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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낭만화, 창업의 가벼움
실패의 낭만화, 창업의 가벼움
  • 김소영
  • 승인 2022.06.07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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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창업 열풍이 인 지도 10년이 되어간다. 1990년대 말 1차 벤처 붐이 주로 대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IT 전문가 중심으로 한 창업 열기였다면, 요즘의 창업 바람은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대학생, 창업으로 제2의 인생을 여는 은퇴자 등 다양한 집단에서 불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와중에 고용이 악화되고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온라인 플랫폼 기반 창업도 크게 늘었다.

창업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조언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창업 코칭과 멘토링에서 실패는 단골 소재이고, 최근 카이스트는 실패연구소를 열었다. 더 이상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밑거름으로 겪어봐야 할 경험이 되었다. 사실 나 역시 과거를 돌이켜보면 예전에 이루지 못했거나 얻지 못했던 것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실패다.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져 ‘사후적으로’ 뒤돌아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경험일지 몰라도, 개인이든 조직이든 실패를 겪는 그 시간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특히 삶의 경험치가 대체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얻어지는 20대의 경우 단순한 실수나 시행착오가 아닌 진짜 실패는 목숨까지 앗아가기도 한다. 스타트업 역시 ‘죽음의 계곡’에서 많은 수가 진짜 죽는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은 기술개발에 성공한 벤처기업이 사업화 단계에서 자금 확보 어려움으로 위기를 겪는 단계를 일컬음) 

참고로 작년 대한상공회의소의 ‘역동적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벤처기업 투자 금액은 2조 원에서 4조 원으로 100% 늘었지만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5년차 생존율은 29%로 OECD 국가 평균 41%보다 10% 포인트나 낮다.

실패는 사실 무서운 것이다.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나는 실패를 낭만화하는 것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만큼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본다. 우리는 가볍게 실패할 수 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시도하고 하다 안 되면 말지 하는 식으로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는 영양가가 별로 없다. 가벼운 실패로부터의 배움이나 혁신은 그만큼 가벼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어떤 것도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 진중함이 필요하다. 여기서 ‘함부로’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실패로 얻는 경험치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실패가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의 창업 열기와 실패 담론이 간과하고 있는 현실은 청년 창업이 점점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는 취업도 어렵고 정부나 기성세대가 창업에 도전하라니 빚까지 영끌해 창업했다 실패해 재기 불능이 되는 청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부동산·주식 등 엄청난 자산 증식으로 아무거나 아무 때나 창업할 수 있는 청년들이 있다.

한쪽에서는 그야말로 성장의 과정이 되어야 할 실패가 끝이 되어 버리고, 다른 쪽에서는 배움이나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벼운 실패들이 양산되고 있다. 실패가 개인이나 기업의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그 엄중함을 직시하지 않는 한, 창업과 혁신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부유할 것이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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