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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전통적인 좌우 정당체제 무너지는 프랑스
[글로컬 오디세이] 전통적인 좌우 정당체제 무너지는 프랑스
  • 윤기석
  • 승인 2022.05.17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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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윤기석 한국외대 EU 연구소 자문위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위키백과

지난 4월 24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은 에마뉘엘 마크롱이 과반수 득표를 얻어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였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결선투표에서 58.53%를 얻었다. 1차 투표에서 강세를 보였던 국민연합(RN) 마린 르펜은 41.41%를 얻는 데에 그쳤다. 마크롱이 비록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였으나 이번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린 르펜의 강세와 멜랑숑 극좌 후보의 돌풍이었다. 1차 투표의 경우 마크롱이 27.85%, 마린 르펜은 23.15%, 멜랑숑은 21.95%를 얻어 세 후보 간의 표 차이는 그야말로 오차 범위 내에서의 초박빙이었다. 게다가 현직을 수성하려는 마크롱과 도전하는 마린 르펜과의 격전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백중지세로 예측이 불가능한 경쟁이었다. 지난 2017년 선거에서 마크롱이 마린 르펜에 대해 33.9% 큰 차이로 낙승하였으나 이번에는 오차의 범위가 많이 좁혀져 17.12% 표 차이로 승리하였다. 

토마 피케티는 최근 변화되고 있는 프랑스 유권자의 지지 정당의 변화를 네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사회당의 정책에 실망한 전통적 좌파 지지자들은 사회당이 발전시키지 못한 재분배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세력을 키우는 급진 좌파 정당 ‘불복종’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당을 잃은 유권자들은 기존의 좌우 구분을 벗어나 새로운 정당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유권자들이 “국제주의, 토착주의, 평등주의, 불평등주의” 등의 사회정치적 이슈에 따라 사분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요인이 2017년 대선의 1차 투표에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가설이 유효하다면 이번 선거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균열 구조가 작동되었을까?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는 위기에서 정부의 보건방역 정책에 대해 호불호가 반영된 선거였다. 방역정책을 일방으로 독주했던 마크롱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불만,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가 높아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고물가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나타난 에너지 수급 문제, 유럽연합(EU)에서의 프랑스의 역할,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연금법 개정을 통한 연금 수령 나이 재조정 등과 같은 이슈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였다.

마크롱은 연금 수령 연령을 65세부터 하겠다고 제안하였으며, 마리 르펜은 60세부터 받게 하겠다는 다소 급진적인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후보 지지자 세대별 편차도 이번 선거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청년층에서는 멜랑숑이, 중장년층에서는 마린 르펜이, 장년층과 노령 층에서는 마크롱이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렇지만 세 후보 모두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얻지는 못하였다. 마크롱과 르펜은 오차 범위 내에서 다투는 초 접전 양상이었고, 멜랑숑은 지난 선거 보다 높은 21.95%의 지지를 받았다. 또 다른 주요 특징은 전통적인 중도좌파 사회당과 중도우파 정당이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통적인 좌우 정당체계가 점점 균열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마린 르펜은 5년 후에 치러질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을까? 이제 겨우 선거가 끝난 상태에서 다음 선거 결과를 예단 하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결과가 썩 낙관적이지만은 않을것 같다. 비록 마린 르펜이 이번 선거에서 과거와 다른 변화된 후보 공약으로 극우정당에서 국가주의 정당으로 탈바꿈 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원주의를 존중하고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프랑스 시민사회에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과연 마린 르펜의 정당정책에 쉽게 호응할지는 미지수이다. “걸러내고 배제한다”는 결선투표제의 속성상 급격한 정치 이념이나 사회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은 이 선거제 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설령 선전한다고 하더라도 만년 2등에 만족해야만 되는 운명이다. 

프랑스 하원 선거 결선투표가 6월 12일, 19일에 치러진다, 대선 후 1개월 후에 치러질 하원 선거는 대통령 3차 선거(3eme tour)라고 지칭한다. 예컨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곧 치러질 하원 선거에서 의회 과반 수 의석을 얻는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하원 선거에서 마크롱 ‘전진하는 공화국’당이 의회 과반 수 의석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도 각 정당들의 연대와 정책연합이 빠르게 움직여지고 있다. 극좌 정당 멜랑숑은 이미 지난주에 녹색당과 연대하여 정책연합과 연합공천을 발표하였다. 의회 의석 과반수를 얻어 마크롱의 독주를 견제하는 여소야대 동거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의지이다. 6월 하원선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여전히 불확실한 이유이다. 프랑스 대선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중의 하나는 ‘결선투표제’는 다원주의 정치문화를 배양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와 풍토를 고려할 때 도입을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윤기석 한국외대 EU 연구소 자문위원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파리 팡테옹 소르본(Paris I)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 국가정책연구소 교수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화안보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프랑스 결선투표제와 정당체제 양극화 현상 분석에 관한 연구(2020),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와 정당체계 재편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2017)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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