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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94]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최초 비판자, 루돌프 로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94]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최초 비판자, 루돌프 로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6.13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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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나키스트
루돌프 로커는 1873년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거의 삶은 현대 아나키스트의 특징인 초국가적이며 국제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진=위키미디어

현대 미국의 아나키스트 놈 촘스키에게 깊은 영향을 준 루돌프 로커(Rudolf Rocker)는 앞에서 본 훔볼트와 니체의 영향을 받았으나, 촘스키는 훔볼트는 인정하면서도 니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이 로커와 다르다.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로커는 훔볼트의 국가 행위의 한계에 대한 사상과 자유가 인간 진보와 문화의 기초라는 견해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국가가 문화를 창조하지 않는다고 본 점에서 로커는 니체의 국가 비판, 독일문화의 쇠퇴 비판, 예술에 대한 아폴론적 정신과 디오니소스적 정신을 찬양했다. 그러나 로커는 무엇보다도 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라는 점에서 촘스키의 대선배이다. 

로커는 1873년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현대 아나키스트의 특징인 초국가적이며 국제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가 태어난 남부 독일의 고대 라인 도시인 마인츠는 프로이센에 반대하는 연방주의 전통의 도시였다. 권위주의적인 교사를 ‘무정한 독재자’로 부른 그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으나 두 번이나 도망쳤고, 노동을 하면서 노동조합 활동도 했다. 란다우는 아나키즘적 마르크스주의 그룹에 가입했으나, 독일사회민주당(SPD)을 주도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독단적인 편협함에 의해 곧 추방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가 배만 채우는 문제만이 아니라 개성의 감각과 개인의 자유로운 주도를 요구해야 하는 문화의 문제라고 확신하면서 고드윈에서 크로포트킨에 이르는 고전적 아나키스트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아나키스트가 된 란다우는 1892년에 체포되었으나 도망쳐 파리를 거쳐 런던에서 아나키스트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적국인으로 억류되었다가 1918년에 독일로 추방되었다. 생디칼리스트 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스페인혁명의 아나키스트를 옹호하는 글들을 쓰고, 대표작인 『민족주의와 문화』(1937)를 나치의 권력 장악 직전에 완성했으나 나치에 의해 망명을 강요당해 미국에 정착해 1958년에 죽을 때까지 아나키스트로 활동했다. 

 

독일에서의 아나키즘은 가능한가

루돌프 로커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인에게 아나키스트 사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에 젖어야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최초의 비판자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적인 진리는 결코 찾을 수 없고,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말한 최종 목표가 있다고 믿을 수 없으며, “자유는 우리를 계속해서 더 넓고 확장된 이해와 새로운 사회적 형태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진보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독단에 묶는 것이며, 그것은 항상 폭정으로 이어진다.”라고 주장했다. 빈곤과 고통의 경험으로 인해 일부 혁명가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더 나쁠수록 더 좋다’고 주장한 것을 거부한 그는 반대로 사람들이 심하게 고통을 받으면 사기가 저하되고 사회해방을 위해 싸울 힘이나 의향도 없어진다고 믿었다. 

대표작인 『민족주의와 문화』에서 문명 쇠퇴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 정치라고 지적하고 최대한의 자유를 주장한 로커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인에게 아나키스트 사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에 젖어야 했다. 그 책의 1부에서 경제적 물질주의의 문제점을 공격한 로커는 역사적 발전 동인으로 니체가 말한 권력의지를 택한다. 이어 종교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듯이 인간이 국가에 복종한다고 하면서 그 원흉으로 루소와 헤겔 그리고 개신교를 비판하고 마르크스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는 파시즘의 쌍둥이 악인 소비에트 체제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이어 제2부에서 로커는 민족에 대한 다양한 정당화, 즉 이상 공동체로서의 민족, 언어 공동체로서의 민족, 인종 집단으로서의 민족을 논박하고 “민족은 국가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자연적인 제도가 아니라 종교처럼 인간에게 훈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의 무류성처럼 절대적인 독재가 등장하여 “모든 인권에 대한 강간”을 초래한다고 비판한 그는 그런 권위주의 대신 “새로운 인도주의적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서기 2세기경 로마 제국과 게르마니아를 나타낸 지도. 사진=위키미디어

이 책은 민족주의에 젖은 우리에게도 몇 가지 중요한 시사를 한다. 먼저 로커가 ‘인민’과 ‘민족’을 구분하는 점이다. 그에 의하면 인민은 ‘사회적 결합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생활의 외부 조건, 공통 언어 및 기후 및 지리적 환경으로 인한 특성의 유사성으로 인한 인간의 상호 결합’인 반면에 민족은 ‘민족주의가 근대 국가의 정치적 종교에 불과했던 것처럼 정치권력을 위한 투쟁의 인위적인 결과’라고 봤다.

따라서 인민은 항상 ‘경계를 가진 공동체’인 반면, 민족은 일반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으로 공동 국가의 틀에 갇힌’ 다양한 인민과 인민 집단의 전체적 배열을 포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로커는 민족 국가를 ‘정치적 교회 조직’이라고 봤고, 민족이 언어의 공동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자의적 관념을 거부했다. 또한, 인종은 단지 생물학의 인위적인 분류일 뿐이며 전체로서의 인류만이 생물학적 단위 인종을 구성한다고 본 로커가 민족주의란 거대한 인류 가족의 ‘유기적 통일성’ 안에서 인위적인 분리를 강요하기 때문에 반동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능한 관료주의보다 견디기 힘든 폭정은 없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정치권력과 문화는 양립할 수 없는 대립물이라는 주장이다. 로커에 의하면 권력은 획일성을 추구하는 반면 문화는 새로운 형태와 조직을 추구한다. “국가가 죽거나 그 힘이 최소한으로 제한된 곳에서 문화는 가장 잘 번성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는 인간에게 인간성과 창조적 힘에 대한 의식을 주지만, 권력은 인간에게 의존과 속박의 감각을 심화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권력과 문화,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쟁을 양극 중 하나인 권위에서 출발하여 그 반대의 자유를 향하는 추의 운동에 비유했다.

민족국가는 오래된 공동체를 파괴하고 모든 사회적 활동을 정치적 권력을 위한 조직의 특수한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환시켰다고 비판하는 로커는 악을 창조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양육하고 조장하는 것은 국가의 형태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인간 생활의 사회적 요소를 몰아내거나 그 규제하에 강제하면 할수록, 사회는 더 빨리 분해된다. 우리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의 통치가 아니라 사물의 통치다. ‘우리가 어떻게 다스려지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전면적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다. 국가 사회주의의 형태이건 국가 자본주의의 형태이건 전능한 관료주의보다 더 견디기 힘든 폭정은 없다고 주장한 그는 정부와 국가 대신에 연방주의를 ‘자유롭게 도달한 협약에 기초한 공동의 목표를 향한 모든 사회 세력의 유기적 협력’으로 제안한다.

크로포트킨의 가르침에서 출발한 로커는 현대 아나키즘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흐름의 합류점이며 일종의 '자발적 사회주의'라고 보았다. 사진=위키미디어

정부가 만든 ‘실정법’을 거부하면서 그는 국가의 성장 이전에 존재하고 서로 대면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합의의 결과’인 ‘자연법’을, 동일한 이익에 추동되고 인간으로서 동일한 존엄성을 향유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족주의와 문화』의 에필로그에서 그는 미래 세계 연방을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진정한 유럽 민족 연합을 요구했다. 파시즘의 부상과 스페인의 아나키 생디칼리스트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로커는 ‘한때 힘과 권리가 하나였던 것처럼 우리는 이제 모든 형태의 통치가 사라지고, 법이 정의에 지고 물질적 자유가 정신적 자유에 지는 시대를 향하는 것 같다’고 확신했다. 크로포트킨의 가르침에서 출발한 로커는 현대 아나키즘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흐름의 합류점이며 일종의 ‘자발적 사회주의’라고 보았다. 그것은 모든 인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사회 패턴과 인간 생활 조건의 무한한 완전성’을 믿는 것으로 삶의 모든 개인적 및 사회적 힘이 방해받지 않고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이라 생각했다. 

자유는 그것이 절대적인 목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보는 로커는 아나키즘을 경제적 독점과, 사회의 모든 정치적 및 사회적 강압 제도의 폐지를 옹호하는 지적 흐름으로 정의했다.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 대신에 아나키스트들은 ‘협동조합 노동에 기반한 모든 생산력의 자유로운 결사’를 가질 것이지만, 반면에 국가는 ‘대중 착취와 사회적 특권의 옹호자, 특권계급과 카스트와 새로운 독점의 창시자’라고 비판하면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은 아나키즘이라는 ‘세계철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 그는 그것이 더 높은 사회문화와 새로운 인류의 진화를 위한 첫 번째 전제조건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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