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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92] 국가를 공격하고 체제를 거부하며 자유를 옹호한 니체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92] 국가를 공격하고 체제를 거부하며 자유를 옹호한 니체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5.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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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티르너
바쿠닌
엠마 골드만
크로포트킨
니체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전반에 태동한 새로운 아나키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은 주체적인 인간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지배자와 권위주의자들에게 이용될 여지가 너무나 많다. 사진=위키미디어

19세기 전반의 슈티르너와 마찬가지로 그 후반에 독일 민족주의의 성장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려는 비스마르크의 시도에 대해 반발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20세기 전반의 파시즘의 창시자라는 악명에도 국가에 대한 공격, 체제에 대한 거부, 가치에 대한 평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로 일부 아나키스트들에게 아나키스트로 간주되어 왔다. 그의 아나키즘적 견해는 유럽의 사상과 감성을 완전히 바꾸려는 그의 혁명적 시도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고 복잡했다.

니체는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아나키스트들이 기독교도처럼 나약함과 복수의 좁은 정신에서 비롯된 타락한 사회의 쇠퇴하는 계층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아나키스트들을 존경했는데 그 아나키스트란 자신의 친구인 리햐르트 바그너가 알고 있던 바쿠닌이었을 것이다. 바쿠닌의 추종자들과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파괴를 일삼았던 테러리스트들은 분명히 증오의 동기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나키즘 사상가들, 특히 고드윈, 프루동, 크로포트킨, 톨스토이는 현존하는 가치와 제도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희망과 넘쳐나는 삶의 활력에 대한 감각에 따라 움직였다.

니체는 그런 아나키스트들에게는 무관심했다. 니체가 그들의 책을 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톨스토이가 당대의 아나키스트들이 바쿠닌 같은 폭력주의자라고 오해받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한 것과 반대로, 니체는 당대의 아나키스트들이 바쿠닌 같은 파괴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바쿠닌만큼이나 니체의 방법은 실험적이다. 그의 문체는 잠언적이고, 광적이며, 아이러니컬하다. 우상 숭배적 열정에 사로잡혀 그는 의도적으로 역설적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피에 담그고 싶어 했는데, 그것은 지식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에 대한 가장 심각한 비난은 그가 나치즘의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가 생을 마칠 무렵 미치기 시작했을 때 선별적으로 그의 작품을 편집한 그의 여동생의 작품과,  그의 발언을 문맥에서 완전히 재배치한 나치 사상가들이 니체의 말을 근본적으로 왜곡하여 그를 반유대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또는 독일 민족주의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니체 옹호자들이 있다. 

니체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그가 나치즘의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또한, 나치즘은 니체의 사상을 자신들의 통치에 활용하기도 했다. 사진=위키미디어

 

겸손과 연민은 ‘노예도덕’이다

그는 독일 문화를 경멸하고 혐오했으며, 독일 민족주의에 완전히 반대했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독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동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우상이 국가였다는 것을 분명히 비판했다. 바그너와 결별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작곡가의 반유대주의 때문이라고도 한다. 니체가 비유하는 ‘금빛 짐승’은 아리안 독일인의 고도 상승을 위한 모델이 되었지만, 그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고, 심지어 인종혼합까지 권했다고도 한다. 확실히 그는 전쟁을 축하했지만 블레이크처럼 육체적 다툼이 아니라 지적 능력을 의미한 것으로 ‘피가 진리의 최악의 목격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니체의 여성에 대한 잔혹한 관점은 어떤 식으로도 변명이 될 수 없는데도 그를 숭배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프로이센 군복. 사진=위키미디어

바쿠닌처럼 니체는 전통적인 기독교가 겸손과 연민과 경건함을 강조하는 노예도덕으로서 정욕을 없애려 했기 때문에 퇴폐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바쿠닌과 달리 니체는 법이나 도덕이 자연에서 파생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자연은 전적으로 임의적이고 우발적이며  너무 무질서하여 이 세상에서 무한한 시간과 유한한 공간과 일정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고 니체는 주장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나락 위에 늘어선 밧줄 위에 서 있는 ‘생각 없는 우연’이고 이성이 아닌 의지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결정한다고 보는 니체의 역사관에는 발견될 만한 합리적 패턴이나 도덕적 목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허무주의적인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창조하고 우리 주변의 세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에서와 같이 예술에서도 그렇듯이 혼돈 속에서 인간은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니체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창조성으로 승화된 초인을 주장했다. 슈티르너처럼 그는 가치관은 신이나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가 말하는 권력에 대한 의지는 자신을 초월하고 완벽히 완성하는 ‘자유에 대한 본능’이다. 

니체의 자유는 ‘자기책임에 대한 의지’이다. 인간의 자유를 넓히는 것은 단순한 행복이나 복지에 대한 욕망에 대한 지배를 추구하는 끝없는 투쟁의 과정이다. 니체에게 이상적인 것은 완전한 자기창생과 자기결정이며, 기회를 의식적 의지로 바꾸는 ‘자발적 수레바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수레바퀴는 슈티르너가 비판한 이데올로기 수레바퀴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출생도 부도 아닌 정신으로서의 엘리트주의

니체는 평등주의자가 아니었고 귀족주의라기보다는 엘리트주의자였다. 그러나 능력은 피와 관련이 없고 노예도 반항하면 고결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지구는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위대한 영혼들에게 여전히 자유롭고 한 그의 마지막 철학은 개인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자유와 창조의 노래였다. 니체의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위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공동체에 대한 그의 경험은 그것이 개성을 무너뜨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슈티르너의 에고이스트 연합처럼, 특정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나는 개인주의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니체가 꿈꾸었으리라고 추론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 인간에 대한 니체의 관점은 획일적이라는 의미에서 평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과 사회를 새롭게 창조하는 데 있어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엠마 골드만은 초인을 믿었기 때문에 그를 약자의 증오자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초인에 대한 그의 비전은 약자와 노예의 인종을 낳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이 지적하듯 니체의 엘리트주의는 출생도 부도 아닌 정신이었다. 그 점에서 니체는 아나키스트였고, 모든 진정한 아나키스트들은 엘리트라고 골드만은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니체는 여전히 완전한 개성을 개발하고, 기존의 가치관과 사상을 타도하고, 일상생활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설적이고 웅변적으로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가장 힘든 일을 제공하는 영감으로 남았다. 세기가 바뀔 때, 니체의 개인주의는 유럽 전역의 보헤미안 및 예술계에서 많은 개종자들을 낳았다.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엠마 골드만은 초인을 믿었기에 그를 약자의 증오자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초인에 대한 그의 비전은 약자와 노예의 인종을 낳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이 지적하듯 니체의 엘리트주의는 출생도 부도 아닌 정신이었다. 사진=위키미디어

크로포트킨은 슈티르너와 마찬가지로 니체가 너무 쾌락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아나키즘 사상가 중 한 명인 엠마 골드만은 니체를 가족으로 맞이했고 그의 ‘초인 정신’과 자유로운 개인의 비전에 감탄했다. 루돌프 로커는 그의 정치권력과 문화에 대한 분석에 감탄했다. 허버트 리드는 니체가 진화에 있어서 개인의 중요성을 지적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했다. 니체의 영향은 아나키스트 지식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카탈루니아 생디칼리스트인 살바도르 세귀를 비롯한 운동가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슈티르너와 함께 니체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전반에 태동한 새로운 현대 아나키스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평등을 거부한 초인주의의 니체보다는 개인주의자로 철저했던 슈티르너에 더 호감이 간다. 나는 니체가 반민주주의라는 점을 비판한 책을 두 번이나 냈다. 그의 초인사상에는 비윤리적 요소도 있다. 그것은 단순히 주체적인 인간을 옹호하는 사상이 아니라 지배자와 권위주의자들에게 이용될 여지가 너무나 많은 위험한 사상이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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