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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69-같은 시간, 다른 세상
[짧은 글 깊은 생각]69-같은 시간, 다른 세상
  • 교수신문
  • 승인 200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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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1:32:47
고영훈/ 경상대·건설공학부

나는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세대간의 격차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도 청소년기가 있었고 그 시절에 겪었던 좌절을 생각하여 이해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은 종강 전 대단히 더운 월요일이었다.
내가 맡은 수업은 70여명이 수강하고 있어서 2백40명 정원의 큰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 데다 나른하게 졸리는 오후 2시부터 2시간 연달아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수업에 동참시킬 것인가? 더구나 월요일 오후는 일요일의 후유증으로 집중도가 떨어지는 시간이 아닌가.
수업을 하려고 강의실로 들어서니 일요일과 점심시간의 연장선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듯 서로 목청을 돋우고 있었고, 몇 명은 의자 등받이를 베개삼아 누워있었다. 진정을 시키기 위해 출석부를 들고 강의실을 둘러보자 술렁대는 기척이 있더니 이윽고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떠드는 쪽이 있어 오늘은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주의를 주어야겠다 마음먹고 강의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었다.
떠드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니 한 줄 5명 모두 여학생들만 죽 앉았다. 그러길 3∼4초가 흘렀을까. ‘이때다’ 싶어, “너희들 들떠서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걸 보니 무슨 재미있는 게 있는 모양인데 모두에게 얘기 좀 해보지?”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때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이고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즘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얼마전 면담시간을 정해놓고 그 사실을 게시판에 공고했어도 학생들이 몇 명 오지 않았던 생각이 났다.
“너희들 요즘 뭘 생각하고 있니?” “관심거리가 뭐냐?” “나무라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얘기해봐.”“제일 오른 쪽 학생부터 차례로 얘기해봐.” 잠시 머뭇거리더니 “사실대로 얘기해도 돼요?” “물론이지.” “저… 사실은 남자 친구 핸드폰 비밀번호예요.” 갑자기 웃음이 강의실 이 곳 저곳에서 터지고 본인은 멋쩍은지 얼굴을 붉혔다. “그래? 그 다음?” “저는 오늘밤에 하는 연속극 ‘호텔리어’인데요.” 더 큰 웃음이 번졌다.
“저는 헬스 해서 올 여름 짧은 옷 입는 거요.” “지금 잠 참는 거요.” “수업 마치는 거요.”이 말들에 갑자기 머리에 물을 끼얹은 듯 모두들 잠 오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해 눈들이 초롱초롱 해졌다.
“그래, 솔직하구나….”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고 자기와 관련된 사소한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나와 같이 보고 듣고 느끼고 그렇지만, 서로 손을 뻗어 만질 수도 영향을 줄 수도 없는…같은 시간대에 속해 있는 것 같지만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묘한 착각과 동시에 교수로서의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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