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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소수'를 위한 변명
[만파식적] '소수'를 위한 변명
  • 교수신문
  • 승인 2001.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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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09 18:56:40
외국어대에 봉직한지 22년, 법대학장을 맡은 지 2년째이다. 여자가 법대교수가 되는 것 만해도 과분한 시대에 취직한 데다 이제는 학장까지 맡고 있으니 행운아인 셈이다. 내 명함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이상하게 여겨지는가 보다.

“여자가 어떻게 코흘리개 초등학생도 아닌 남자대학생을 가르칠 수 있느냐”던 채용거절의 변이 생각났다. 교수로 취직하는 데는 남자라는 조건이 박사학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절감했다. 강사로 전전하던 어느 날 서울시내 명문대학인 외대에서 채용통지를 받고 나서도 혹시 여자라는 이유로 뒤집혀지지 않을까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여성신문’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내 법과대학 중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를 제외하고 여교수가 모두 네 명이었다고 했다. 그 중 한 명인 나조차 법대 여교수가 그렇게 적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었다.

교수직을 간신히 얻게 된 나에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직을 맡을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제일 먼저 맡은 보직은 법학과 야간학과장이었다. 학교로부터 내 능력을 인정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처음 맡은 보직이 야간업무였지만 싫지 않았다.

정치적 이슈와 학내문제가 겹쳐진 학생운동이 아주 격렬한 때여서 학과장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동료교수의 위로도 있었다. 개인적 사정도 만만치 않던 때였다. 세 살 미만의 연년생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니자니 저녁까지 집을 비운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야간학과장은 남자교수들도 꺼려하는 보직이라 사양할 처지도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간학과장을 맡은 지 한 달도 안되어서 일이 터졌다. 법학과학생들이 야간학과장실 바로 앞 강의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거였다. 농성학생들은 주간학생이 대다수였건만 위치관계로 야간법학과 주관사항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총장이며 학장들이 야간학과장실에 들려 상황을 묻곤 하니 낮에도 근무할 수 밖에 없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니 함께 대기하고 있던 주간학과장이 내게 업무를 인계하고 퇴근하였다. 야간근무 마감시간인 열 시가 되었건만 나는 인계해 넘길 사람이 없어 그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밤 열 두시 통금시간 직전에 퇴근하곤 했다. 나흘째 되는 날 밤 열 두 시가 되어갈 무렵 학생 하나가 급보를 가져왔다. 학생 열 댓 명이 기진해 쓰러져 있으니 빨리 응급차를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들을 응급차에 태워 보내고 나니 통금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게 할 수는 없다 싶어 나는 바리케이트를 넘어 농성장으로 잡입해 들어갔다.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나의 진심을 전달하려 노력한 덕분에, 학생들은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겠다는 데에 합의하고 그 날밤 두 시에 해산했다. 내게 맡겨주면 학교측과 법대발전을 위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이 약간 도움이 되었나 보았다. 결국 야간법학과는 그 다음 해에 주간으로 통합되었으니 내가 마지막 야간학과장이 된 셈이었다.

여교수로서 법학과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몇 가지 소신을 가졌던 것이 힘이 되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집안 일을 이유로 학교 일을 소홀히 하지 말 것, 여교수들이 서로 어려움을 공유할 것, 개인적으로 겪는 성차별에 절망하지 말고 여성문제로서 크게 풀어 나갈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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