.

굳이 수사를 덧붙일 필요도 없이 어머니의 사랑은 至高至純한 것이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나의 경우 모성애가 문화적으로 주조되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면 그러한 담론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내가 탈구조주의의 상대주의를 유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담론과 권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운 진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나는 아직도 주체 중심적 해석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되었다. 연구실에서 내다보니 빗줄기가 오락가락 한다. 오늘 점심에는 어디 가까운 칼국수집이라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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