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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舌禍)가 아닌 설화(說花)
설화(舌禍)가 아닌 설화(說花)
  • 김병희
  • 승인 2022.05.23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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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나쁜 말버릇이 유행하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거친 언어가 난무하는 듯하다. 정치권을 비롯해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보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젊은이들은 ‘개신남’이나 ‘개쩐다’처럼 ‘개’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접두어로 쓴다.

대학교수 사회에서도 반대파를 향해 거친 막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누리꾼의 댓글을 보면 말을 골라 쓰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경우도 많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진영 논리에 따라 무조건 배설한 험한 말들이다. 대중 선동에 필요한 수사법일지 모르지만 거친 입놀림이라는 점에서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말을 잘못 내뱉어 설화(舌禍)를 겪는 사례도 많다.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문제 같은 흠결이 제기되면 해명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천 냥 빚을 얻는 경우이다. 말 한마디 잘 못한 것이 뭐 그리 잘못이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인일수록 말실수에 대한 책임을 더욱 통렬하게 져야 한다. 모두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내뱉은 데서 비롯된 설화이다.

직장이나 군대 같은 조직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폭력도 심각한 문제다. 집이나 학교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언어폭력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다. 어른이 무심코 내뱉은 말 때문에 아이는 평생 동안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언어폭력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받아들이는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가 느끼는 상처에 대한 깊이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 오직 당하는 사람만이 안다. 언어폭력은 신체폭력 이상으로 엄청난 고통을 남기며, 회복에 필요한 시간은 신체폭력으로 인한 회복기보다 훨씬 오랜 걸린다고 한다. 언어폭력의 피해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고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도 스스로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말도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다시 말해서,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하이데거) 또는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비트겐슈타인) 같은 명언은 말이 곧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현자 칼릴 지브란도 이런 잠언을 남겼다. “친구를 만났을 때 거기가 길이든 시장 바닥이든, 당신의 정신이 입술을 움직이게 하고, 당신의 정신이 혀를 지배하게 하라.” 

교수들 역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천 냥 빚을 얻을 말을 일상생활에서 종종 하는 것 같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를 쉽게 내뱉거나 육두문자를 써가며 상대를 비방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 퍽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말 한번 잘못해서 원수지간이 되는가 하면, 그 일로 인해 평생토록 만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한번 심하게 마음을 베이면 그만큼 그 상처를 치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터다.

우리는 사실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착각하며 살지만, 알고 보면 말 한마디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한없이 약한 존재들이다. 순간적인 말 한마디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될 수도 있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예리한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말의 힘과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1초만 생각한 다음 말을 내뱉는 신중함이 절실하다. 설화(舌禍)로 구설수에 오르지 말고 바야흐로 말의 꽃(說花)을 피워야 할 때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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