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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욋돈에 저당잡힌 대학의 암울한 미래
가욋돈에 저당잡힌 대학의 암울한 미래
  • 교수신문
  • 승인 2001.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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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계획 유감
지승종 / 경상대·사회학

지금 대학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 바 '발전계획' 소동은 따지고 보면 IMF가 낳은 일종의 사생아에 해당한다. 이름만 '발전계획'으로 둔갑한 것일 뿐, 기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다. 왜 대학에 대해 유독 '구조조정'이란 차가운 말 대신 '발전'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반발과 반대의 명분을 줄이기 위한 기만적 어휘 선택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교수들은 '교육발전 5개년 계획'과 '두뇌한국 21'에 반대했고, 이제는 '국립대학발전계획'과 소속 대학에서 만드는 '발전계획'에도 반대하고 있다.

교수들이 정녕 교육과 대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두뇌' 없는 집단은 아닐진대, 그렇다면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대학 교수는 그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 집단이며, 명예를 중시하는 강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다. 유교 사회의 전통이 일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분위기가 짙다. 그리하여 그 흔한 서명 운동에 참여하는 것조차 결정에 이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이 교수 집단의 한 특성이다. 그러던 교수들이 이제는 단식 농성과 가두 시위를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노조 결성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방향이 잘못 설정된 대학정책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현정부의 특징 중 하나로 된 지식인에 대한 유례없는 격하와 푸대접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식은 돈이다'를 지향하는 이른바 '신지식인' 개념 소동은 그 자체로는 한 바탕 코미디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전통적' 지식인 집단이 입는 상처는 적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현정부 출범이래 대학 교수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니 교수들이 아무리 의견을 모으고 성명서나 의견서 등속을 내어놓아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인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 단계의 선택이 무엇이 될 것인가는 불문가지다. 반면, 현정부에서 표방해 온 '개혁'의 주체는 관료이다. 단기적 성과주의에 집착하게 되는 관료 집단의 속성은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극명히 드러나듯이 개혁을 정책실패의 연구 사례로 만들고 있다. 관료 주도의 개혁을 선택한 현정부는 그로 인해 막대한 정치적 부담을 면치 못하게 되었지만 이 또한 자업자득이다.

듣기에도 생소한 '국립대학발전계획'은 실은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의 국립대학 버전이다. 차이가 있다면 5개년 계획이 교육 관료 주도로 만들어진 데 대하여 이번에는 이른 바 '관변 학자'들을 참여시킨 위원회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점 뿐,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는 동일하다. 이 위원회에 몇 명의 국공립대학 소속 교수들이 참여하였다 해서 '국립대학발전계획'이 교수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착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변 학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매명과 출세주의에 의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염려할 것이다.

본부 기획실이 '장기발전계획조정위'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경상대학교 발전계획'은 '국립대학발전계획'의 경상대학교 실천방안에 다름 아니다. 권두에 "본 발전계획은 학내구성원의 의견수렴을 통하여 작성되었으며, 본 계획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라는 제출문을 달고 있는 이 계획안의 내용을 사전에 숙지할 수 있었던 평교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평교수가 학내구성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제출문은 사실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발전계획'의 기본 성격상 교육부에서 만든 상위 계획에 입각하여 교육부-대학으로 이어지는 행정 라인을 통해 하향식으로 작성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우리 대학의 것만은 아니다. 전국의 국립대학들이 대학의 주요 구성원인 교수들마저 배제한 채 '발전계획' 짜기에 몰두하는 진정한 이유가 교육부에서 내어놓은 '현상금'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북대와 서울대가 제출 시한까지 '발전계획'을 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북대는 이미 작년에 30여 억원의 상금을 독식하여 '타의 모범'이 된 바 있으니 올해는 기대하기 어렵고, 서울대는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하나 역시 '두뇌한국 21'로 포식한 터이다.

수년 전 학부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역시 막대한 지원금과 함께 '타의 질시'를 받은 경북 지방의 모 국립대학이 이번에도 요란한 선전을 앞세우며 치고 나오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그런데 흔히 '당근' 혹은 '미끼'로도 불리는 이 현상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종래 교육개혁우수대학 지원프로그램의 변형판이다.
지난 정권 때부터 시작된 이러한 유의 교육부의 특별 재원은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가로막는 통제 비용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실로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순응하는 각 대학에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학 운영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맹종'이라 하나 그 열매는 (딸 수만 있다면) 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로 그 열매를 거절할 처지가 못 됨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 조장과 차등 분배를 토대로 하는 분할-지배의 기제가 교묘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가 몇 년째 지속되면서 돈을 매개로 하는 교육부-대학 간의 통제 구조가 이제 정착 단계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대학들도 이를 모방하여 내부통제의 방법으로 응용하고 있으니, 곧 한국 대학의 역사에 과히 아름답지 못한 장 하나를 새로 열게 된 것인데, 이러한 통제 구조가 엄존하는 상황 하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이란 구두선에 불과하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통제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본부 보직교수들의 고충을 일정 정도 이해하는 입장에 서고 싶다. '발전계획'에 들어있는 생경하고 비현실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내용들이 어디까지나 교육부의 지원금을 목표로 하는 대학간 경쟁의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지 '진심'은 아닐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이다.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연구계획서 제출 양식에 맞추느라 마음에도 없는 내용들을 지어내 본 사람이면 그 심정을 이해할 만할 것이다. 그 동안의 우리 대학의 논의 구조로 볼 때 이 계획안이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다. 여기서 필자가 '발전계획'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발전계획'은 연구계획서와는 판이할 수밖에 없다. 연구계획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짓말을 썼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개인적 책임의 수준에서 끝나게 되겠지만, '발전계획'은 결코 농담과 기만이 될 수 없는 수만 명 학내구성원의 삶과 미래가 달려 있는 공적 문서요 공적인 약속이다. 과거에 많은 대학들이 교육개혁 지원금을 따내고자 마음에도 없는 학부제를 앞다투어 도입하였지만, 얼마간의 지원금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로 인한 교수.학생들의 고통과 갈등뿐이다. 이런 전철은 경계해야지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발전계획' 권말에 요약되어 있는 "재정지원요청사항"의 면면을 보면 이런 돈이 있어야 반드시 우리 대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도 아니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대학의 본질과 기능을 유지해 나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가욋돈 성격이 더 많다. 정말 꼭 필요한 것들이라면 남아 있는 자체 '발전기금'이라도 벌써 쓰든지 차용하든지 했을 것이다.

필자가 한 사람의 평교수로서 대학 당국에 대하여 진정 소망하고 싶은 것은 이런 지원금 등속이 아니라 대학과 학문의 본래적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낼 줄 아는 품위 있는 의연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진실로 바라건대, 대학 당국은 목전의 이해에 집착하는 근시안적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대학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역사의식과 책임윤리를 지니고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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