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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의 세계문학…자본주의 정치문화에 맞서다
이산의 세계문학…자본주의 정치문화에 맞서다
  • 고명철
  • 승인 2022.06.1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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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문학의 정치적 상상력이 식민주의에 균열을 야기
연대와 문학적 실천 차원에서 생산적 물음 제기

팬데믹 시대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목도하면서 피부에 실감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및 문화경제적 현상과 매우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다. 개별 국가의 방역만으로는 팬데믹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없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전 세계에 미치는 정치경제적 파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일상에서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평온한 일상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산(diaspora)과 연관된 문제들이 한층 주목되고 있다. 

 

제11회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 ‘이산의 세계문학’이 지난달 20일부터 이틀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국제회의실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열렸다. 사진=김재용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과)

그래서 제11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약칭 AALA문학포럼, 2022년 5월 20일∼21일)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번 AALA문학포럼의 주제인 ‘이산의 세계문학’이 함의하듯,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가 지닌 이산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문학적 쟁점과 성취에 대한 논의를 통해 구미중심의 세계문학으로 온전히 이해되지 않거나 심지어 곡해되고 있는 이산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지금까지 진행 중인 인도의 이산의 현실을 검토하면서 ‘인도의 이산 문학’과 연관된 주요 쟁점을 짚어준 마카란드 파란자페 인도 네루대 교수의 논의, 그리고 그 대표적 작가인 살만 루시디의 최근작 키호테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른바 감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에 초점을 맞춘 손석주 동아대 교수(영미학과)의 논의는, 인도의 이산 문학이 제국의 안팎에서 제국의 정치문화적 식민주의에 어떻게 균열을 내고 있는지에 대한 문학의 정치적 상상력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라틴아메리카의 이산 문학으로서 아리엘 도르프만의 문학세계를 심도 있게 논의한 길다 이바세바 페레즈 칠레 카톨릭대 교수와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의 발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경우 이산자의 가족사가 그렇듯 도르프만 개인의 생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경계에서 이산의 지식인이 갖는 ‘환멸과 매혹’이 제국과의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이른바 ‘장기 1960년대’의 전 지구적 역사의 시계(視界) 속에서 서구의 68혁명에 수렴되지 않는 그의 이산 문학의 진면모다.

 

자본주의 제국과 팽팽한 긴장 관계

여기서, 이들 이산 문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인 미국에서의 이산 문학은 자칫 미국 중심의 문화제국의 논리와 그 시장 구조에 동화된 채 제국의 문화상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인데도 불구하고 루시디와 도르프만의 이산 문학이 보여주듯, 그들의 이산 문학은 제국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국의 내부에서 그 정치문화 논리에 대해 길항(拮抗)하는, 그래서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내파(內破, implosssive)의 정치적 상상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치적 상상력은 그 구체적 실현 양상이 다를 뿐이지, 아프리카의 이산 문학 현장에서 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프랜시스 니암조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교수의 발표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니암조의 발표에서 인상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이산을 논의하면서 그것이 아프리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궁리해야 할 ‘유동적 불완전성’의 측면에서 넓고 깊게 성찰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 인종, 종교, 젠더, 공간, 계층, 연령 등속에서 만들어지는 위계질서의 부정이 ‘유동적 불완전성’이 지닌 이산의 정치문화적 상상력, 즉 “유동적인 아프리카의 상호관련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신선한 상상력”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의 구체적 사례로서, 아프리카 문학 연구자 이석호 카이스트 교수(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는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작 구르나의 작품 세계를 인도양의 유구한 해양문명사의 맥락으로 설명한다.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와 인도양이 갖는 혼종적 공간은 구르나의 아프리카 이산 문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을 이석호는 힘주어 강조한다. 

끝으로 이번 AALA문학 포럼에서 기억해두고 싶은 게 있다. 캐나다에서 이산의 삶을 살고 있는 로힝야 시인 마이유 알리를 화상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담담히 들려주었다. 그의 목소리와 시는 미얀마에서 로힝야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그리고 이산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의 상처와 고통을. 이번 AALA문학 포럼은 비서구의 ‘이산 문학’이 서로 별개의 차원을 넘어 연대의 차원에서 어떠한 문학적 실천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생산적 물음을 던져준다.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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