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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 모두 ‘의산복합체’ 노예다
의사·환자 모두 ‘의산복합체’ 노예다
  • 유무수
  • 승인 2022.07.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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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병든 의료』 셰이머스 오마호니 지음 | 권호장 옮김 | 사월의책 | 344쪽

제도화된 현대의학은 새로운 종교, 의사는 사제
왜곡된 인센티브는 경력주의·상업주의와 조합해

아일랜드 코크 대학병원 교수인 셰이머스 오마호니는 의과대학 재학시절(1977∼1983) “제도화된 현대 의학이 자체의 의식(儀式)과 교리를 갖춘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의사들은 새로운 사제가 되었다”라는 이반 일리치(1926∼2002)의 주장에 흥분했고 의학공부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전문의에 이르는 사다리를 천천히 올라갔다. 저자는 35년간 의사로 활동하면서 의료-산업 복합체가 지배력을 확대하고 의료제도가 병들어가는 상황들을  목격해왔다. 저자는 “의료제도가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제도를 통해 원래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를 제도 자체가 좌절시킨다”라는 이반 일리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80년대에 병원 전문의가 되려면 연구경력이 필요했기에 저자는 연구 펠로우에 지원했다. 급여를 만들어준 연구과제는 셀리악병에 대한 신약 임상시험이었다. 임상시험에서 약물의 이득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하려 할 때 제약회사는 반대했고 학술지도 유의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논문의 출판을 거절했다. 저자는 연구자들이 “주로 승진, 연구비, 논문, 수상 같은 것에서 동기를 부여 받고” 있으며 “학계의 브라만들(교수, 학과장, 학장 등)이 위원회를 차지하고 서로 연구비를 나눠 갖는” 연구문화를 알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의학연구의 전문화, 산업화, 국제화는 1987년에 이미 진행 중이었고 2000년경 거의 완료됐다. 대처 총리 시대의 의료개혁은 병원 전문의의 권한을 약화시켰고 의학과 산업 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풍족한 연구비를 쓰는 대학연구소와 같은 대형 기관에서 학술관료의 감독을 받으면서 수행하는 ‘거대과학(Big Science)’은 “왜곡된 인센티브, 경력주의, 상업주의”와 조합되었다. 엄밀한 연구 대신 최대한 많은 논문을 산출할 수 있는 쪽으로 연구방법을 설정하는 게 유리해졌다. 질보다 양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거대과학에서는 “대부분의 연구가 연구결과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후속 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반복 연구를 하더라도 결과가 재현되지 않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은 의산복합체에 의해 조작된 가짜 질병이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설사가 심해지면서 탈수증상이 악화되고, 마지막 모습은 심한 장염으로 인한 사망”인 ‘셀리악병’의 치료에는 밀의 글루텐 성분이 없는 ‘글루텐프리’ 식이요법이 처방된다. 글루텐프리 제품의 선두 주자인 닥터셰어는 학술지 논문과 합의 콘퍼런스를 후원했고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라는 질병이 탄생했다. 글루텐프리 제품은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되었다. 셀리악병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글루텐이 유해하다는 근거가 없으나 글루텐프리 제품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따라서 셀리악병이 없는 사람은 심혈관 질환에 예방효과가 있는 통밀을 덜 먹게 되었다.

8세기경 이스터섬에 정착한 폴리네시아인들에게 조상숭배는 주요 종교행사였고, 각 부족은 더 큰 석상을 건립하는 진보경쟁을 벌였다. 더욱 많은 목재, 밧줄, 인력이 동원되면서 숲이 황폐해졌고, 희소해진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부족전쟁이 발생했다. 석상 세우기 경쟁으로 질주한 사회제도의 결과는 인구집단의 붕괴였다. 저자는 현재 의료 상황은 의사들과 환자들이 모두 의산복합체의 노예가 되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저자는 합리적 회의와 연민을 촉구하면서 의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때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누구에게 이익인가? 둘째, 그것 때문에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권호장 단국대 의대 교수는 옮긴이 머리말에서 “이 책이 우리의 의료제도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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