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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론 사회계약론 초고
정치경제론 사회계약론 초고
  • 최승우
  • 승인 2022.06.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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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루소 지음 | 이충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80쪽

한국 사회에서 루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구호 속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사회의 설립, 특히 소유권의 성립을 자연상태의 타락으로 바라본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불가피한 이행을 서술하는 「사회계약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에밀」의 구호 속에서 루소의 사상은 일관된 체계를 갖춘 저작이라기보다 불일치와 모순으로 가득 찬 텍스트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모순을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으니, 전형적으로 이야기되는 결론, 곧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레테르였다. 곧,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부자연스러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선거 날만 자유인이고 나머지 나날은 노예로 살아가야 할 불행한 인민들에게, 다시 자연상태에서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루소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루소이다. 과연 그럴까? 루소는 사회상태의 제도와 문화를 비판하고, 자연상태로의 복귀를 찬양했던 목가적 사상가였을까?
이번에 출간된 「정치경제론?사회계약론 초고」의 출간 의도는 루소의 주요 정치 저작으로 간주되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 사이의 모순 대신 연속성을 찾는 데 있다. 또한 루소가 사회상태를 부정하고 자연상태를 찬양하기만 한 것인지에 대한 일단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역자인 이충훈의 해석을 따라,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정치경제론」과 「사회계약론 초고」에서 루소는 명백히 그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취했던 자연상태에 대한 찬양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어조는 전혀 다르다. 「초고」에서 루소는 “저 완전한 자족과 규칙 없는 자유가 … 언제나 우리가 가진 탁월한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자연상태에서 “각자는 타인들 가운데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각자 자기 외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랬으니 우리의 지성이 확장되기란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살고, 어떤 삶도 살아 보지 않고 죽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복이란 비참을 겪지 않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선이란 것이 없을 것이고, 우리의 행동에는 도덕이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영혼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감정인 미덕의 사랑이란 것을 한 번도 맛보지 않았을 것이다”(본 번역본 107, 108쪽).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유와 자족을 한껏 누리며 살았지만 자연인의 지성은 동물과 큰 차이가 없었고, 그는 고립되어 혼자 살아갔으니 타인을 증오하거나 해를 끼칠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연인이 미덕을 가졌다는 증거는 못 된다. 자연인은 자기보존의 원천으로서 자기애(amour de soi)를 갖지만 이 감정은 사회상태에서 이기심(amour propre)으로 변질되기 이전의 순수한 감정일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자기를 희생하여 타인을 배려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루소는 인간이 자연상태로 더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자연에게서 받았던 여러 이점을 잃게 되지만, 그것을 더 큰 것으로 다시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연상태의 ‘결함’을 사회상태의 ‘미덕’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사회상태에 들어선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런데 1753년에 작성된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1755년경에 쓴 「정치경제론」, 그리고 1750년대 후반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초고」의 연속성을 세우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뒤의 두 저작은 어떤 점에서 “불평등의 종착지”에 이른 현대의 타락한 사회를 복구하기 위한 루소의 정치적 기획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좋다. 다시 말하자면 이 두 저작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다루지 않았던(혹은 다룰 수 없었던) ‘3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루소는 「정치경제론」과 「초고」에서 자연상태를 벗어나면서 포기해야 했던 자유와 자족을 사회상태에서 어떻게 새로이 확보할 수 있는지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설립은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가졌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했지만, 이상적인 사회라면 그렇게 잃은 것을 더는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 더 큰 가치를 마련해 줄 테니 말이다.
_옮긴이 해제 중에서

이렇게 볼 때, 「정치경제론」과 「사회계약론 초고」(한국어판 최초 출간)의 출간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제기된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연으로의 복귀가 아닌, 현실 사회 속에서 이런 불평등과 억압을 어떻게 제어하고 자유를 확보할지를 검토하는 하나의 일관성을 갖춘 흐름으로 「사회계약론」을 읽어 낼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론, 이 같은 해석은 루소의 철학적 체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다만, 이 같은 논의가 기존 한국 사회에서 간과해 왔던 루소 철학의 다양한 측면을 새롭게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이런 이행은 인간에게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온다. 즉, 행위에서 정의가 본능을 대체하고, 인간 행동은 전에는 없었던 도덕적 관계를 부여받는다. 이때에야 의무의 목소리가 신체적 충동을 대신하고 법이 욕구를 대신하게 되어, 여태껏 오로지 자신만을 고려했던 인간은 이제 자신이 다른 원리를 따라 행동해야만 하고, 자신의 성향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 이성의 충고를 따라야 함을 알게 된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에게서 받았던 여러 이점을 잃게 되지만, 그것을 더 큰 것으로 다시 취하게 된다. 능력이 신장되고 발전하며, 관념이 확장되고, 감정이 고상해진다. 영혼 전체가 고양되니, 이 새로운 조건에서 생겨난 폐단 때문에 그가 처음 조건 이하로 빈번히 추락하는 일이 없는 한 그는 자연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된 다행스러운 순간이자, 어리석고 모자란 동물을 지성적인 존재이자 인간으로 만든 그 순간을 끊임없이 찬양할 것이다.
_본문 중에서

정치+철학 총서는 근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치철학의 고전을 발굴해, 그 저자들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당대의 시대적 배경과 호흡하면서 탄생했고, 그들의 철학 체계 안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고전에 대한 재발굴과 재조명 작업을 통해 철학자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열어 주고, 정치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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