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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학술지 인용 ‘뻥튀기’ 잡았다
부실 학술지 인용 ‘뻥튀기’ 잡았다
  • 강일구
  • 승인 2022.06.07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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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숭실대·KISTI 공동연구팀, 출판사 인용 카르텔 밝혀
최대 1천 배 인용 부풀려…자기 인용률 20% 달해

 

연구팀은 부실 학술지들의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임팩트 팩터와 부실 학술지의 자기 인용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했다. 저널의 영향력이 클수록, 자기 인용 수준이 낮을수록 정상적 학술지에 가깝다. ※출처=「Disturbance of questionable publishing to academia」

특정 부실 학술지는 정상 학술지보다 최대 1천 배까지 인용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적 학술지의 자기 인용률이 7%인데 비해 부실 학술지의 자기 인용률은 20%에 달했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물리학과)와 유택호 박사(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 윤진혁 숭실대 교수(AI융합학부), 한국과학기술정보원 박진서·이준영 박사 공동연구팀은 4천만 건의 학술논문을 분석해 출판사 내부의 조직적 인용 카르텔의 실태를 최근 밝혀냈다.

공동 연구팀은 부실 학술지들이 자기 인용을 통해 의도적으로 인용 지수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이번에 확인한 부실 학술지의 수는 총 766개였으며, 국내 부실 학술지는 없었다. 또한, 부실 학술지의 전체 인용 중 20%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었다. 유택호 박사는 “보통은 학술지 단위로 논문의 자기 인용을 단속하며 자기 인용이 높을 경우 패널티를 준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부실 학술지들이 개인 단위가 아니라 ‘그룹 단위(출판사)’로 묶여있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출판사의 불균형한 생태계를 고려해 자기 인용을 확인하는 지표를 만들었다. 이 지표로 학술지에서 출판사로 얼마나 자기 인용을 만들어내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부실 학술지가 인용을 부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윤진혁 교수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는 연구자들의 활용이 높기에 자기 인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실 학술지의 자기 인용률이 대형 출판사 학술지의 자기 인용률보다 높게 나온 것은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영향력이 낮은 몇몇 부실 학술지 중에는 정상치보다 최대 1천 배 인용을 부풀리는 곳도 있었다. 윤 교수는 “인용 부풀리기는 학술지 수준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출판사 수준에서는 자기 인용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음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출판사의 부실 학술지 인용 문제만이 아니라, 논문 인용과 논문 제출 횟수 등을 통해 부실 학술지를 활용하는 연구자들의 특성 또한 연구팀은 살펴보았다. 우수 학자를 편집장으로 채용하는 것처럼 연구자들이 부실 학술지의 유인에 걸려든 것인지, 연구자들이 빠른 게재를 위해 고의로 부실 학술지를 활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간접적으로 파악했다. 윤 교수는 “부실 학술지에 논문을 냈던 연구자라도, 대개는 일반 학술지에 더 많은 논문을 게재했다”라며 “평균적으로 1~2번은 실수로 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부실 학술지만을 활용해 자신의 경력을 쌓고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출판사 중심 검증도 이뤄져야”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엘스비어의 논문 데이터베이스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된 4천857만여 논문과 비올(Beall) 리스트의 2만163개 학술지의 ISSN번호를 비교해 부실 학술지를 선별했고 이후 부실 학술지에 등록된 논문들의 인용 정보를 추출해 자기인용 패턴을 분석했다. 학술지의 대조군을 얻기 위해 선별된 부실 학술지와 스코퍼스에서 가장 비슷한 위치에 있는 정상적 학술지 목록 또한 만들었다. 부실 학술지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학술지나 출판사의 마케팅이나 방침에 따라 약탈적이 되거나 정상적으로 변할 수 있다. 부실 학술지 선별을 위해 연구팀이 비올리스트를 활용한 것 또한 여기에 부실 학회 목록과 학술지가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학술지와 출판사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집단 안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 스펙트럼에서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나빠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리스트를 공개하면 불필요한 피해나 잘못된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유 박사는 “학술지를 넘어 출판사를 중심으로 검증과 분석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라며 “현재는 부실 학술지의 국가별 출판 특성을 분석하는 후속 연구 또한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운영하는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SAFE)’을 통해 연구자에게 부실 학술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팀의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인포메트릭스』에 최근 호에 게재됐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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