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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넝마주이
혁명의 넝마주이
  • 최승우
  • 승인 2022.05.05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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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68쪽

“역사의 대기실”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혁명기 모스크바,
혁명의 넝마주이가 되어 그 흔적을 건져 올렸던 벤야민을 경유하여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재발굴해내다

발터 벤야민은 1926년 12월에서 1927년 2월까지 약 두 달간 모든 것이 변화의 와중에 있던 혁명 후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벤야민에게 이 모스크바 방문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 책 『혁명의 넝마주이』는 벤야민의 모스크바 방문 기록인 『모스크바 일기』를 경유하여 벤야민의 사유에 드리운 소비에트의 흔적을 추적하고, 더 나아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지적·예술적 유산을 새롭게 발굴해낸다. 모든 해방의 기획은 ‘비현실적’인 이상일 뿐이거나, 결국 스탈린식 ‘현실 사회주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를 야기하는 사고 회로만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오늘날,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유산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그다지 환영받는 주제는 아닐 것이다. 한동안 이 유산은 정치적 맥락을 탈각시킨 채, 미술관의 안온한 벽 안 ‘혁명 섹션’에 포함되어 있을 때만 상속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통속화된 서사에 갇힌 이 소비에트 혁명의 ‘과거’를 캐내 다시금 해석 투쟁의 무대에 올려놓는다. 모든 과거는 현재와 새롭게 만나 다시 쓰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죽은 세대의 전통은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는 망령’(마르크스)이 될 수도,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불씨’(벤야민)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기만적으로 현실을 변형시키는 ‘연속체로서의 역사’에 균열을 내기 위해 버려지고 망각된 역사 지식을 구제해내려 했던 벤야민의 텍스트에 의거해, 벤야민의 방식을 따라 혁명기 소비에트 사회 안에 존재했던 온갖 가능성들을 꼼꼼하게 되짚어본다. 이를 통해 역사의 잘려나간 페이지에 온당한 자리를 돌려주고, 우리가 붙들려 있는 ‘현재’라는 지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등의 책을 발표하고, 유리 로트만, 보리스 그로이스, 미하일 얌폴스키, 알렉세이 유르착 등의 사상을 번역·소개해온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김수환 교수의 세번째 단독 저서.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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