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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비우면 보이는 것 - 공간의 연속과 단절
[디자인 파노라마] 비우면 보이는 것 - 공간의 연속과 단절
  • 최범
  • 승인 2022.06.03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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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⑳_최범 디자인 평론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지난 10일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사진은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 본관 앞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이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지난 10일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사진은 지난 22일 오전 청와대 본관 앞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이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최고의 화제 중 하나는 청와대 개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과정 중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을 취임 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기존의 청와대가 시민의 몫이 되었다. 물론 청와대 이전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고 찬반이 엇갈렸으며,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현재로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청와대 이전이 불러올 공간적 효과를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에서 예측해보고 싶다.

 

조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와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과연 이 말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발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윤 대통령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반응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이전 대통령들도 공언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청와대 이전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 윤 대통령은 소통을 내세웠다. 소통,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의미는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섣부른 기대는 금물일지라도, 나는 윤 대통령이 말한 소통이 그 이상, 의미의 나비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러한 기대를 펼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현 청와대가 조선의 이미지에 지배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경복궁 뒤편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는 원래 경복궁 후원 터였다. 이후 조선 총독 관저, 경무대를 거쳐 현재의 청와대가 되었다. 한마디로 역사적 연원이나 공간적 배치로 볼 때 청와대는 조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한국인 대부분은 이를 너무나 자연스럽고, 온당하게까지 여기겠지만, 사실 여기에는 생각해볼 부분이 적지 않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조선과 다른 나라라는 인식을 갖는 데 방해가 된다. 조선이 대한민국의 선대 국가인 점은 맞지만, 국체와 정체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조선과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다. 민족이 같다는 사실이 국가가 같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이 펄쩍 뛸지도 모르지만, 화폐가 전부 조선시대 인물로 채워져 있고 광화문광장에 조선의 왕과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이 여전히 조선과 대한민국을 헷갈려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와대 역시 이러한 상징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경복궁 앞에는 월대를 복원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 전통을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현실 인식을 방해하면 곤란하다.

 

어떤 전통을 잇고 끊을 것인가

사실 한국 근대 서사의 기본은 상실과 회복이다.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식민지가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전통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한국은 잃어버린 전통을 회복하고 민족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전통의 회복은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전통의 어떤 회복인가’다. 모든 전통이 좋은 것도 아니고 회복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역사는 연속과 단절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연속이 없다면 역사가 아니겠지만 단절이 없어도 역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물체일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역시 무엇이 연속되고 무엇이 단절되었는가를 아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엇을 연속할 것이고 무엇을 단절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진짜 문제는 조선과 연속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조선과 주체적으로 단절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한국인의 머릿속에 조선과 대한민국이 연속되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 아닐까. 전통을 존중하는 것과 그것을 현실과 혼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부여해볼 수 있는 최대 의미는 ‘작은 천도(遷都)’의 효과가 아닐까 한다. 비록 수도 내에서의 이전이기는 하지만,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로 조선 건국을 마무리했듯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대한민국이 조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것은 조선과의 상징적 단절을 통한 대한민국의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가 되어야 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대통령의 말을 그런 의미에서 해석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공간적 단절을 통한 조선과의 의식적 단절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과거와의 타율적 단절이 아닌 우리 손에 의한 자율적 단절 말이다. 공간은 어떤 때는 연속이 아니라 단절을 통해서 더 의미를 띠기도 한다. 풍경으로서의 디자인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우면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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