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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가 부실논문 양산 … 분업시스템에 대한 해부 필요
‘성과주의’가 부실논문 양산 … 분업시스템에 대한 해부 필요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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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연구문화 점검 : 황우석 사태 이후 부각된 과학연구 쟁점

과학연구의 문화를 돌아본다 황우석 연구논문 조작스캔들이 한달째 언론의 톱을 장식하고 있다. 과학적 주제가 이토록 광범위한 여론의 관심사가 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과학문화의 여러 측면을 고찰해볼 수 있는 적절한 사례로 기능한다. 지난 한달간 각종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 전개된 무수한 담론 속에는 과학연구의 윤리문제, 과학과 대중의 문제, 정부의 과학정책에 대한 토론, 과학자들의 위상에 대한 문제 등 매우 중요한 논의주제들이 뒤엉켜 있었다. 교수신문은 지금껏 제기된 이런 논의들을 몇가지로 맥락화하여 심도있는 의제로 발전시키기 위해 각각 과학연구의 문화, 과학과 대중, 과학자의 자세 등으로 논해보았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을 캐내는 과정에서 우리 시대 과학연구의 자화상을 조명해볼 수 있는 중요한 주제들이 도출되었다. 학계는 이번 사태를 발전의 계기로 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언론에서는 실험실의 가부장적 시스템, 칸막이 연구의 폐쇄성, 석박사생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논문조작행위의 관행성 등을 거론하면서 과학계에 린치를 가하고 있지만, 발전국가구조와 강하게 연동된 국내 과학연구의 풍토에서 적은 연구비로 성과를 내기 위해 이런 열악성은 예견된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련의 과정이 내포하고 있는 과학사회학적 주제들을 일별해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먼저 성과 제일주의가 포착된다. 뭔가 가시적인 걸 만들어내기 위해 눈이 벌개져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준다. 꾸준히 단계를 밟아 기초적 연구를 집적해나가는 모습은 과학연구 현장에서 갈수록 약해진다.

과학연구가 학문 내적인 요구에 의해 촉발되고 진행되기보다는, 연구비를 타기 위한 연구, 유행에 민감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현상도 지적되어야 한다.

송우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세포신호전달)는 “BT 분야는 3년마다 유행하는 주제가 바뀌기 때문에, 스템셀 좀 하다가 다른 데로 또 옮겨가는 등 이동이 심해 한 주제를 10년간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지속적 탐구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기초과학 연구의 실상인 셈인데, 이럴 경우 어떤 실험결과를 반복적으로 실험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함으로써 명백한 하나의 과학적 진실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부족해진다는 게 송 교수의 전언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 송지환 포천중문의대 교수(발생생물학)는 “순수기초과학 연구가 장기적으로 진행되면 굉장한 응용기반이 되는데 이 점이 무시되고 있다. 요즘 연구비 지원부처가 통합되다보니 순수과학하는 소장과학자들에게 돌아오던 2천만원 정도의 연구비들이 많이 없어졌다”라고 지적한다.

그 다음으로는 과학에 대한 인식과 연구방식의 문제다. 우선 생물학이 여타 물리학이나 전자공학 등과 갖는 차이점이 지적되었다. 생물학 중에서도 세포연구는 아주 특별하다는 게 드러났다. 왜냐하면 실험과정이 너무나 많은 가변적 요소에 노출되어 있어 재현성이 여타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 또한 실험주체의 주관성이 단계단계마다 개입될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

서울대 세포연구실의 한 소장학자는 “생물학이 물리학이나 화학에 비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세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미세한 과정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라고 특이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동안 과학에 대한 사유는 이런 내부의 차이를 포괄하지 못했다. 과학의 작동구조가 분과별로 매우 다를 수 있고, 그 차이점에 대한 탐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에서 증명되고 있다.

반론 막기 위해 애매한 표현·실험없이 그래프 그리기도

이와 연관해서 객관적 엄밀성이라는 과학신화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과학 전반에서 주관성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각 분과 실험영역에서 ‘주관성’ 노출의 정도가 어떻게 다르고, 이에 따른 각종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조작’의 유형들이 종합될 필요가 있다.

이상호 고려대 교수(생명공학)는 “논문을 내면 평가위원들의 세세한 평가에 일일이 다 대응하며 수정해야 한다”라며 “석박사와 포스트닥 등을 거치며 이를 겪다보면 과학계의 엄격한 논문 출판의 생리가 몸에 익게 되며, 이 과정이 워낙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논문의 진실성을 의심 안한다”라며 전한다.

하지만 우선 명백한 조작행위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즈메디 병원에 대해 ‘포토샵 학원’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세포연구 분야에서 사진조작 같은 행위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사실 명백한 조작보다는 실험 주체가 자기최면을 거는 듯한 이런 식의 관행에 대한 검토가 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한 소장과학자의 주장은 그걸 말해준다.

“반론이 발생할 것을 걱정해서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논문을 작성한 경우, 반복적인 실험으로 뻔한 경향이 나오는 결과에 대해서 실험없이 결과의 그래프를 작성한 경우, 논문의 완성도를 위해 실제 과정상에 없었던 내용을 삽입하는 경우, 실험결과가 가설에 긍정적으로 나왔지만 이런저런 변수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그냥 써버리는 경우” 등이 꽤 벌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대형연구프로젝트 연결망 구조 분석해야

그 다음은 과학논문에 대한 저자의 책임성 문제다. 오늘날 과학논문, 특히 대형프로젝트는 여러 개의 세부 영역으로 쪼개져 공동저자들에 의해 수행되며, 책임저자가 결과를 수합해 논문을 쓴다.

그런데 이번 사이언스 논문은 그 쪼개짐의 정도가 매우 심했으며, 책임저자가 논문을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송우근 교수는 “그렇게까지 분업을 했어야 했을까”라고 지적한다. “주사 찌르는 사람, 사진찍는 사람 따로 있을 정도로 복잡하게 나누지는 않는 게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분업화 양상은 50~60명 되는 황우석 연구팀의 규모로 볼 때 필연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황 교수팀은 연구과제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분업화의 정도를 넘어서서, 그 연구가 학문적 성격을 견지하지 못할 정도로 분업화시켰다. 즉, 책임저자가 논문 전체를 장악하지 못할 만큼 그 연구가 시급하게 행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연결되는 것으로 대형 과학연구에 대한 연결망분석이 필요하다. 과학구성주의자인 존 로 영국 킬리대 교수는 1992년 어떤 항공기 프로젝트의 출생과 죽음의 과정을 이 방식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 팀은 국소적 연결망과 포괄적 연결망이 프로젝트 책임자에 의해 제어되지 못함으로써 실패로 귀결했다. 이번 사태도 이런 식의 분석이 필요하다. 알려졌다시피 2005년 연구는 황 교수가 원래 데리고 있는 복제소 연구팀, 줄기세포 배양을 담당한 미즈메드 연구팀, 면역저항을 담당한 서울대 의대팀이 국소적 연결망을, 난자를 제공한 병원들, 박기영 과학보좌관 등의 정부팀, 문신용·노성일·황우석 등의 기획팀 등의 포괄적 연결망이 외부에서 둘러싸는 형국.

이럴 경우 프로젝트의 성공은 두 연결망의 중개자들 사이에 얼마나 자연스러운 교환이 일어나고, 이런 교환의 과정이 프로젝트 책임자라는 ‘강제적 통과지점’을 필연적으로 거쳐가야하는 데 달려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황우석’이라는 ‘강제적 통과지점’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연결망 사이에서의 교환과정도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연세대에서 식물세포생리학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이순희 연세대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대학원생 관리를 잘못 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현재 드러난 것만 봐서는 황우석도 속아 넘어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즉, 어떤 이유이든 간에 황우석 교수가 ‘강제적 통과지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에 프로젝트 성패의 원인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연구하는 과정을 일지형식으로 꼼꼼히 기록하는 문제, 실험실 관리 문제 등을 위의 것에 통합시켜서 과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행동강령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상호 교수는 “동물이나 곤충을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논문을 쓸 때 유의할 점이 무엇이라든지 등에 대한 개괄적인 행동강령이 필요하다”라고 밝힌다. 이러한 과학연구의 과정상의 여러 가지 논의거리들도 중요하지만, 더욱 시급한 주제는 과학연구의 윤리문제다. 이번 2005년 논문의 위작결론으로 인해 2004년 논문을 비롯해 황우석 교수가 행한 기존의 복제소와 복제개에 대한 추가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세포조작 연구의 실체는 과연 이것이 생명윤리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짙게 불러일으킨다. 가령 광우병 내성소의 경우를 보자. 광우병은 소의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서로 응겨 침착돼 마비가 오는 병이다.

황우석 교수의 ‘영롱이’는 3년의 연구를 거쳐 이 이상프리온이 힘을 못 쓰도록 정상프리온을 과잉 발현시켜, 수적 열세에 처하게 만든 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엉터리라고 비판한다.

우선 이상과 정상이 서로 결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없고, 이상프리온이 정상인 상태에서 하는 역할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능을 마비시키면 광우병은 막겠지만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고영규 고려대 교수(세포신호전달)는 “황 교수의 복제소 연구는 예전에 보건복지부에 연구계획서가 제출되었다가 피어 리뷰에 의해 탈락된 건데 그런 절차들이 무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문적 연구로서 처음부터 결격사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초연구 없는 응용연구는 가능한가

이번 줄기세포 연구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복제소의 뇌에서 저격당한 단백질처럼,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관건인 성장속도의 억제 부분에서도 전혀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줄기세포의 성장을 과학이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암을 정복한 단계라는 것이 줄기세포치료를 비판적으로 지켜보는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그를 억제하거나 조작해서 다른 방향성을 갖게 하는 세포조작 연구는 전형적인 서구적 의학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소의 육체에 무리를 주는 사육방식을 바꿔 풀을 먹이는 원상태로 되돌리는 게 광우병의 근본적 치료책이란 점을 받아들인다면, 질병이 발생한 콘텍스트를 괄호로 묶어두고 특이현상 그 자체에만 매달리는 연구는 분명 한계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한 소장과학자의 말처럼 “줄기세포연구의 과학적 접근론이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일반적인 과학적 접근론의 적절성 문제다. 인간복제가 가능한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응용하는 줄기세포연구가 그 선후관계에서 맞느냐는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를 하더라도 예를 든다면 이미 복제가 된 양이나 쥐를 인위적으로 척추를 손상시킨 다음 복제줄기세포를 넣어서 실험해보는 게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음은 10명에게 주사해서 같은 결과를 얻어냈더라도 11명째에서 실패할 수 있을 경우다. 이럴 경우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번 황우석 사태는 이런 한계가 분명한 과학연구는 반드시 그와 연관된 분야의 과학연구, 과학을 넘어서는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서 충분히 보강되어야 하나의 치료프로그램으로 기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누차 지적되는 ‘과학의 정치화’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심층 구조분석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과학과 대중의 관계, 국가주의와의 결합, 과학 로비스트의 명단과 활동, 정치적 뉘앙스를 풍기는 연구에 대한 추후검토 등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는 과학사회학자들의 몫으로 이미 던져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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