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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J팝, V팝…팝은 더 이상 영미음악만은 아냐
K팝, J팝, V팝…팝은 더 이상 영미음악만은 아냐
  • 신현준
  • 승인 2022.06.29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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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어디서 왔니 ① 장르와 장소

대중가요의 역사와 문화를 현장감 있게 조명한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1960, 1970, 1980, 1990)가 화제다. 이 시리즈는 한국 팝에 대한 문화연구 측면과 K팝의 뿌리를 찾는 여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 팝의 고고학』은 공간을 중심으로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엮어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에 책의 공저자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가 ‘K팝 어디서 왔니’라는 제목으로 책에서 못다한 얘기를 총 8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6년 파리에서 열린 ‘KCON’에서 K팝 가수에 환호하는 관객들. 사진=위키피디아

팝 음악, 한국과 만나 ‘K팝’으로 변주…민족의 시각 넘어야
대중음악 역사를 한국의 도시공간이 지닌 배경으로 풀어내

“다시 가 보니 흔적도 없네”. 베테랑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부른 동명의 곡에 등장하는 노랫말이다. 이 곡은 2012년 그들의 정규 앨범에 수록되기 전 「서울 서울 서울」이라는 옴니버스 앨범에 먼저 수록되었다. 서울은 이런 곳이다. 이전의 기억을 찾기 위해 어떤 장소를 방문하면, 찾으려는 대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다반사다. 다른 도시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노랫말 속 화자의 심정은 지난 5월 말 네 권으로 완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을유문화사)을 작업할 때 저자들이 느낀 심정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라는 보편적인 이름을 달지 않고 ‘고고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유다. 즉, 이 책은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흔적을 찾기 어렵게 변화한 한국의 도시 공간을 배경과 맥락에 깔고 있다. 

같은 말이지만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 공간에 소재한 여러 장소들의 변화와 대중음악의 변화를 연관(association)시킨 시도다. 저자들 가운데 고고학 전공자는 아무도 없지만 그들은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인물과 심층 면접을 하고 현장을 방문해서 작은 흔적이라도 발굴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은 초고를 쓴 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었다. 

그것을 ‘왜’ 했는지에 답하기는 힘들다. ‘아무도 하지 않아서’가 1차적인 답일 수는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반문에 충분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한 가지 존중받고 싶은 것은 있다. 20세기 후반의 한국 현대사, 이 경우 문화사를 논할 때 ‘독재정권의 산업화 대 민주화 운동의 투쟁’이라는 이분법에 가린 디테일을 들추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이 점에 대해 저자들의 생각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다. “작은 것들을 지키고 낡은 것들을 되살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빛을 내”라는 구절이다. 싱어송라이터 송재경이 9(구)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고고학자」라는 곡이다.

이상은 학술연구의 장에서 방법(론)이라고 부르는 심급에 해당한다. 혼합 방법론이라는 말은 이제 첨단적으로 들리지 않지만 그것 말고는 이 주제를 연구할 대안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동 저자 두 명은 제도권의 학술연구자가 아니라서 일정한 절충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 둔다. 방법론이 수미일관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보인다면 그 때문이다. ‘유연하다’는 ‘산만하다’로 인지될 수 있는 점도 인정한다. 

 

팝(스)가 도시공간과 조우하며 갈등 드러나

그 다음은 대상이다. 제목의 처음에 나오는 ‘한국 팝’은 이런저런 반발과 항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1권(1960년대)과 2권(1970년대)의 초판이 발간된 2005년에 비하면 언론에서 이 생경한 용어에 대해 의외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팝’이라는 용어를 서양, 주로 영미 대중음악에 적용했던 관습이 희석되면서 아시아 대중음악에도 적용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 아니라 ‘K-pop’이다. 그리고 K팝 이전에 ‘J-pop’이 있었고 이후에는 ‘V-pop’도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이 한국이라는 ‘장소’와 팝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실천을 다룬다고 소개하고 싶었다.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저작들이 꽤 있지만 대부분 인물과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이 나름 독창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상 대화에서 ‘큰 일 났다’라고 말할 때 일은 사건이고, ‘일하고 있다’에서 일은 실천이므로 이 책은 대중음악과 관련해서 일어난 일과 일한 사람들을 다루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 팝’이라는 낯선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간략히 말해 보겠다. 지금 트로트라고 부르는 장르가 형성될 때는 당대에 ‘朝鮮流行歌(조선유행가)’라고 표기했고, 지금 K팝 혹은 케이팝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K-pop’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당분간 그럴 것이다. 전자는 한자로, 후자는 로마자로 써야 제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 팝은 한글로 써야 제격이다. 한국이라는 장소, 즉 도시 공간의 여러 장소들에서 팝, 정확히 말하면 팝(스)의 여러 장르들이 어떻게 조우했고 그 뒤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라는 관점을 취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조우와 전개는 결코 부드럽고 원만하고 조화로운 과정이 아니라 모순과 갈등과 간극으로 가득찬 과정이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그건 ‘독재정권 대 민주화운동의 이분법’은 물론 ‘문화 제국주의 대 문화 민족주의’라는 이분법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점은 연구하기 전에 가설로 전제한 것이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이 ‘민족’과 큰 관련이 없는 ‘장소’라고 생각하려고 애썼고, 팝을 ‘아메리카’(혹은 ‘앵글로아메리카’)로 환원시키려고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한국을 민족, 팝을 아메리카와 연관짓는 시각은 아직도 지배적이다. 그게 단순한 시각이며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책에서 서술했다. 오늘은 한 가지 에피소드만 전하면서 다음 호로 이어보고자 한다. 

2016년 말∼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반대하는 촛불시위 과정에서 문화제가 열렸을 때 많은 록 밴드와 아티스트가 진보진영의 초대를 받고 무대에 서서 대의에 동참했다. 그런데 1981년 11월 저자 가운데 한 명은 한 대학교의 ‘관제 축제’에 초대된 록 밴드, 당시 용어로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결사 저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 10대 시절 록 음악을 비롯한 팝 음악에 영혼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에는 심정적 반발이 있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항력이었다. 35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일’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보자.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사회융합자율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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