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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그리다
그녀를 그리다
  • 최승우
  • 승인 2022.06.19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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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지음 | 나무발전소 | 112쪽

“내 마음에 정좌한 당신을 보듯/흰 꽃잎 속 한가운데 들어앉은/
노란 꽃술을 잠시 들여다봅니다”

우리 인생엔 어느 날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어둠 속에 버려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인에겐 아내와의 사별이 그랬다.
“병원에서 걸려온 새벽 전화에 놀라/정신없이 달려갔을 땐, 이미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던/그 새벽 아내와의 이별,”(-〈따뜻한 이별〉 중에서)

급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시인은 ‘의미 없는 시간의 한 구석’에 버려졌다고 느낀다. 아내의 부재는 모든 곳에서 왔다. 겨울이 깊어져도 바뀔 줄 모르는 여름 이불로, 단추가 떨어진 와이셔츠 소매로, 김치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도마로, 커피 머신으로 양치 컵으로 쑥갓으로, 아내는 ‘없음’의 모습으로 시인의 곁에 내내 머문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인은 삶 곳곳에 남아 있는 아내의 흔적들에 관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시를 쓰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늘 있지만 늘 없는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쓰다가 시인은 아내의 웃음만이 아니라 도란거리는 말소리나 술 적게 마시라는 잔소리까지도 자신을 충전시키는 ‘전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내가 자신의 삶을 부드럽게 이어주던 ‘연골’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골이 점차 닳아 없어지는 퇴행성 관절염,/ 우린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지만 / 일상의 모든 관절이 갑자기 / 삐걱거리고 아프게 되어 버린 / 당신과의 이별// 일상의 관절 사이 사이에 / 숨어 있던 당신이 /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후, / 나는 뼈와 뼈가 맞닿아 / 뜨끔거리는 통증으로 다리를 삐걱거리며 / 오늘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연골〉 중에서)

그러나 시인은 아내가 없어도 뜨끔거리는 통증을 견디며 지하철 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인은 ‘내색하지 않고 참는 시간이 참 오래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가다가 길가에 세우고 한참을 울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어 한참을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살아졌다고, 피어나는 꽃들조차 그렇게 싫더니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고 말한다.

슬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보낸 시인의 지난 시간들이 이 시집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담겨 있다. 혼자 간 마트에서 몇 번씩이나 두리번거리며 떠난 아내를 찾는 시인의 황망한 뒷모습을 눈으로 본 것 같다. 홀로 백내장 수술을 하러 간 병원에서 꼿꼿이 선 채 아내와 동행한 남자들을 빈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시인의 뒷모습도 본 것만 같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시인이 안간힘을 다해 걸어온 그리움의 시간에 젖어있다 보면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란 그의 고백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아내의 부재를 통과해 걸어온 시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어둠 속에 버려진 것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아마도 더더욱.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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