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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나쁜 여자
우리 안의 나쁜 여자
  • 최승우
  • 승인 2022.05.18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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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외 4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84쪽

가부장적 가치관이 만들어낸 ‘나쁜 여자’,
그 허상을 뛰어넘는 솔직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마주하다

미투 운동은 지난 몇 년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이 오히려 일부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유발되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을 유혹자, 거짓말쟁이, 행실 나쁜 여자, 남자의 인생을 망친 여자 등 ‘나쁜 여자’로 몰고 가려는 미묘한 심리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유혹자 이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나쁜 여자’ 이미지는 3,000년의 인류 문명사 동안 여러 방식을 통해 반복 재생산되었으며 현재에도 매체와 화자를 바꿔가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이 책은 신화, 성서,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탄생, 발전한 ‘나쁜 여자’들을 살펴본다.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는 그리스 신화 속 메데이아, 다섯 명의 남편을 두었던 사마리아 여자, 사랑의 이름으로 남자를 이기적으로 조종하는 『위대한 유산』의 에스텔라, 남편보다 더 못된 심보를 가진 『흥부전』의 놀부 마누라, 정이현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속물적이고 영악한 계산주의자 유리 등 다양한 ‘나쁜 여자’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정의되고 있다. 과연 그녀들은 정말 나쁜 여자들이었을까?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그녀들의 열정과 고군분투가 과연 그렇게 나쁘게만 평가되어야 했을까? 이 책에서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그녀들을 바라본다.

문화와 예술 각 분야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관해 탐구해온 저자들은 나쁜 여자의 등장과 발전이 가부장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예술 속에 등장하는 나쁜 여자들은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 아내, 정부, 딸, 창녀, 왕비, 하녀, 마녀, 계모 등의 정체성은 남성과의 관계, 남성 중심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 것이다. 그리고 가부장적 가치관은 그녀들이 남성이 정한 규칙을 어겼을 경우 그녀들을 ‘나쁜 여자’로 규정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나쁜 여자’ 만들기를 주도했던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의 이미지가 공정하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나쁜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걷어내면서 새롭고 강력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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