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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인내천’…조선사상사의 꽃은 영성
‘화쟁·인내천’…조선사상사의 꽃은 영성
  • 최승우
  • 승인 2022.05.0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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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조선사상사』 오구라 기조 지음│이신철 옮김│도서출판 길│386쪽

일본인의 눈으로 본 조선사상사 특징은 약동성과 정태성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으로 나눠서 접근

이 책을 설명하기 전에 신채호를 이야기해야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대로 그는 민족주의 사상가이며 역사가이다. 그는 『조선상고사』(1948)에서 주류 사관의 외면을 받았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일천년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으며 역사관을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립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가장 중요한 발언이자 백미는 이것이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조선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조선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조선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조선을 위한 예수가 되지 못하고 예수를 위한 조선이 된다.” (1925년 <동아일보> 「낭객(浪客)의 신년 만필(新年慢筆)」중에서) 

사진출처=위키백과
단재 신채호. 사진출처=위키백과

상당히 뼈아픈 일침이다. 그는 조선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망국의 원인이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일구어내지 못한 노예성에서 찾았다. 사상의 노예성은 곧 우리만의 생각이 없는 절름발이 세계관으로 자라났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국정교과서에서 조선시대 주체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소중화 사상‘이다. 청의 지배를 받고나서야 뒤늦게 우리는 대륙에 대한 동경과 짝사랑을 거두게 되었다. 반대급부로 등장한게 북벌이다. 오롯이 독자적으로 서게 된 계기인데 그 기저 사상이 황당하게도 ’소중화‘였다. 소중화란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죽은’ 명나라를 대체해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아바타 국가였던 셈이다. 오랜 시간 한반도를 지탱해 온 주체성 없는 사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흥미와 무거운 마음으로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펼쳤다. 

조선사상사, 다섯가지 키워드

저자는 조선사상사를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 다섯 키워드로 나누었다. 일본사상사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 포섭방법을 취했다면 조선의 경우는 외부의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두드러진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또한 동시에 사상의 다양성이 각각의 시대에 유지되어 있었다며 불교와 유교, 근래에 들어서는 주체사상 일변도의 사회속에서도 자생해왔던 샤머니즘의 예를 든다.

이 책은 외국인의 눈으로 쓰여진 우리 사상사다. 때로는 역설적이게도 내부의 시선보다 외부의 시선이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일 때가 많다. ‘우리’에 너무 익숙해 보지 못했던 면을 타자가 더 정확하고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구한말 비숍 여사의 조선 여행기가 좋은 예이다. 그녀는 당시 보기 드문 여장부로 1894년 극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조선까지 발을 디뎠다. 외국인이 생경하게 바라보는 조선은 지금 읽어도 굉장히 신선하다. 그녀가 1898년에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일종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기법과도 같다. 우리가 우리를 서술하는 것과 외부인이 우리를 서술하는 것은 느낌의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오구라 기조는 조선 사상계의 ‘비숍’이다. 

‘한국 사상사’가 아닌 ‘조선 사상사’인 이유

하필이면 제목이 한국사상사가 아니라 조선사상사일까? 저자는 ‘한국’은 남한에만 국한되는 표현이지만 ‘조선’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민에 만주와 북간도 지역에 분포한 조선족까지 포함한 총칭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시 말해 조선은 이씨조선(‘이조’로 통칭되는 ‘이씨 조선’은 일제가 격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나 여기서는 따로 구분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일러둔다)을 말하는게 아니라 고대조선, 그러니까 고조선부터 후에 등장한 조선,두 동강 난 남북한의 현대사까지 포함한 한반도의 통합개념임을 밝힌다. 글에서 빠졌지만 아마 구소련 스탈린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역시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근대를 넘어선 현재까지도 조선인이자 조선민족인 셈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갈려져 있고 일부는 아예 타국으로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혈통적 시원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민족’의 개념은 비교적 근대에 발명된 것이며(베네딕트 앤더슨은 1983년 출간한 『상상된 공동체』(서지원 옮김, 길 펴냄, 2018)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핵심축인 ‘민족’이 “18세기 후반 무렵 창조된 문화적 인공물”이라고 짚었다)그 과학적 판단도 확실치 않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조선사상사는 어찌됐든 이 민족의 생각을 총칭한 인문사회, 이념적 개념이다. 이 땅에 살았던 사상가들의 무수한 말과 글을 집대성한 하나의 소 백과사전과도 같다.  

중국에 사상을 역수출한 조선철학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저자가 외국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지식이었다. 자국민도 알기 어려운 내용을 간략하게 요점 정리해 놓았다. 이 작은 책 한권에 단군조선에서 주체사상, 김지하, 이어령, 심지어 황지우까지 알토란같이 담아냈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인가?’에 대한 물음이 여기 있다. 우수성에 대해 섣불리 답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사상가들이 거대한 뿌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호흡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유, 불, 도가 들어와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한 나름의 주체성과 창의성이 있었으며 일부는 본토(주로 중국)에 사상을 역수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조선사상사에는 약동성과 정태성이라는 두 측면이 있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본질로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오구라 기조. 사진출처=교토대학교
오구라 기조. 사진출처=교토대학교

조선사상사의 꽃은 ‘영성’이다. 지성으로도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현상. 그것이 영성인데 신라의 원효가 말한 화쟁사상, 천인합일의 도를 추구한 이퇴계, “하늘과 사람은 같다”라던 최제우의 인내천 사상이 이에 부합한다. 조선사상의 순수지향성과 그에 대한 대항은 운동으로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순수성을 획득하고자 운동하고 있을 때에도, 순수성이 퇴락해가는 과정에서도 조선의 사상은 두드러진 영성을 띤다. 예를 들어 순수성이 퇴락한다는 것은 그 사상에 의해 영위되는 생명이 열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선에서는 그와 같은 국면에서도 사상이 썩어문드러지는 일 없이 영적인 힘을 발휘한다.”

또한 동시에 호기롭게 말한다.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신화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교와 불교로부터 문학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상의 전체를 대강 내다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거론된 인물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지경이다. 앞서 밝혔듯 이 책은 한국사상의 소(小)백과사전이다. 세계사를 훑어보면 역사상 많은 민족·부족·국가들이 흥하고 쇠하며 명멸했다. 그 가운데 사상이 흡수되기도 하고 전파되기도 하며 사라지거나 끝끝내 살아남은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면 ‘조선사상’은 역사의 파고속에 우리가 온전히 버텨냈다는 반증이다. 한마디로 수천년 역사의 저력이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대륙과 해양의 거대한 세력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생존의 기록과도 같다. 때문에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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