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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대한 배움...가르침이 아닌 학생과 더불어
배움에 대한 배움...가르침이 아닌 학생과 더불어
  • 강신익
  • 승인 2022.05.11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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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 ③ 강신익 부산대 교수(의료인문학교실)

 

강신익 부산대 교수

교수(敎授)의 사전적 정의는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가르침을 뜻하는 한자어 교(敎)에는 회초리가 들어있어 글자 속에 이미 교육의 강제적 속성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글자인 수(授)에도 배움의 즐거움이나 자발적 속성은 담겨 있지 않다. 그래서 교수(敎授)란 강제로 가르침(敎)을 주는(授) 사람이다.

서양의 언어 속에도 교수란 직업의 권위적 속성이 그대로 담겨 있어, 교수(professor)란 어떤 주장이나 신조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실천하는 전문직이다. 지식과 권위가 소수에 집중되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고 개념이다. 이 시대의 교육은 대체로 접근과 이해가 어려운 지식과 함께 권력과 지적 권위가 전달되는 과정이었다.

21세기 교육의 문제는, 지식과 정보는 흘러넘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지만 그것들을 필요에 따라 골라내고 가치와 목적에 따라 정돈하는 능력을 기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지식의 전달에 치우쳐 지식 그 자체의 성격과 전달 방식의 혁명적 변화에는 비교적 무감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가치와 방향에 관한 대체로 합의된 교육철학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교육 전문가지만, 정작 교육에 관해 공부한 교수는 극소수다. 교육보다는 연구 업적을 강조하는 평가시스템도 문제다. 이런 난맥상이 학생뿐 아니라 교수 자신의 학문과 교육 경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정년을 코앞에 둔 나 자신의 뒤죽박죽 교육 인생이 그 산 증거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치겠다는 욕심은 곧 따라와 주지 않는 학생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다가, 이내 강의와 시험과 평가라는 전통 형식에만 충실한 재미없는 일상으로 정착했다. 내 수업을 통해 학생이 어떤 교육적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학생으로부터 자극받을 일이 없으니 나 자신의 공부도 생동감을 잃고 재미없는 실적용 연구 논문의 ‘생산’에만 매달려 온 것 아닌가 싶다. 

교육방송(EBS)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의 아이디어와 사례는 이런 밋밋한 일상을 탈출해 학문과 교육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값진 깨달음이었다. 일방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가르침’이 아닌 학생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배움’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는 깨달음이었다. 학생과의 소통을 통해 나 자신의 공부와 연구에도 새로운 자극과 현실적 맥락이 생겼다. 공부를 암기가 아닌 문제 풀이로 바꾸자 소극적이던 학생들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방향만은 제대로 잡은 것 같았다.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의 뼈대만으로 구성된 짧은 동영상을 미리 시청하고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은 소그룹으로 모여 현실 속의 구체적 문제를 함께 풀어나간다. 교수자의 역할은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것을 바로잡는 것으로 제한된다. 예컨대 병원 종사자끼리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한두 시간의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심층을 탐색하고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수업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경험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자 대학의 지원을 받아 ‘건강인문학’이라는 수업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대규모 온라인 교양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비대면 수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이다.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고 다시 대면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여 그 신선한 자극과 재미를 맛본 학생과 교수라면 다시 예전의 고리타분한 강의실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대면과 비대면의 장점을 고루 갖춘 새로운 수업의 형식과 내용을 적극 개발하고 활용해야 할 때다. 이것이 팬데믹의 충격을 교수와 학생 모두의 교육 경험을 개선시키고 능동적 연구자와 학습자가 되게 하는 계기로 삼는 길이다. 

2500년 전 전국시대의 맹자는 백성을 ‘위한’(爲民) 정치가 아닌 백성과 ‘더불어’(與民) 하는 정치를 말했다. 21세기의 우리도 학생을 ‘위한’ 가르침이 아닌 학생과 ‘더불어’ 하는 배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강신익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제대에서 치의학 박사를 했다. 15년간 치과 의사로 일하다 영국 웨일즈 스완지대학에서 의학 관련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13년 가을부터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인문학적 의료’를 공부하고 가르친다. 특히 과학적 사실과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몸의 역사 몸의 문화』, 『몸의 역사』, 『의학 오디세이』(공저),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공해병과 인간생태학』, 『사회와 치의학』, 『환자와 의사의 인간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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