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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지역, 각자도생의 길 가나
수도권과 지역, 각자도생의 길 가나
  • 최재목
  • 승인 2022.06.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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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논설위원

새 정부는 몇 가지 주요 대학정책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교육부의 구조조정’과 ‘대학규제 완화방안’이다. 다음으로 ‘지방대 시대’ 전략과 ‘지방대 재정지원 권한 지자체 위임문제’이다. 그 구체화에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측에서 이미 “교육부의 지방대 정책은 획일화된 평가에 따른 기계적 지원 등에 머물러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대학 발전과 인력 양성을 이끌지 못해”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권한을 지자체에 넘길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인구감소로 지역소멸마저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에 ‘고등교육’ 감독권을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과감히 지자체에 넘길 수 있을까? 그리고 지역 인재가 중앙무대에서 차별받지 않을 방책이 있을까? 등등 의문이 생긴다. 

‘사람 새끼는 서울로, 마소 새끼는 제주로’라는 조선시대 이래의 한양 중심 사유는 우리의 에피스테메이자 아비투스이다. ‘중심(수도권)-주변·말단(비수도권)’이라는 차별 프레임은 지역소멸 추세에 정비례하여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필자는 먼저 무반성적으로 사용하는 ‘지방대’라는 표현부터 자제하길 원한다. 지방대란 ‘비수도권대’ 일반을 가리키나 그냥 ‘지역대’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수도권대 이외 ‘지방 소재 잡다한 대학’을 ‘지잡대’라 하듯, 수도권 이외의 지역을 우습게 보는 중앙권위주의의 구태에서 ‘지방대’라는 말이 생겨났다. 지역대를 졸로 보는 이런 표현을 없애고 그냥 ‘OO대’라고만 호칭하는 것도 좋겠다. 

지역대는 미래의 장밋빛 구상보다 절박한 ‘현재 상황’에 민감하다. ‘학생’ 없는 교육이란 불가능하기에, 지역의 대학을 지키는 일은 그곳의 ‘사람’을 지키는 일, 즉 지역소멸 방지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지자체가 그 지역의 대학을 감독, 지원하는 방안은 일단 합당하다고 본다. 그러면 교육부의 기능은 축소되고, 지자체의 권한, 대학의 자율은 증대될 것이다.

문제는 과거 및 현재의 대학교육 정책 실패에 대한 현 정부의 정확한 ‘진단’이 있는가이다. 정부만 새로 들어서면 교육 정책을 바꾸나, 지금까지 이뤄진 교육정책의 ‘허실’을 철저히 점검, 공론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법개정과 개혁은 이를 근거로 추진돼야 마땅하다.

매슈 사이드는 『블랙박스 사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나 ‘일부’는 배운다고 했다. 그 일부란 ‘블랙박스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사고가 일어나면 블랙박스를 열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고 발생의 이유를 밝혀 동일한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절차를 수정하는 항공업계처럼, 실패를 통해 성공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학과 등 산업 수요가 높은 대학 학과의 정원을 크게 늘리는 문제가 거론된 뒤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관련한 수도권 대학의 총 입학 정원 제한 여부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부처가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함을 언급했으나 이것은 이제 수도권과 지역이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교육부와 지자체의 역할 조정과 분담 또한 혁신적 발상이 필요하고, 지자체와 대학의 ‘생존법’ 또한 절실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대학 총입학정원 제한폐지’ 움직임은 상반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때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권을 대폭 허용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방안에 골몰할 때다. 흔히 정치는 1년, 경제는 10년, 교육은 100년이라고 한다. 그 기간만큼의 파탄을 상징한다. 정권이 끝나도 교육은 지속되고 대학은 유지돼야 한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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