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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돌아본 2005년: 분야별 주목받은 학술서들
책으로 돌아본 2005년: 분야별 주목받은 학술서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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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형성·박정희시대 탐구 … 원전연구도 활기

올 한해 학술출판은 인문, 역사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 분야에서는 예년처럼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으며, 원전에 대한 연구, 대상에 대한 실증성의 정도를 최고로 끌어올린 연구물들이 주목을 끌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한국 현실의 문제를 해부하고 진단하는 책들이 주목을 끌었고,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지류를 이뤘다. 과학 분야에서는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해외 명저들이 소개되었고, 한국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과학사에 대한 탐구로 나타났다.

이슈를 만들어낸 경우는 예년에 비해 드물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도덕교육의 파시즘’(길 刊)으로 윤리교육학계와 철학계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을 뿐이다.

백민정 박사의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태학사 刊)은 맹자사상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파고들었으나, “맹자의 철학적 의도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는 데 그쳤다. 황의동 충남대 교수의 ‘우계학파 연구’(서광사 刊)는 퇴계와 율곡의 양대산맥에 눌려서 주목받지 못했던 우계 성혼의 존재를 주장했으나, 후속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허수열 충남대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은행나무 刊)이 ‘공포탄’에 그쳤다는 점. 이 책은 1920~30년대를 바라보는 ‘개발론적’ 관점이 어떤 점에서 ‘허구’인지를 조목조목 비판한 것인데, 반론자가 전혀 없었다.

올해에는 착실하게 근거를 쌓아 올려가며 차분한 논지를 전개하는 책들이 돋보였다. 10월에 나온 김영식 서울대 교수의 ‘주희의 자연철학’(예문서원 刊)은 한국 현대주자학이 쌓아올린 한 봉우리를 보여주었고, 1월에 나온 ‘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역사비평사 刊)은 기존 연구에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핵심사료를 통해 신미양요 등을 치밀하게 복원했다. ‘우남 이승만 연구’(정병준 지음, 역사비평사 刊)는 이승만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분석, 접근 가능한 모든 자료와 분석의 여러 측면을 최대로 부각시킨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각종 전적과 지방지, 일본의 사서 등을 조사하여 재당 신라인 관련 자료를 찾아내고, 사료고증한 ‘재당 신라인 사회 연구’(권덕영 지음, 일조각 刊),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의 7백여쪽에 달하는 대작인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일지사 刊), 김시준 서울대 교수의 ‘중국당대문학사’(소명출판 刊)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근대사에 대한 관심은 문학 분야에서 강했다. ‘근대 한국과 일본의 민요 창출’(임경화 지음), ‘한국 근대문학의 재조명’(원종찬 지음), ‘근대계몽기 가족론과 국민생산 프로젝트’(전미경, 이상 소명출판 刊) 등이 그 목록이다. 이 책들이 근대의 공간을 직접 다룬 것이라면, 원로평론가인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의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문학과지성사 刊)은 문학에서의 근대성 담론의 갖는 빛과 그늘을 원숙한 시선으로 조명한 메타평론이었다.

현대사 분야에서는 박정희 시대가 화두였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비판적 연구보다는 절대긍정과 호의적 시선이 주류였다.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이대근 외 지음, 나남출판 刊)는 1960~70년대를 다루면서 재벌을 한국경제발전의 ‘필연적·당위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박정희 양날의 선택’(김형아 지음, 일조각 刊 )은 박정희가 이끈 파워엘리트를 내밀하게 추적한 역작으로 하반기에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었다.

그 외에 ‘우승열패의 신화’(박노자 지음, 한겨레신문사 刊), ‘고종황제 역사청문회’(이태진·김재호 지음, 푸른역사 刊),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백승영 지음, 책세상 刊) 등이 주목을 받았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새정치경제학 방법론 연구’(김형기 외 지음, 한울 刊),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마가렛 아처 외 지음, 이기홍 옮김, 한울 刊) 등 방법론적 탐색을 나선 책들이 나와 흥미를 유발했다. 이 흐름 속에서 이기홍 강원대 교수는 사회학 분야의 ‘가설-연역적’ 연구방법이 갖는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사회문제를 다룬 책으로는 예전보다 더욱 유기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비판한 ‘新개발주의를 멈춰라’(조명래 외 지음, 환경과생명 刊), 비정규직 노동의 확산으로 인해 사회통합의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했음을 여러 방면에서 지적한 ‘위기의 노동’(최장집 엮음, 후마니타스 刊),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무섭게 제도화되어가는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를 제시한 ‘지식사회 비판’(홍성태 지음, 문화과학사 刊), 연결망 이론으로 IMF 시기를 분석한 ‘경제위기의 사회학’(장덕진 외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등이 있었다.

지리학 분야에서는 남북 분단과 냉전의 상처와 폐해가 누적되어,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접경지역’을 집중적으로 다룬 ‘사회·경제공간으로서 접경지역’(박삼옥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가문으로 표현되는 전통시대 종족의 집단무의식이 전개되어있는 경관과 장소를 탐구한 ‘종족집단의 경관과 장소’(전종한 지음, 논형 刊)은 흥미로웠다.

과학 분야에서는 역사적 작업이 많았다. 먼저 ‘한국 근대 과학기술인력의 출현’(김근배 지음, 문학과지성사 刊)은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가 과학자보다는 기술자를 배출해 2등신민을 길러내는 역할밖에 못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 ‘과학에서의 수탈론’을 보여줬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김용준 지음, 돌베개 刊)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저자의 삶의 무늬가 깊이 침윤된 책으로서, 과학과 종교 사이에 어떤 방식으로 가교를 놓아야 할 것인지를 무게있게 탐구한 책이었다.

예문서원에서 펴내는 한국의 사상가 10人 시리즈의 완간, 책세상의 ‘니체 전집’ 완간, 한국국학진흥원이 야심차게 진행하는 ‘한국유학사상사대계’의 1차분으로 ‘철학’ 분야가 출판된 것, 서양고전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아카넷 刊) 등은 원전과 고전연구의 성과였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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