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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법에서 나온다…‘인륜성·시민사회’로 해방
자유는 법에서 나온다…‘인륜성·시민사회’로 해방
  • 김재호
  • 승인 2022.05.19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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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는 사회적 인정의 실현 과정에 존재
공적 시민과 사적 개인 사이의 결합 가능성 모색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23일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서양철학)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5강은 이진우 포항공대 명예교수(철학)의 「인간 자유의 본질」, 제6강은 서병훈 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의 「자유, 다원주의, 상대주의」, 제7강은 김현섭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자유와 정의: 자유주의적 정의론」, 제8강은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실존과 자유」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오늘의 강연 주제는 헤겔(G. W. F. Hegel, 1770~1831)의 자유론이다. 헤겔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적 요소들 못지않게 자유주의 비판을 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한 이른바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 논쟁에서 공동체주의 철학을 옹호하는 여러 사상가는 헤겔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현대적으로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헤겔이 고전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비슷하게 현대 자유주의의 한계를 비판한다.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헤겔의 자유론은 인륜성에서 절정에 달한다고 밝혔다. 인륜적 제도는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형성된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헤겔은 그의 자유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법철학』(1821)에서 “의지의 자유”를 “의지의 개념 혹은 그 실체”로 본다. 그런데 자유로운 의지는 법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법체계에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의 토대”다. 그러니까 자유로운 의지 개념은 “법의 실체”이고 다양한 법체계는 자유로운 의지가 실현된 자유의 왕국이다.

자유 개념의 전개 과정에서 절정은 인륜성이다. 인륜성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참다운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륜성은 영어로는 ‘윤리적 생활’, ‘객관적 윤리’, ‘구체적 윤리’ 등으로 번역되는 헤겔 정치철학의 핵심 용어이다. 헤겔이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인정의 실현 과정에 존재한다. 정신은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객관화 해야 하며, 이렇게 정신이 객관화된 사회적/문화적 세계에서 자신의 본성[개념]에 적합한 상황에 있음을 성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한에서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 언급될 수 있다. 자유 의지 개념을 구현한 사회적 제도들은 인륜적 제도나 질서, 즉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륜적인 것”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런 인륜적 제도들은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계기”를 지니는 실체다. 따라서 주관적 계기와 객관적 제도의 통일이 인륜성의 가장 기본적 의미라 할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근대 사회에서 형성된 세 가지 핵심적 인륜적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제도가 요구하는 규범들과 법칙들을 준수함으로써 한갓 이기적이거나 자연적인 충동을 넘어 서로를 상호 인정하는 자유로운 존재로 해방된다. 인륜적 관계를 매개로 해 이루어지는 상호 주관적인 인정 과정을 통해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는 통찰을 표현하기 위해 헤겔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 개념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헤겔의 자유 이론을 “사회적 자유”로 명명하자는 제안이 최근에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헤겔의 『법철학』에서 시민사회는 가족과 국가와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독자적인 삶의 영역으로 등장한다. 그는 시민사회를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한다. “A. 개인의 노동을 통한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의 노동과 욕망의 충족을 통한 욕구의 매개와 개인의 만족-욕구의 체계. B. 욕구의 체계 속에 포함된 자유의 보편자의 현실성, 사법(司法)을 통한 소유의 보호. C. 이들 체계 속에 상존하는 우연성에 대한 배려와 공통적인 이익으로서의 특수 이익을 경찰 행정과 직업단체를 통해 관리하는 것.”

시민사회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보편적인 인정과 타당성을 지닌다. 근대 세계의 형성을 정신사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은 기독교라고 헤겔은 이해한다. 

사람들은 부르주아적 시민사회에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헤겔은 욕구 체계로서의 시민사회를 “전면적인 의존성의 체계”로 규정한다.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는 노동 소외와 부와 빈곤의 극심한 대립을 산출할 수밖에 없는 불충분한 사회적 제도이긴 해도, 그 제도는 해방적 측면을 지닌다. 시장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노동 체계 내에서 성공하기 위해 각자의 능력을 향상하려는 “힘겨운 노동”을 통해 각 개인은 능동적인 주체로 “도야(Bildung)”될 기회를 지니게 된다. 헤겔은 시민사회를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보장하는 자유로운 인륜적 세계의 필수적 한 영역이자 사회적 제도의 하나로 간주한다.

헤겔의 시민사회론은 단순히 “욕구의 체계”로 환원되지 않은 다층적 구조를 지닌다. 직업단체/조합과 경찰 행정이 시민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제도들이다. 특히 조합/직업단체와 같은 시민사회 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결사체들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배타적으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제도적 영역인 욕구의 체계와 달리 공동의 목적을 매개로 하여 이기적 개인들이 서로 협동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을 창출한다.

헤겔은 직업단체를 “제2의 가족”에 비유한다. 직업단체가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은 첫째, 직업단체는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개인에게 그 자신의 특수한 이해 관심의 실현을 통한 사회적 인정을 획득할 영역을 보장한다. 둘째, 직업단체는 시민사회 내의 연대 공동체로서 시장사회의 파괴적 성격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직업단체의 구성원들은 빈곤으로 인해 그 단체로부터 도움이 필요할 때 특정 개인의 동정심이나 자선심과 같은 “우연적인 요소”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능력과 협력을 통해서 그동안 단체에 이바지한 공로가 있기에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따라서 단체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독립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비굴함”을 느끼지 않는다.

넷째, 직업단체는 시민사회 내에서 권리와 복지의 통합을 이루는 영역으로 등장한다. 직업단체를 통해 수행되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 속에서 “특수한 복지가 권리로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단체에서 부와 빈곤의 극단적 대립이 산출하는 인륜성의 상실이 회복된다. 다섯째, 직업단체는 시민사회 내에서 시민사회와 국가를 매개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제2의 가족으로서의 직업단체가 “시민사회 속에서 형성된 국가의 인륜적 뿌리”라고 강조한다.

헤겔의 국가론은 사회 내에 그 어떤 분화를 허용하지 않는 획일적인 전체주의 국가와 무관하다. 나아가 헤겔의 근대 국가는 고대의 공화주의적 국가와 달리 내적으로 다양성과 사회의 분화를 허용하는 다원적 국가다. 헤겔의 국가 이론은 서구 근대에 대한 장 자크 루소의 항의, 즉 근대 문명 비판과의 대화라는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헤겔은 공적 시민과 사적 개인 사이를 양자택일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결합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결부되어 진행되는 노동의 분업, 산업 및 상업의 발달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이해관계의 다양화로 특징 지워지는 근대 세계에서 고대 아테네 및 로마 공화정의 정치적 자유의 이념이 어떻게 재건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그 모색의 결과는 바로 고대적 공화주의와 근대적 자유주의의 변증법적 종합으로서의 인륜성 철학이었다. 헤겔은 정치적 사회에 대한 참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이 개인의 사적인 이해나 권리 주장보다 앞선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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