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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가 만능?...‘자본·국가권력’ 비판의식 부족하다
자유주의가 만능?...‘자본·국가권력’ 비판의식 부족하다
  • 천정환
  • 승인 2022.05.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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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하)_『지식의 헌법』 | 조너선 라우시 지음 |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432쪽

사상·말의 자유시장에서 빅테크 기업은 공정한가
자유언론·자유과학 위한 한국판 ‘지식의 헌법’ 기대

이 책을 보면 미국에서 ‘Black Lives Matter’를 위시한 반인종주의 운동과, 페미니즘과 미투운동의 후과로 얼마나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는지 알 수 있다. 말꼬투리를 붙잡히거나 사소한(?) 실수를 범한 ‘인종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들이 대학이나 직장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당하고 쫓겨나기까지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리하여, ‘정치적 올바름’의 칼이 얼마나 광범위한 ‘침묵의 나선’, 즉 자기검열 현상을 불러왔는지? 저자는 그와 같은 방식의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의 기치를 든 사람들이,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의 전체)을 가리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어 결국 공론장과 대학을 병들게 한다고 집요하고 열정적으로 주장한다. 

 

비판이 주로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에 향해 있어, 저자가 기존체제의 보수적 옹호자가 아닌가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이다. 성소수자이며 예일대를 나온 백인 남성인 저자 자신이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에서 수많은 혐오주의자들과 실제로 치열하게 싸워온 경험을 들며, “역설적으로, 취소는 중도 및 좌파 진영에서 반대 의견을 겁박했지만 우파 진영의 트롤러들한테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으며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은 트럼프의 '좋아요' 숫자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과연 일상적 폭력과 구조적 차별을 당하는 유색인이나 여성들이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지, 이런 주장이 오히려 ‘우파’와 ‘보수’에 의해 악용되지 않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에 역이용 당한 정치적 올바름

자유주의의 원리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싸움의 도구와 정신을 제공한다. 싸움이 적어도 말로만 이뤄진다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인간성’의 어떤 보루가 되어 인간이 만들어 현실에 적용한 어떤 다른 ‘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류가 적은 듯하다. 자유주의는 생각이 다르거나 사상이 달랐다고 사람을 막 가두고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언제나 깊고도 광범위한 딜레마와 위선을 동반한다. 자유주의의 명제와 혜택 바깥에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이 수억에서 수천만 명이 있고, 자유주의는 폭력과 자본의 힘을 순진하게 다룬다. 그래서 조너선 라우시의 책을 ‘권장도서 목록’에는 올리고 싶으면서도 두 유보조항을 달고자 한다. 

저자는 ‘사상의 시장’, ‘말의 시장’을 움직이는 음험하고 거대한 힘, 즉 자본과 국가권력의 간섭에 대한 문제의식이 놀라울만치 없다. ‘사상의 시장’, ‘말의 시장’도 자유시장이 아니지 않나? 이 책을 보면 마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등의 빅테크 기업들이 마치 불편부당한 공론장의 행위자처럼 묘사된다. 또한 CIA를 요한복음 8장 32절(“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쓴 대목도 있다. 저자의 진보/보수, 좌파/우파에 대한 위상 감각도 믿을 수 없다. 누가 미국의 ‘좌파’며 ‘진보’인가? 단지 미국식 기준일 뿐이며, 저자의 입각점 자체가 이미 주어져 있는 미국의 주류 언론과 기성체제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편향이 아닌가 싶다.  

 

현대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 로고들. 과연 빅테크 기업들은 불편부당할까? 이미지=위키백과

그럼에도 공론장 참여자들의 용기와 제도적 보장을 통해서 ‘자유과학’과 ‘자유언론’을 더 발전시켜 나아가자는 저자의 제안에는 동의할 수 있다. 자유주의를 더 급진화하여 언론 민주주의와 공론장의 더 나은 모델을 만들고, 학문장에서 더 나은 심사제도와 더 나은 유통 방식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다. 

그외에도 책은 유익하다. 한국에서의 ‘취소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해왔는지? 또 여전히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와 정상성과 가부장제가 강하게 시민성의 토대를 이루는 이 나라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새삼 많은 토론거리를 일깨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본다. 만약 이런 책의 한국판을 쓴다면 거기 누가 주요 등장인물이며 구성은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는 제임슨 매디슨 같은 민주주의자 조상과 그런 헌법이 없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4.19로부터? 그리고 누구를 등장시켜야 하나? 1부에는 고전적인(?) 언론자유(?)의 수호자 ‘조중동’과 강용석 같은 새로운 행위자들이, 2부에는 김어준과 나꼼수, 그리고 유시민과 깨시민들, 학계의 문제를 다룰 3부에는 황우석, 조국 전 법무장관과 그 가족들, 또 김건희 씨와 그 동료들 등이 등장해야 되지 않겠나? 누가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꽤 장대한 서사물이 되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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