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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미국대학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賞
교수논평: 미국대학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賞
  • 박경태 성공회대
  • 승인 2006.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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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태/성공회대·사회학

첫 안식년을 맞은 2002년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리버사이드)의 인종/민족학과(Ethnic Studies)에서 보냈다. 졸업식이 다가오자 학과 내부에서 거행하는 일종의 ‘우수 졸업생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순서지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마치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수여되는 상의 종류 중에서 ‘도산 안창호 상’이 있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이억만리 떨어진 미국의 한적한 소도시에 있는 대학의 졸업 기념상 중에 한국의 위인을 기리는 상이 존재한다니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도산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리버사이드 시와의 관련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산은 바로 이 도시에 있는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동료 한인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운동을 했으며, 그의 후손들 중에는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이 도시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도산의 업적을 기려 모금을 했고, 도심 한 복판에 동상을 세웠으며, 또 대학 측에 제안을 해서 기념상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지역의 도산 기념사업회 회장에 해당하는 재미동포가 상을 주면서 미국 학생들(그리고 교수들)에게 상의 취지를 설명해주었는데, “이민노동자였던 도산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던가”가 주요 내용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는 수많은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마석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 부천에서 만난 네팔 친구, 일산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친구, 성공회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버마 친구, .... 멀리 한국 땅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누가 알랴, 언젠가 그들이 자기의 조국에서 뜻밖의 사람이 될지! 그래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들의 후손들이 훌륭한 선조였던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남양주의 대로변에 동상을 세우고, 부천의 광장에 기념비를 세우고, 또 어느 대학에 그들의 이름을 딴 상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설령 그들이 ‘훌륭한 위인’이 안 되더라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일을 하고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조사해보려고 필리핀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착하게 자라고 있는 자녀들의 어머니이기도 했고, 인심 좋게 생긴 시골 노부부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아들이기도 했고, 동생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든든한 오빠이기도 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우린 너무 쉽게 대한 것이 아닌가.

시민단체들이 몇 년을 싸운 결과, 외국 인력을 노동자가 아닌 학생(연수생)으로 도입해서 일을 시키는 기형적인 산업연수생제도는 드디어 2006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대신에 그 사람들을 정식 노동자로 도입하는 고용허가제가 시작되었으니, 정책의 측면에서 볼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전체 이주노동자 33만 명 중에서 절반이 넘는 18만 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에 대한 일방적인 추방정책은 문제가 있다. 2003년 말부터 이어졌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농성과 자살들은 정부의 야심만만한(?) 추방정책 때문에 빚어졌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이주노동자의 대다수가 미등록 상태인 현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거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그동안 한국 경제에 이바지했던 점,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이미 우리의 일부로서 살아왔다는 점을 무시하고 단지 ‘유효기간이 지난 기계’라서 처분해야 한다는 방식은 곤란하다. 정책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또 어떠한가. 이미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상시적으로 살고 있고, 전체 결혼 건수의 11.4%가 국제결혼인 대한민국은 그들과 어울려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특히 국제결혼이 절반에 가깝다는 농촌지역에서는 몇 년 후면 역시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외국인’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텐데, 우리는 그런 광범위한 ‘혼혈’을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우리는 한국이 다인종·다민족·다문화 사회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새해에는 ‘피의 순수함’에 매몰된 편협한 국수주의의 도취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면 좋겠다. 새해에는 방글라데시나 미얀마, 필리핀에서 온 ‘안창호’들을 더 이상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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